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로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부산역에서 형을 배웅하고 지하철에 올라 이 글을 쓴다.
조금 전 나는 불쾌한 일을 겪었다.
내가 나서야 했다.
가끔 남자들의 세계는 그렇다. 말보다 해결하기 쉬운 덩치를 내세우는 것이다.
조금 전 부산 지하철 1호선.
경로석과 경로석 사이 연결통로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허공에 침을 뱉고 장풍을 날리는 흉내를 냈다.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옷은 깨끗했지만 눈빛이 흐렸다.
어르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했다. 못 본 척하는 법을 체득한 듯했다.
나도 잠시 머뭇거렸지만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겁니까."
그가 나를 노려봤다.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최대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뭘 봐."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어르신 몇 분이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할머니가 내리며 작게 말했다.
"무서워 혼났네. 고마워요."
하지만 그에게 말할 때 내 몸은 여전히 긴장했다.
등줄기에 진득한 땀이 배어 나왔다.
혹시라도 놈이 칼이라도 숨겨 놓고 달려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나섰나 싶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곧 내렸다.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우보이 영화에서 나오는 마초들처럼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하며 폼을 잡고 있었다.
어젯밤 나는 선배와 광안리 해변을 걸었다.
민락수변공원까지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걸었다.
광안대교가 희미하게 보였고 부드러운 비가 내렸다.
파도가 낮게 부서지는 소리가 우산 위로 스쳤다.
그런 날씨에 마신 막걸리는 평소보다 두 배쯤 달았다.
우리는 민락수변공원과 근처 시장을 둘러보고 숙소에서 잠시 쉰 뒤 저녁을 먹으러 초량동 노포로 갔다.
나는 시끄러운 장소를 꺼린다.
사람에 치이면 예민해진다.
유명한 맛집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하지만 선배가 먼저 들어갔다.
나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선배를 따라 들어갔다.
노포에는 이미 취한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선배는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띄웠고
나는 반대편에 앉아 조용히 막걸리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노인이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는 나와 대화 중이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노인은 목소리를 높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선배가 부산 사람이 아닌 걸 알고 함부로 굴고 있었다.
그 순간 기분이 상했다. 술자리라 해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동생이랑 오랜만에 한잔하러 왔습니다."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노인들에게 말했다.
"운동하는 사람은 함부로 사람 대하지 않습니다. 예의 지킵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노인은 나를 훑어봤다.
어제 나는 187cm에 105kg, 운동복 차림이었다.
숨쉬기 운동의 달인인 내가 봐도 어제는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시비를 걸던 노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사라졌다.
선배가 멋쩍게 웃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잔을 들었다.
어제와 오늘 나는 마초였다.
그 단어가 부끄럽게 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