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약 후 약 10개월이 흘렀다. 10개월 동안, 나는 약 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우울삽화 기간 동안 불어났던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PT 수업을 받으며 운동에 전념했다. 급격히 살이 빠져 무릎에 물이 찰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내 자존감도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뚱뚱한 나, 조울증 진단을 받은 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나,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짐이 되는 나. 나를 수식하는 모든 단어들이 부정의 극단이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썼다. 특히나 외적인 변화에 크게 집착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약을 끊겠다고 선언한 직후 가족들은 나를 걱정했다. 그러나 내가 나름대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며 점점 약을 권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도 나도 조울증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을 시기였기 때문에, 일단 집에서 지내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약을 끊자 축 쳐졌던 몸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졸렸던 부작용이 사라지니 좀 살만했다. 어머니는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 한약을 지어주셨다. 한약은 자연에서 온 것이고 나 역시 자연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바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의사 역시 침을 맞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뇌에 좋은 약을 지어주겠다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운동하고, 잘 먹고, 잘 자며 10개월을 보냈다.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던 조증삽화 때의 내가 아니라, 원래 내가 알던, 원래 가족들이 알던 내 모습이었다. 갖은 노력 끝에 체중은 다시 정상 범위로 돌아왔으며 친구들도 하나둘씩 만나며 일상을 회복해 갔다. 조울증 진단은 나에게 있어 잠깐 있었던 해프닝 정도로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흐려진 상태였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잊고 있던 조증이 다시 찾아온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