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9
스스로 일정 관리를 한다는 건,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닐 때, 출근 전 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하는데, 그게 영 쉽지가 않더라고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건 오히려 일정 관리하기가 더 쉬울 것 같지만, 막상 게으른 저는 아침 시간도, 저녁 시간도 활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으른 제가 자율 출퇴근제인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시간 활용을 가장 잘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8~10시까지 아무 때나 출근해서 업무시간 8시간(휴게시간 포함해서 9시간)만 채우면 퇴근해도 되는 스타트업을 다니니까 오히려 너무 시간 관리를 잘하게 되는 겁니다.
제게 8시 출근은 너무 달콤했습니다. 왜냐하면 5시에 퇴근할 수 있었거든요. 아무리 한겨울이어도 5시면 회사 바깥이 환했습니다. 어둑해지려는 시점이었죠. 누군가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때의 저는 6시 반에 테니스를 30분 동안 치고 난 후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5시에 퇴근했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더라도 최소 5~6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죠. 이 자체가 너무 여유로워서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게 만들더라고요.
게다가 8시에 출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출근하기 전이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도 훨씬 높았어요. 아침 시간은 날개가 달렸을까요? 어찌나 빠르게 흘러가던지요. 정신 차리고 나면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더라고요. 와! 집에 갈 시간이 4시간 밖에 안 남았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일을 했답니다.
제게 주어진 건 자율뿐이었는데, 저는 뭐가 그렇게 기뻤던 걸까요. 하는 일도 능률이 더 오르고 일도 제가 알아서 찾아 하게 되었습니다. 야근이 많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무언갈 채워 넣어야 했던 기존의 회사에서는 중간중간에 멍도 때리고 집중도 못 했죠. 커피 마시며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애를 썼어요. 그런데 자율 출퇴근제에서는 제 아웃풋만 내면 되니까 그런 시간들이 필요 없더라고요.
어렸을 때 엄마가 “공부해라.” 하고 하면 공부하기 싫어지는 그런 못된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일까요. 오히려 자율적으로 시간을 정해 일 하는 방식은 제가 일을 더 밀도 있게 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이 더 윤택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죠.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해 일할 수 있다는 게 사람의 성향도 바꾸고 능률도 올린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습니다. 어차피 일하는 시간을 같은데도 말이죠.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을 너무 가둬놔서 능률이 오르지도 않고, 행복하게 일하지도 못하는 건 아닐까요.
제가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회사를 차린다면 연차도 무제한에, 모두 재택근무 하는 회사를 만들 거야. 구글보다 더 좋은 회사가 될 거야!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제대로 된 아웃풋만 내면 돼!”
종종 이 말을 듣는 사람 중에 대다수는 어떻게 사람을 믿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행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히려 더 무서운 말이에요. 자율적으로 모든 걸 맡기게 되면 아웃풋을 저절로 낼 수밖에 없다는 제 믿음도 있지만, 아웃풋을 내지 못하면 자율적으로 맡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율적으로 일을 하게 되고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일상도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