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5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긴 우울의 터널 끝에 조증이 있었다

조울증의 시작

by 무아 Feb 16. 2025

 

우울삽화를 처음 겪은 건 아마 24살 가을. 당시 나는 전문직 자격증 공부를 위해 처음으로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시작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인정을 받아야지만 내 가치가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선택하면 자취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나에게 있어 집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통제 없이 자유로이 살고 싶었다. 어쩌면 공부는 핑계였고, 자취가 나의 주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 낡은 오피스텔에서 인생 첫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첫 자취는 꿈만 같았다. 경제적 자립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건 꽤나 신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부해야 한다’는 현실이 나를 옥죄었다.


뚜렷한 동기부여 없이 시작한 공부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 시기에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바닥났다. 마치 내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 마냥 나는 끝도 없는 우울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방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길고 긴 우울 삽화의 시작. 방에 있는 커튼을 닫고,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침대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완전히 나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울을 숨긴 채 2주에 한 번씩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러 갔다. 열심히 공부 중인 딸이라는 가면을 쓰고 집으로 갔다.     


1년의 우울기 끝에는 조증 삽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은둔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하루에 2시간씩 일주일을 넘게 견뎠다. 수면장애는 조증의 대표적 증상이었다.      


그렇게 조증이 찾아왔다.


기분이 무척이나 들떴고,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모든 행운이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사랑스러운 기분. 조증은 엔도르핀을 마구 내뿜었다.


조증으로 들뜨는 와중에 동시에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걸 느꼈다. 가족들의 작은 잔소리에도 미칠 듯이 화가 났고, 소리를 질러댔다. 당시에는 그게 이상한 일인 줄 몰랐다.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상태로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조증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잠을 못 자니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입원 직전의 나는 그야말로 ‘광인’이었다. 당시 나는 지인의 자취방을 빌려 잠시 머물고 있었다. 많이 힘든 것 같으니 집에 돌아가라는 지인의 요청에도 퇴거하지 않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옆집 초인종을 누르며 여기 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며 망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연락을 받고 온 가족들에게 욕을 쏟아내기도 했다. 실랑이 끝에 나를 끌고 응급실에 가는 가족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세상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왜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조증이 무서운 이유는 내 행동에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의 조증은 결과적으로 나와 그때의 나를 도와준 지인, 그리고 가족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심어준 일이 되었다. 내 의지가 아닌 병 때문에 일어난 일이더라도, 책임질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평생을 미안함 속에서 살게 되었다. 조울증을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평범했던 내 일상이 무너지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