brunch

그림책 쓰기

글쓰기 실제 5

by 김경희

한 가지에 푹 빠지지 못하는 성미라 그런지, 장르마다 쓰고 싶은 글이 떠올라 습작을 이어가고 있다. 시, 에세이, 소설을 기웃거리다 이제는 그림책까지 작업 중이다. 내가 글을 쓰고 딸이 그림을 맡았다. 둘이 함께 공저하다 보니 진도는 느림보 거북이처럼 더디지만, 언젠가 나와 딸이 함께 만든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19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 진주가 재작년 가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딸과 나는 강아지와 이별 앞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언제나 까맣던 강아지의 눈동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릴 향해 있었다. 어머님 산소 입구에 진주를 고이 묻고 오던 날, 눈물은 폭포수처럼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히 하루하루 지나면서 슬픔의 무게가 1그램씩 가벼워졌다. 살아 있을 때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엄마처럼 따랐던 진주. 그 시간 잊을 수 없어 딸과 나는 진주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단지 귀여운 생명 하나 옆에 두는 일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 나 아닌 남을 위해 시간을 쓰고 마음 기울이는 일이었다. 강아지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산책 시간은 게으름에서 꺼내 주었고, 길가의 풀 한 포기와 하루의 흐름조차 새롭게 보게 했다.


그러나 그 일상엔 책임이라는 단어가 늘 함께했다. 피곤해도 강아지와 함께 밖에 나가 산책해야만 했고, 병원비에 허리가 휘청일 때도 있었다. 강아지 키운다는 건 기쁨만큼이나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 책임을 끝까지 지는 일이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강아지 키우기 전 알아 두어야 할 일들을 글로 담아두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먹은 나에게 딸은 자신이 그림 그릴 테니 함께 그림책 써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강아지 진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림책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짧은 문장과 선명한 그림 안에는 삶을 배우는 깊은 언어가 숨어 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그림책 쓰려는 순간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글은 어른의 글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림책은 단지 이야기 짓는 일이 아니다. 언어와 시각, 리듬과 감정, 이야기와 여백이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작업이다. 짧은 문장 안에 큰 세계를 담고, 한 장면의 그림이 열 마디 말을 대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림책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어른의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순수한 감각과 시선을 되찾아야 한다


그림책 쓰기 위한 첫 번째 요소는 ‘왜 이 이야기를 쓰는가’에 대한 진심이다. 어린이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작가 바버라 코니 (Barbara Cooney, 1917~2000) 는 『작가의 마음』에서 “아이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그들은 작은 어른도 아니고, 어른이 될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이다.”라고 했다. 아이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좋은 그림책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문장의 리듬이다. 글밥 적은 그림책에서 낭독의 울림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은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좋은 그림책은 한 줄 한 줄 마음속에 음률처럼 쌓인다. 그림책에는 여백 있는 문장, 아이가 그 안에 들어가 쉴 수 있는 문장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그림과의 조화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이야기를 완성한다. 글로 다 설명하지 않고, 그림이 말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야 한다. 이현미는 『책과 그림책 사이』에서 “그림책은 ‘읽기’와 ‘보다’ 사이에서 길 걷는 독자에게, 문장과 이미지가 함께 삶을 묻는 방식이다.”라고 했다. 문장이 멈춘 자리에 그림이 말을 걸고, 그림이 멈춘 자리에 침묵이 흐른다는 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은 하나의 이야기이면서 책의 구조를 지닌다. 시작, 중간, 끝의 흐름 안에 갈등과 전환, 작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결말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마음에 조용한 울림을 남기는 것이 좋다. 일본의 아동문학가 이시이 모모코(いしい ももこ, 1907~2008)는 『그림책의 모든 것』에서 “좋은 그림책은 이야기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이야기 안에서 살게 만든다.”라는 표현을 했다. 독자가 그림책 속에서 숨 쉬듯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림책을 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많은 그림책을 읽는 일이다. 좋은 그림책을 천천히, 여러 번 읽어보는 일. 같은 주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문장과 그림이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좋은 훈련이 된다. 그렇게 그림책의 언어를 몸으로 익히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자, 어른에게 건네는 책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되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그림책은, 세대를 건너 마음을 잇는 다리일지도 모른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