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10
스타트업은 항상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를 잘 적응하는 사람이 오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로 스타트업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한 것을 3년 정도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말을 스타트업 씬에서 있는 사람들끼리 종종 합니다. 스타트업의 한 달은 파란만장하게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생긴 경우도 참 많았는데요. 이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건 일과 삶 사이에서의 밸런스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한 스타트업에 몸을 담을 때는 ‘허슬(Hustle)’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자주 쓰인 적이 있었어요. 대표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였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회사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척도를 허슬이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허슬했어야 했는데요. 일요일 밤 11시에 화상 회의에 참석한다든지, 야근을 매일 한다든지, 자신의 업무 외적인 것을 얼마나 선뜻 하는지 등에 대해서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이런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대표에게 얼마나 많은 어필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때는 팀장으로 세 명의 팀원과 함께 일하고 있을 때라 제가 이런 요구들을 방어하지 않으면 팀원들도 저도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허슬하게 일한다면 팀원들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질 거라는 믿음으로 제가 더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어요.
“일은 밀도 있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회사에 머물렀는지가 일을 잘하고 회사에 헌신한다고 판단하면 안된다." 하고 늘 주장했죠. 사실 제 주장은 대표의 마음에 와닿지 못 했습니다. 결국 허슬하지 못하다고 판단된 제 팀원을 내보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실질적인 업무를 함께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 팀원은 나무랄 데가 없는 팀원이었습니다. 밀도 있게 일을 잘하고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밸런스를 누구보다도 잘 지키는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이 저는 더 좋게만 느껴졌고, 일도 잘하는 팀원이었기에 허슬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내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제 이런 생각을 전달했지만, 역시 대표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팀원은 회사를 나가게 되었죠.
이때의 저는 꽤 회사에 헌신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 헌신의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면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요.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팀원까지 내보내게 되자 밸런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죠. 내가 삶과 일에 대한 밸런스를 깨면서까지 다닐 회사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열심히 일하고 회사에 대해서 좀 더 헌신적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오히려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알게 모르게 제 속을 곪고 있던 걸 몰랐던거죠.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하면 더 많은 걸 요구받았던 그 상황에서는 더 많이 열심히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일에 대한 밸런스를 지키고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야 더 오래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것도요.
회사 비전에 대한 동의가 이뤄지면 내 일처럼 헌신적으로 일하는 타입인 제가 삶과 일의 대한 밸런스를 잘 지키는 법은 아직 잘 모른다고 말하는게 더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헌신적으로 일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가게 되니 오히려 그렇게 일하는 것이 어리석게만 느껴졌습니다. 스스로 나를 지키고 나의 삶과 일의 밸런스를 지키는 것이 더 건강한 것임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어요. 아직 제대로 밸런스를 지키지는 못하지만 앞으로는 더 잘 지키면서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