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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23. 2022

그건 내 잘못이었어!(조기 구이)

내 탓 먼저 합시다


                                                             

 부모님께 효도할 여자를 찾고 있다는 상효자와 덜컥 결혼을 하고 나서 매주 주말이면 시골집에 다녔다. 결혼해서부터 어머님 돌아가실 때까지 시댁에 다니던 길은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아름답다 이름이 나있는 길이었다. 어설픈 새댁 흉내를 내던 시절,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달려 시골집에 도착하면 한 주 내내 도시 며느리를 기다리시던 할머님과 어머님의 웃음은 넉넉하기 그지없었다. 어설픈 새댁이면 어떻고 노련한 새댁이면 어떠하랴. 그저 할머님과 어머님의 눈엔 내가 며느리인 것을. 그것도 도시 출신 며느리인 것을.



 시골의 부엌 문화는 나이에 따라 역할 분담이 제법 철저하게 나누어진다. 할머님께선 가장 어른이라는 명목 아래 부엌에는 결코 들어오시는 법이 없으셨고 시어머님께서는 내가 가는 날이 부엌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 게다가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면 큰일 난다는 정서가  있었으니 그이는 시골에만 가면 절대로 부엌 쪽으론 얼씬거리지 않았다.



 전라도 사투리로 정지라고 불리는 어머니의 부엌은 내가 결혼하고 3년 뒤에 싱크대를 들여놓아 입식 부엌이 되었다. 그러니 신혼 초기 3년 동안은 아궁이에 앉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부엌의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어머님의 숱한 종종걸음으로 다져져 시멘트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불을 때고 나면 따뜻해지는 부뚜막 아래로는 아궁이가 있었는데 텅 빈 아궁이 속으로 땔감을 밀어 넣고 풀무를 이용해 불을 지폈다. 여름철의 아궁이는 이마와 콧등에 땀을 송골송골 맺히게 했지만 겨울의 아궁이는 뜨듯한 구들장 마냥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나는 도시 며느리라서 그랬는지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일에는 서툴기가 짝이 없어서 어머님께서 대신해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땔감에 불이 붙고 나면 풀무 돌리는 일이 재미있어 “어머니 풀무질은 제가 할 거예요”라며 철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왕겨를 한 줌씩 넣어가며 풀무를 살살 돌리면 풀무에서 "돌돌돌" 소리가 났다. "돌돌돌"  나는 소리가 재미있어 풀무를 좀 더 세게 돌리면 불에 달구어져 벌겋게 달아오른 왕겨 사이로 구멍이 슝 뚫렸다. 그러면 어머님께서 끝이 새까맣게 탄 부지깽이로 구멍 난 곳을 살살  다독거려 메워 주셨다. 부지깽이를 잡은 어머니의 손길은 터진 주머니를 얌전하게 기우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님께서 구멍을 메워주신 다음부턴 풀무를 살살 돌렸다. 한 주, 두 주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 며느리는 점점 풀무 다루는 솜씨가 늘었다.



 한 번은 시끌벅적한 읍내의 시장에서 조기와 과일을 사들고 시골집에 갔는데 들에 나가셨는지 어머님은 집에 계시지 않고 할머님께서 버선발로 토방까지 내려와 맞아주셨다. 시골일이라는 것이 시간을 기다릴 수 없이 바쁘게 사람을 몰고 갈 때가 있다. 농사일로 어머님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들이며 논에 나가 계신 시간이 많았다. 논두렁의 풀 메는 사소한 일까지 직접 하셨는데 나는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아서 도와드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골은  내 손으로 도와드릴 수 없는 일과 알 수 없는 농사일이 이것저것 많았다. 하지만 도시에서  시집왔다고 그러셨는지 어머님은 나를 절대로 논으로 밭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시고 부엌 일만 시키셨다.








그날도 들일로 바쁘신 어머님을 대신해서 부엌에서 혼자 내내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 짓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 마루 밑에 기거하는 누렁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부엌으로 슬슬 기어들어왔다. 보면 볼수록 귀엽게 생긴 누렁이는 눈이 아래로 처져서 순둥이처럼 보이는데  바삐 움직이는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어대다가 구석에 가서 얌전하게 앉더니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고슬고슬 지어진 밥에 뜸이 드는 틈을 타서 마당 앞에 탐스럽게 열린 가지를 두어 개  뚝 따다 김이 모락모락 나게 쪄서 조물조물 무치고 오이는 가지런히 채를 썰어 냉국을 만들었다. 사실 이런 일들이야 어머님 일에 비하면 일이라고 견줄 수도 없을 테지만 왼손잡이인 나로선 칼질조차 서툴러 진땀을 뺐다.



 아궁이 반대쪽에 있는 자그만 석유곤로 위에다 프라이팬을 얹고 할머님께서 좋아하시는  조기도 두 마리 노릇하게 구웠다. 그런데 조기 굽는 과정 또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님의 프라이팬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름을 먹는 새까만 것이었다. 그래서 기름을 제아무리 넉넉하게 둘러도 프라이팬에 조기가 들러붙어 껍질이 벗겨지고 몸통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도시 며느리의 실력으론 석유곤로 불 조절 또한 만만치가 않아 조기를 얌전하게 구워내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쩐 일로 조기 모양이 하나도 흩어지지 않고 색깔도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졌다. 장금이가 살아 돌아와 구워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조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노릇하게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조기 대가리마저 매끈하게 포마드를 바른 남정네의 머리처럼 번들거렸다. 조기를 한 젓가락 집어 입속으로 넣으면 잘 튀겨진 튀김처럼 바사삭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조기 특유의 비릿함도 달구어진 팬에서 굴뚝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하얀 구름이 된 것 같았다.



 조기 두 마리를 잘 구워냈다는 자부심에 한참을 우쭐거리며 부뚜막 옆 편편한 곳에 밥상을 걸쳐두고 반찬과 수저를 가지런히 줄 맞춰 올렸다. 구워진 조기도 애지중지 다루며 접시에 얌전히 담아 올렸다. 혹시라도 조기를 프라이팬에서 접시로 가져가 가 두 동강이 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수저 두 개를 이용해서 상전마마 받들듯 두 손을 벌벌 떨며 옮겼다.



 석유곤로에 국을 데우느라 냄비를 들고 잠시 밥상과 떨어졌다 돌아왔다. 그런데 아뿔싸!  방금 전 밥상 위에 올려둔 조기 접시가 텅 비어있었다. 다른 반찬은 그대로 있는데 조기 두  마리만 순식간에 없어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내가 구운 조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황당한 마음으로 부엌 이쪽에서 저쪽으로 서성거리고 있는데 부엌 구석에 앉아 있던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차 싶은 마음에 누렁아! 하고 크게 불렀으나 내 꽁무니를 쫄랑대며 따라다니던 누렁이의 인기척이 없었다. 아니 누렁이는 또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구부리고 마루 밑을 들여다보니 마루 깊숙한 곳에 누렁 이가 보였다. 수염 옆에 생선 가시를 묻히고 기름이 묻어 번들번들 윤기 나는 주둥이와 코를 연신 핥아대고 있었다. 아이고야! 할머님과 어머님께 드릴 조기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 버리다니,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씩씩거리며 "어서 이리 나와!"라며 누렁이에게 호통을 쳤다. 누렁이는 나에게 약을 올리듯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



 어떻게 구워낸 조기인데 하는 생각에 더욱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조기 두  마리를 다시 구웠다. 급한 마음으로 조기를 구우려니 모양새가 흩어지고 말았다. 한쪽 면이  다 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기를 뒤집으니 껍질이 홀랑 벗겨져 가마솥에 누룽지가 눌어붙듯  프라이팬과 조기 껍질이 한 몸이 되어 버렸다. 입에서 거센 말이 나오려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명색이 새댁인데 험한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기를 다시 구우면서도 아무리 짐승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건지 누렁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모양 사납게 조기를 구워내고 나니 방금 전까지 으쓱거리던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구워진 조기를 설강 높은 곳에  얹어두고 다시 마루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누렁이에게 손을 까불며 부드러운 말투로 "누렁아 어서 이리 나와"라며 살살 꼬드겼다. 누렁이가 마루 밑에서 나오기만 하면 붙잡아서 왜 그랬냐고 엉덩이라도 한 대 철썩 때려주려고. 하지만 누렁이는 내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 마루 밑에서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밥때가 넘었는데도 들에 나가신 어머님은 왜 이리 안 오시는지 은근히 속으로 화가 났다. 어머님만 일찍 돌아오셨어도 조기는 누렁이 밥이 안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에서 태연히 티브이만 보며 누워계신 시할머니에게도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동네 끝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온다며 나가버린 그이도 미웠다. 내 곁에서 조기나 지켜주지 뭐 하느라 이제껏 안 돌아오나 하는 생각에 화가 슬슬 치밀어 올랐다.



 할머님과 어머님, 그이와 내가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조기를 훔쳐 먹은 누렁이에 대한  미움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껍질이 홀랑 벗겨진 모양새로 밥상 위로 냉큼 올라앉은 조기를 째려보며 강아지 주인인 어머님께 누렁이의 잘못을 일러바쳤다.



 내 말을 듣고 어머님께서 누렁이에게 혼쭐을 내주시면 화나는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  것 같았다. 몹쓸 강아지라고 큰 소리로 누렁이에게 야단쳐주길 바라던 나에게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렁게 니가 간수 좀 잘 허지 그랬냐. 짐승이 뭐슬 안다고. 사람이 조심을 혀야지." 속상한 내 맘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님하고 나 사이의 대화를 듣던 할머니는 그저  허허거리며 웃기만 하셨고 그이도 할머니를 따라 히죽히죽 웃었다.



 아! 진짜 여기 시골엔 모두 누렁이 편만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어 밥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설거지하는 내내 내가 잘못했나 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어머니 말씀대로 내가 간수를 잘했어야 했는데  강아지를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얼마 뒤 어머니의 부엌은 입식 부엌으로 고쳐지고 강아지는 부엌에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누렁이는 그저 지글지글 구워지는 조기 냄새만 밖에서 실컷 맡다가 내가 던져주는 조기 대가리와 가시만 겨우 받아먹었다.



 그 뒤로 시골에 갈 때마다 누렁이에게 음식 찌꺼기를 주면서 가끔씩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는 조기를 두 마리나 옴 시라기 먹은 적 있는 강아지잖아. 옛날에  할머니네 식구들은 한 상에 조기 한 마리를 올려놓고 온 식구가 먹었대.’라며 누렁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주먹구구 레시피 <조기 구이> 

재료: 조기, 밀가루, 해바라기 유 or 콩기름 


1. 소금에 절여진 조기는 물에 살짝 씻어서 꼬리와 지느러미를 가위로 싹둑 다듬고 물기를  쪽 빼준다. 

2. 조기 몸통에 하얀 밀가루를 꼼꼼히 분칠해 준다.(조기를 구웠을 때 껍질이 바삭하고 부숴 지지 않게 하는 어머님의 방법이다.) 

3. 팬을 따끈하게 달군 다음, 기름을 두르고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가 나면 조기를 넣고  약불에서 한쪽 면이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4. 뒤집어서 나머지 면도 노릇하게 익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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