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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Oct 05. 2022

목동의 비애(김치 냉잇국)


“어이구! 내 망아지 새끼들.”  

아빠는 어려서 나를, 아니 우리 네 자매를 망아지 새끼라 부르며 귀여워하셨다. 맨  위로 오빠가 있는데 아빠는 언제나 오빠에게 여동생들 잘 돌보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그래서 오빠는 어릴 때부터 네 명이나 되는 여동생들을 지키는 목동이 되었다.


한 번은 우리 네 자매가 소꿉장난을 하다가 둘씩 편을 갈라 싸우게 되었다. 부부간의 싸움도 그러하지만 어린 계집애들이 싸우게 되는 계기는 참으로 사소한 것들이다. 소꿉놀이할 때 쓰는 솥단지를 왜 말도 없이 가져갔느냐에서 출발해서 내놓아라 싫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인다. 왜 소꿉놀이 살림살이에는 플라스틱 솥단지가 딱 하나밖에 없는 건지. 이 때문에 여럿이 놀 때는 어김없이 솥단지 쟁탈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은 솥단지를 뺏긴 쪽에서 반찬이라고 돌멩이를 담아둔 접시를 엎고, 국을 끓인다며 풀을 뜯어다 넣어둔 냄비를 뒤집는 일로 진전된다. 자연스레 가진 자와 뺏긴 자가 편을 갈라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 닭싸움이 되고 만다.


둘씩 나뉘어 감정이 틀어져 씩씩거리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던 오빠가 언니와 나, 동생들까지 불러서 한 줄로 세웠다. 그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라 했다. 오빠는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학교에서 검도를 배우고 있었다. 나는 설마 아빠가 우리를 잘 돌봐주라고 했는데 때리겠어하는 생각으로 자신만만하게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언니도 동생들도 아마 나와 같은 심정으로 손바닥을 냉큼 내밀었던  것 같다.


성큼성큼 걸어서 자기 방으로 간 오빠는 모서리에 세워둔 죽도를 가져와서 우리의  손바닥을 한 대씩 힘껏 내리쳤다. 죽도는 가운데가 비어있고 얇은 대나무 살을 서로  잇대어서 묶었기 때문에 때릴 때 큰 소리가 났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겁을 주느라 동작만 크게 했지 실제로 세게 때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도가 손바닥을 내리치는 소리에 미리 놀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또한 아빠의 명령대로 우리를 돌봐주어야 할 오빠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하는 배신감이 들어 그 자리에서 다 같이 홀딱 홀딱 뛰었고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툼벙툼벙 떨어졌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여자 아이 넷이서 울어대니 순식간에 초상집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오빠는 무척 당황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망아지들 같이 히잉거리며 뛰기까지 하면서 울어대니 괜스레 벌집을 잘못 건드렸나 보다 후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오빠는 맨 먼저 나온 대장이 아닌가. 언제나 아빠 품에서 망아지 같이 뛰노는 우리를 오늘이야말로 길들일 기회라는 굳은 표정으로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이게 또 무슨 상황인가 놀라면서도 으르렁거리는 호랑이가 되어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눈을 부릅뜨는 오빠에게 압도되고 말았다. 오빠 말에 따르지 않았다가는 아무 데나 기다란 죽도로 후리칠 것 같아서 벌벌 떨면서 엎드렸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우리는 두 손을 땅에 짚고 엎드리는 자세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엉성하긴 했지만 엉겁결에 바짝 긴장한 여군들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오빠는 중학교에서 이런 벌을 주는 선생님 흉내를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땅과 몸이 붙을락 말락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자니 서러워서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두 팔로 몸을 지탱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지자 내가 입을 벌리고 “아아아”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언니도 동생도 다 같이 나를 따라 큰 소리로 울면서 합창을 했다. 오빠는 소리 내어 우는 우리를 향해 “지금부터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은 가만 놔두지 않겠어.”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우리는 나오는 울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입을 앙다물고 “음음음”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구세주는 극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법이다. 오빠가 우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완전히 제압하고 있을 즈음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셨다. 아빠 눈에 비친 상황은 이랬 다. 아들 녀석이 기다란 죽도를 들고 서서 씩씩거리고 있다. 망아지 같이 귀여운 딸내미 넷이 아들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고 있다. 어느 부모가 이런  상황을 그냥 놔두겠는가.


이내 오빠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오빠는 아빠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얘들이 서로 사이좋게 놀아야 하는데 싸우잖아요. 그래서 버릇을 고쳐주려고.....”

“뭐야? 내가 언제 너에게 동생들 버릇 고치라고 했어! 지켜주라고 했지!”  

아빠의 불호령에 오빠는 죽도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오빠에게 목동의 임무에 대해서 재차 주입시키신 아빠가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나와 자매들은 풀이 죽은 오빠 앞을 당당히 지나서 망아지처럼 아빠를 향해  달렸다. 아빠에게 달려가던 그 짧은 순간에 ‘아빠도 우리를 안 때리는데 자기가 뭐라고 우리 때리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오빠를 힐끔 쳐다봤다. 한껏 풀이 죽은 오빠 도 억울하다는 듯 우리를 힐끔 쳐다봤다. 나중에 아빠 안 계실 때 너희들 두고 보자라고 다짐하는 눈빛이었다.


아빠가 눈물로 얼룩진 우리 넷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을 때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셨다. 풀이 죽어있던 오빠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이 귀하게 생각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참았던 울음을 조용히 터트렸다. 아빠는 망아지들을, 엄마는  목동을 다독거리며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의 마음을 퍼부었다. 봄이 막 피어나던 춘 삼월 하순의 일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묵은지 냉잇국을 끓이셨다. 엄마의 부엌은 연탄아궁이가 두 개 있었는데 한쪽 아궁이에서 하얀 쌀밥이 뿌연 김을 내며 솥에서 익어갈 즈음, 맞은편 아궁이에선 멸치 육수가 펄펄 끓어댔다. 구수한 밥 냄새와 비릿한 멸치육수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부엌은 따뜻한 온기와 식구들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쁜 엄마의 종종걸음으로 가득했다. 멸치국물이 노랗게 우러난 냄비 속으로 도마 위에서 쫑쫑  썬 묵은 김치를 김치 국물과 함께 넣었다, 거기에 외할머니께서 캐다 주신 냉이를  적당히 잘라서 넣었다. 그런데 어린 눈으로 보는 냉이라는 나물이 지저분하게 보였다. 나는 엄마가 바빠서 다듬지 않은 것을 그냥 넣나 보다 생각했다. 어차피 솥에서 펄펄 끓으면 표시가 나지 않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커서야 냉이는 원래 생긴 것이 지저분하게 생겨서 다듬으나 다듬지 않으나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김치 냉이 국이 솥에서 용솟음쳐 오르면 마늘을 넣은 다음 하얀 가루를 찻  수저로 반 절 정도 넣었다. 그렇게 끓인 묵은 지 냉잇국은 개운하고 칼칼하며 기가  막히게 감칠맛이 났다. 게다가 냉이의 향긋함까지 입 안 가득 맴돌았다. 둥그런 팥죽색 밥상에 둘러앉아 불그스레한 냉이 국에 반질거리는 하얀 쌀밥을 말아서 먹으면 다른 반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방금 전에 있었던 눈물 대소동으로 얼룩졌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냉잇국 앞에서 꼬리를 감추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려서 우리를 지켜주던 오빠가 아빠를 대신했다. 막내 동생 결혼식 때엔 아빠 대신 막내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로 걸어 들어갔다. 아빠 대신 엄마 옆에 앉아서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이다.


오빠는 맏이로 태어나서 아빠의 명령에 따라 넷씩이나 되는 여동생들을 지키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 다들 자기주장도 세고 아빠 표현대로 망아지같이 펄펄 뛰던  동생들의 오빠 노릇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오빠의  마음이 나이가 들어가며 느껴졌다. 이제는 이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돈을 모아서 오빠에게 자동차를 선물했다. 아빠 명령 받들어 우리들 지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자동차에 실었다. 한낱 물건 하나가 어찌 그간의 노고에 보상이 될까마는, 또한 오빠가 보상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을 테지만, 우리는 그제라도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어릴 적 우리의 목동은 지금도 맏이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주먹구구 레시피 <묵은지 냉잇국>


재료: 냉이 3줌, 묵은 김치 1/4쪽, 코인 육수 3알 or 멸치 육수, 다진 마늘 1큰술.


1. 냉이는 깨끗한 솔로 문질러가며 뿌리에 묻은 흙은 씻은 다음 듬성듬성 썬다.

2. 묵은 김치 1/4쪽은 씻지 않고 잘게 잘라준다.

3. 냄비에 김치를 넣고 된장 한 스푼과 코인 육 3개와 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4. 김치가 끓기 시작하면(10분) 냉이를 넣고 끓인 다음(5분) 마늘을 넣고 잠시 후에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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