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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폐쇄병동 입원

by 무아 Feb 23. 2025


나는 조증에 몸부림치며 강제입원 되었다.


구급대원들과 가족들이 나를 끌고 갔다. 가지 않겠다고 여기저기를 붙잡으며 안간힘을 썼다. 당시엔 내가 비정상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끌려가는 와중에도 가족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에는 안정제를 투여받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입원 절차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제 좀 편해지고 싶다는 흐릿한 바람만이 있었을 뿐이다.      


처음 입원한 병원은 본가 근처의 도시에 위치한 정신 병원이었다. 폐쇄병동이었고, 보호입원이었다. 보호입원은 주치의와 보호자(가족)의 동의가 있을 때 퇴원할 수 있는 입원 형태를 말한다.


지독한 조증 삽화를 겪고 난 나는 중증 환자였다. 당시 상태를 보아서는 당연한 조치였지만, 병식이 없던 나는 ‘가족들이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나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부모님과 주치의에게 내가 안정된 상태임을 어필해야 내가 나갈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울증이란 게 어떤 병인지 몰랐고, 앞으로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지금 이 시기를 버티고 버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바랐다.     


입원 당시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보려고 해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 때문인지 도통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처음 처방됐던 약이 부작용으로 잠을 많이 유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병동에는 학교처럼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잘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병동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아픈 환자들끼리의 대화가 힘이 됐던 적도 있지만 점점 간호사와 보호자에게 어떻게 보여야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작당 모의로 변질되었다.     


나는 매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퇴원을 요구했고, 3주 만에 전원(병원 이동)이라는 명목으로 퇴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으로 입원한 병원은 결코 환자 중심의 병원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퇴원을 허락했으니 말이다.


정신질환자의 퇴원 여부는 주치의의 판단이 전적으로 중요하다. 입원 치료와 퇴원 후 외래로 치료를 받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환자가 충분히 혼자 질병 관리를 할 수 있을 때 퇴원을 허락해야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은 그 1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조울증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지옥 같은 정신병동을 탈출했다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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