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겨듣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 때

by 진이설

7월 한 달 내내 정신이 멍한 상태로 지냈다.

이 멍한 기운은 8월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눈앞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고
누가 말을 걸면 몇 번은 되물어야 할 정도로 심할 때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넘기는 것 같았지만

사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있었다.


내가 말하는 무기력하다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몸속 어딘가에 웅크려 있었다.


뭔가 두뇌나 행동을 리셋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왼손으로 이를 닦고
샤워는 뜨거운 물로 시작하고 찬물로 끝냈다.
늘 걷던 길 말고 낯선 골목으로 들어섰고
내가 모르는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뭔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었다.


7월 초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거래처 대표와 다툰 이후 내 정신적 공허함이 커져갔다.


그는 잘해줄수록 더 요구하는 사람이다.
윽박지르고 밀어붙이고 짜증과 원망을 내게 퍼부었다.


그가 결국에는 나와 통화를 녹음해 상사들에게 보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 대한 분노보다 놀라움이 먼저였다.

그 정도까지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사직서를 썼다.
미련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었다.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 믿었다.


회사는 붙잡았다.
그 거래처는 결국 팀장님이 맡기로 했다.
나보다 연차가 낮은 동료에게 넘기려다
이미 내 전에 두 명의 직원이 그 일로 나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고

팀장님이 감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다.
팀장님께 미안했고
내가 더 잘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러나 후회만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스스로를 자꾸 탓했고
그럴수록 우울감이 깊어졌다.
우울감보다 먼저 앞서는 건 창피함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무너지는 걸까.
왜 회복이 더딜까.
왜 이런 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까.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잊고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래도 어딘가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지금 겪는 이 감정들이
언젠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모르지만 그럴 거라 믿고 있다.

지금은 그저 하루에 한 걸음씩만이라도 나아가보려 한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멍하다는 것은
마음이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신호를 이재는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의 말보다
내 안에서 조용히 울리는 목소리를
내가 먼저 여겨듣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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