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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07. 2022

사무치게 그리운 너(소고기 버섯전골)

가을이 왔다


복희가 생각난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눈 밑으로 주근깨가 다닥다닥 피어나던  내 친구 복희. 그 애는 여고 3년 내내 같은 반 친구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동생하고  자취를 했던 복희. 손이 어찌나 야무진지 솥단지며 냄비며 복희의 손을 거치면 번쩍번쩍 윤이 났다. 수돗가에서 운동화를 말끔하게 빨던 그 애를 보면 엄마 손을  빌어 모든 것을 하던 나는 언 병아리 같았다.




 복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다. 월급을 받아 알뜰하게 저축도 했다. 그렇게 살림 잘하던 복희가 멀대 같이 키 큰 남자를 만나 초가을에 시집을 갔다. 그 뒤로 복희와 소식이 끊어졌다. 지금도 소식을 알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지만 그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5년 전 일이다. 강의를 마치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강의실을 빠져나오는데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한 여인이 내 뒤를 따라 나왔다.나는 무슨 일인가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약속 시간을 따로 잡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를 많이 닮은 분위기, 하얀 피부, 그리고 광대뼈 주변으로 깨알같이 뿌려진 주근깨까지. 그랬다. 그녀는 내 친구 복희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어쩜 그리 호리호리한 몸 매까지 비슷한지 ‘내 친구 복희인가?’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이가 나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였다.



이틀 후 복희를 닮은 그녀와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겉도는 얘기를 하다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물었다.무슨 일 때문에 나를  만나고 싶었느냐고. 그냥 무슨 일이 있느냐 묻기만 했을 뿐인데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누구라도 이 장면을 봤다면 내가 마치 그녀를 혼내는 줄 알았을 것이다.



 긴 울음을 쏟아내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 이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느냐 물었다.  주부들이 이혼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남편의 외도이기 때문에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는 예상 밖의 고민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와 학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여러 차례의 e-mail을 주고받았다.






 아이가 셋이나 딸린 유부남과 결혼했던 복희는 사랑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주변에서 반대하고 내가 숱하게 말렸으나 사랑에 눈이 먼 복희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오직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해서 서울로 떠나 버렸다. 하지만 복희는 임자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 건 아니었다. 단지 아이 딸린 남자를 사랑한 것이었지.



복희를 닮은 그녀와 e-mail을 주고받으며

“사랑이 대체 뭐 길래 이다지도 힘이 들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금은 나를 불사를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더라고요.”

“임자 있는 사람에게도 왜 사랑은 찾아오는 걸까요.”

“그건 사랑에게  물어봐도 아마 모를 거예요.”

“사랑은 죄인가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죄가 아니에요. 단지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속이고 다른 사람과 만남을 유지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해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뜨거운 감정과 설렘은 없다 해도  자기가 선택한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라는  대화의 글이 핑퐁처럼 오고 갔다.



복희를 닮은 여인은 한 동안 헐헐거렸다. 찾아가야 할 사람과 아니 찾아가야 할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든 맹랑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도 예쁜 단어 뒤에 뜨거운 마그마를 숨기고 있는 지독한 사랑 때문에.







 

학기를 마치고 복희를 닮은 그녀와 식사를 했다. 어긋난 사랑을 털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녀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속을 든든하게 채워줄 소 불고기 버섯전골 집에서 만났다. 육수가 담긴 전골냄비에 동충하초를 넣자 노란색  국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아기 궁둥이처럼 보송하게 피어난 노루 궁둥이와 느타리버섯 한 움큼을 집어넣었다. 팽이버섯과 백지장처럼 얇게 썰어 양념한 소고기도 넣고  끓였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전골냄비에서 구수한 소고기 냄새가 났다. 소고기와 버섯이 우러난 국물을 국자로 떠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허한 속을 채우느라 뜨거운 국물을 훌훌 불어대며 연신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를 따라 나도 전골 국물을 입에 넣으니 내 친구 복희 생각이 났다.



그때 복희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 먹이고 시집보낼 걸. 내 말 안 듣는다고 서운해 할 줄만 알았지 따뜻한 음식이라도 한 끼 먹일 생각은 왜 못했을까? 특별한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결혼식 날 비쩍 말라 드레스가 그리 헐렁했을까? 복희를 닮은 그녀와 먹던 버섯전골은 사무치게 그리운 맛이었다. 지금이라도 만나면 따끈한 음식을 나눠먹고 싶은 내 친구 복희 생각 때문에.


 

봄이면 목련 꽃 흐드러지게 피던 교정에서 손잡고 다정하게 걸었던 친구. 가을이면 아기 단풍잎 주워 모아 책갈피가 두툼해지도록 끼워 넣으며 미소 짓던 친구. 지금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연락조차 할 수 없으니 네가 그립고 또 그립다. 그립다는 것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애잔함이다. 다시는 볼 수 없어서 마음 한 편에 아릿함이 느껴지는 아픔이다. 사무치게 그립다는 것은 보고 싶다는 말의 몇 백배 아니, 몇 천배나 되는 그리움이다. 가을이 되면 더더욱 사무치도록 그리운 복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주먹구구식 레시피 <소불고기 버섯전골>


재료: 양념한 소불고기 600g, 느타리버섯 두 줌, 팽이버섯 한 줌, 표고버섯 5장, 양 파 1개, 돌미나리 2줌, 쪽파 2줌, 당면 1줌, 양념장 3스푼 (액젓, 마늘), 육수 5컵


1. 전골냄비 밑에 양파를 깔고 양념한 소고기, 버섯, 소고기, 버섯 순으로 켜켜이 담는다.

2. 육수 다섯 컵을 부어준 뒤 센 불로 끓이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여서 고 기를 익혀준다.

3. 고기가 익으면 액젓과 마늘을 넣고 만들어 둔 양념장 3스푼을 넣어준다.

4. 끓는 전골에 당면 한 줌과 마늘을 넣고 잠시 끓인 다음, 마지막으로 돌미나리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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