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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22. 2022

몸에 좋다고 하였으나(추어탕)



첫 아이 출산 예정 일이 가까워오니 배가 동네 앞산 만해졌고 얼굴은 미어터질 것처럼 빵빵해졌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지탱하느라 허리는 계속 묵지근하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일조차 힘들었다. 반듯이 누워도 모로 누워도 배가 몸을 자꾸 잡아당겼다. 서 있자니 무릎이 아프고 앉아 있자니 배가 눌려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1990년 8월 10일 금요일.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무거운 몸을 소파에 기대고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여니 남편 친구였다. 귀한 것이 생겨서 주러 왔다며 검정 봉지를 배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내미는 것을 받을 생각도 안 하고 나는 머뭇거렸다.


“제수씨! 승호 직장으로 가져다주기 뭐해서 집으로 가져왔어요. 이거 끓여 먹으면 힘이 나서 해산할 때 아주 좋을 거예요.” 라며 봉지를 내 앞으로 바짝 내밀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그것을 건네받는 순간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직원들과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뜻밖에 미꾸라지를 잡았는데 문득 해산을 앞둔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것을 몽땅 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것이다. 봉지 속에 든 것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온 몸이 얼음처럼 굳어져갔다. 하지만 싫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임신한 친구의 아내를 위해 한 시간을 넘게 차로 달려왔다고 하니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타고 팔로 전해지는 수상한 움직임 때문에 등골이 오싹거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제수씨! 정성껏 잘 끓여 먹고 순산하세요.”

그는 징그러움에 파르르 몸을 떠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정성을 다했다는 자기만족의 뿌듯한 표정을 지은 후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갔다. 






미꾸라지와 독대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고마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이렇게 징그럽게 생긴 생명체를 임신부의 손에 쥐어 주고 가다니.'

‘태교를 위해선 예쁜 것만 보고 고운 소리만 들어야 하는데.'



심난함과 염려도 잠시, 코앞의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미꾸라지는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 이놈의 것을 어찌 다루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검정 봉지를 부엌으로 향하는 문고리에 조심조심 걸었다. 움직임을 느낀 그것들이 사정없이 꿈틀거렸다. 검정 봉지가 올록볼록해지더니 그네를 타듯 신나게 움직였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어탕을 자주 끓이시는 시어머님은 해결책을 알려주실 것 같았다.

“어머니! 미꾸라지가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급한 마음에 인사하는 것도 잊고 불쑥 질문부터 했다.

“그려? 도시에선 그걸 어떻게 헌다냐. 여기선 호박잎 따서 쓱쓱 문지르면 되는디.”

“호박잎으로 문질러야 된다고요?”

“하모. 호박잎으로 문질러얀디 도시에선 호박잎을 어디서 구한다냐.”“시장에서 사오면 되지 않을까요?”

“언제 시장을 나갔다 올래. 몸도 무겁담서나. 그냥 봉다리 속에다가 소금을 한주먹 촥 뿌려두면 미꾸라지들이 알아서 죽을 거셔. 죽으면 깨깟이 씻어가꼬 끓인 다음에 믹서에 갈아. 그 담에 시래기 넣고 된장도 조까 넣고 들깨 갈은 물에다 간 맞촤감서 끓여 봐.”


거침없는 물줄기처럼 어머니의 추어탕 끓이는 방법이 전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어머님의 말씀을 세 줄로 요약해 보았다. 첫째, 봉지 속에다 소금을 넣으면 미꾸라지가 죽는다. 둘째, 죽은 미꾸라지를 씻어서 끓인 다음 믹서기에 간다. 셋째, 미꾸라지 간 것과 시래기를 넣고 된장과 들깨 간 물을 넣고 끓이면 추어탕이 완성된다.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나니 추어탕 끓이는 것이 쉽게 느껴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꾸물거리는 움직임 앞에서만은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문고리에 걸어둔 봉지 속에 왕소금을 한 주먹 넣었다.


“에구머니나! 엄마야 날 살려라!”

나는 순간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식탁 의자 위로 냉큼 올라가서 발을 동동 굴렀다. 평소에 남산만 한 배 때문에 무겁던 몸을 어떻게 그렇게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몸에 있는 털이 모두 꼿꼿이 일어섰다.


소금을 넣은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홀딱홀딱 뛰며 떼쓰는 사내아이처럼 봉지 속에서 미꾸라지들이 팔딱거렸다. 마치 전쟁터에서 육탄전을 벌이며 군인들이 싸우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벌어진 비닐봉지 입구로 거무튀튀한 것들이 힘차게 뛰쳐나와 땅바닥에 내동동이 쳐졌다. 땅에 닿자마자 하늘로 솟았다 땅으로 재빠르게 내려앉았다. 이내 다시 올라갔다 또 내려왔다. 에스 자로 꼬부라졌다 반대로 다시 꼬부라지면서 발광을 했다. 


몸에 묻은 하얀 소금을 털어내느라 검은 몸을 이리저리 내 던졌다. 여기저기 흩어진 미꾸라지들은 장외 경기를 하며 반칙을 일삼는 레슬링 선수처럼 책상을 엎고 의자를 부수며 서로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붙었다 떨어졌다 뒤엉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미꾸라지들이 팔딱거리며 바닥을 치는 소리는 작은북을 빠르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어머님께서는 미꾸라지 다루는 것을 그렇게 쉽게 말씀하셨는데 행간의 역동성이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다니. 어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겠는데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까지 해서 정신이 아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꾸라지의 움직임은 조금씩 둔해져 갔다. 그러다가 내가 고개를 빼 밀고 쳐다보기라도 할라치면 또다시 서너 마리가 팔딱 거리며 튀어 올랐다. 대 여섯 마리는 축 늘어져 일자로 뻗은 것도 있었다. 어찌나 놀랬는지 배가 똘똘 뭉치더니 단단해져 왔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놔두고 그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이는 씩씩한 남자니까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의자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걸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이 지쳐있는 나를 보며 놀라는 남편을 향해 부엌을 가리켰다.


상황을 파악한 그이가 옷을 벗어던졌다. 도둑을 잡을 것처럼 입술을 굳게 다물고 비장하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미꾸라지를 한 마리씩 잡아서 그릇에 담으려는데 잡으면 미끄러지고 또 잡으면 미끄러지면서 손에서 빠져나갔다. 남편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끙끙거렸다.



“이 놈이 자꾸 미끄러져서 미꾸라지인가 보네”

그이는 미끌거리는 것을 혼신을 다해 그릇에 집어넣으며 입을 앙다물었다. 그이의 친구는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았고 그이는 부엌 바닥에서 미꾸라지를 잡은 날이었다. 나는 행여나 미꾸라지가 다시 살아나 내 앞으로 튀어 오를까 봐 멀찌감치 서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서 있었다.


임신부에게 미꾸라지를 가져다준 사람도 사람이지만, 간단한 어머님의 설명만 듣고 추어탕을 끓이려고 맘먹었던 새댁의 무식함이 불러온 참사를 그이가 애써 마무리했다. 그날 이후로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바닥에서 굼실대던 것들이 자꾸 아른거려서 나는 한동안 앞이 막힌 슬리퍼를 신고 부엌을 드나들었다.






미꾸라지 대 소동이 있고 나서 30년이 된 지금은 눈 감고도 추어탕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 다루는 법은 깊이가 있는 냄비에 미꾸라지를 넣은 다음 소금을 한 주먹 넣고 재빠르게 뚜껑을 닫는다. 냄비 뚜껑은 두 손으로 꾹 누른다. 냄비 안에서 사정없이 튀어 오르며 냄비 뚜껑을 마구 치는 미꾸라지가 잠잠해지면 물로 깨끗이 헹군다.


이렇게 유유히 미꾸라지를 손질하고 나서 어머님이 알려준 방식대로 추어탕을 끓이면 쉽다. 물에 넣고 삶은 미꾸라지를 믹서에 넣고 간다. 채에 뼈를 걸러낸 다음 된장에 치댄 시래기를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때 물에 불린 고춧가루와 청양고추, 들깻가루, 마늘, 생강, 후추를 넣고 국자로 저어가며 끓인다. 불을 끄고 부추를 넣는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추어탕은 투박한 뚝배기에 담아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한 온기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국물이 진하고 고소한 추어탕에 하얀 쌀밥을 말아서 후후 불어가며 먹고 나면 보약을 한 첩 먹은 듯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주먹구구 레시피 <추어탕>


재료: 미꾸라지 1kg, 된장에 치대서 얼려둔 시래기 서너 주먹, 마늘, 생강, 후추, 들깻가루, 부추 한 줌, 고춧가루 5 큰술, 청양 고추 5개.


1. 삶은 미꾸라지와 물을 넣고 믹서에 간 다음 뼈를 채에 걸러낸다.

2. 미꾸라지 간 물에 된장에 치대 둔 시래기를 넣고 끓이다가 미지근한 물에 개둔 고춧가루를 넣고 청양고추 다진 것, 생강, 마늘, 후추를 넣는다.

3. 쌀가루가 들어간 들깨가루를 넣고 국자로 저어가며 팔팔 끓인다.

4. 불을 끄고 부추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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