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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 퇴원, 그리고 단약

by 무아

퇴원 후에는 몇 주간 외래를 다녔다. 입원했을 때 먹던 약을 그대로 처방받았는데, 그 약에는 몇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첫 번째는 졸림이었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었지만, 눈에 띄게 잠이 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작용이 가장 치명적이었는데, 바로 체중 증가였다. 약이 살을 찌게 한다는 부작용을 알고서는, 약이 참을 수 없이 미워졌다.


1년간의 우울삽화 기간 동안 정상 상태였을 때의 몸무게보다 약 10kg이 넘게 살이 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집에 와 몸무게를 쟀다. 약을 먹고 아침에 다시 몸무게를 재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몸무게가 늘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가족들 앞에서 단약을 선언했다. 혼자 이겨내 보겠노라고. 약이 나를 더 망치는 중이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내 자의로 처방받았던 2주 치의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에 전념했다. 운동을 하면 이 조울증이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몸이 건강해지면, 정신도 건강해질 거라고 믿었다.


약을 끊은 채 2주 후 외래를 갔다. 세 번째 외래였다. 진료실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연습한 말들을 되뇌었다. 마침내 선생님을 뵙고, 약을 먹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제일 중요한 건 환자의 의지 아니냐고. 나는 혼자 이겨낼 수 있다고. 상담도 잘 받겠다고 그렇게 호소했다. ‘그러세요 그럼.’이라는 선생님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마치 허락인 듯 느껴졌다. 약을 먹지 않아도 완치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외래 일정을 잡지 않은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약에 의존하는 것보다 심리상담 같은 비약물치료가 더 중요할 거야.’라는 나의 판단에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다.


병에 대해 공부하고 의사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의사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안다. 어느 병원에 어떤 의사인지 밝힐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깊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왜 나를 더 설득하지 않았을까, 자의로 단약 하는 것이 재발 위험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왜 설명하지 않았을까. 왜 나를 그냥 보냈을까. 하는 원망들이 남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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