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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국진 Aug 04. 2020

유희열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PD가 되었어요.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팬질대신 피디질로 가수와 친해지세요!

고등학교때부터 윤상과 비슷하게 닮았다 소리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윤상노래를 좋아하게 되었고, 015B,이소라,이승환,김현철 등의 가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좋은사람>이라는 노래가 나온 후 토이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고

유희열이라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다.

프로듀서를 꿈꿔 끝을 알 수 없는 공채준비를 하며 좁은 고시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바로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 가고 싶은 방송국 정문 앞에서 한 참 서 있기

둘째, 피디가 되어 좋아하는 가수를 대놓고 만나서 친해지기 였다.

공부를 하다 집중이 안돼면 바로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를 왔다.

MBC에서 30분, KBS에서 30분 멍하니 건물을 쳐다보며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들을 바라봤다.

공부에 지칠 때 이거 은근 마음을 다 잡을 때 도움이 되었다.

또, 차일피일 건물밖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길 기다리느니

아예 방송국으로 입사해 그 사람들과 방송도 같이하고 사적인 만남도 가져야지라는 맘으로

버텨왔고 공채준비 2년만에 KBS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한 번의 탈락, 그리고 방송의 물을 먹다!

2004년 KBS공채 최종면접에서 나는 떨어졌다. 어렵게 올라 2대1의 경쟁률만 남은 단계에서

너아니면 나였는데 떨어지는 사람이 내가 될 줄 몰랐다.

상심을 잠깐 하고 다시 재수준비를 하는데 1년을 마냥 고시원에 쳐박혀있기가 싫었다.

공부를 하면서 방송일이 나에게 맞는지 확인도 할 겸 부모님에게 손벌리기 싫기도 하여

무작정 방송사 홈페이지에 일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무턱대고 올려댔다.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어느 구직사이트에 올려놓은것 보다 빠르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MBC<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라는 프로그램에 프리랜서 조연출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고시원비가 19만원, 받은 월급은 120만원이었는데 일이 너무 많다보니 그와중에 돈도 조금씩 모았다.

모은 돈으로 CD를 사서 출퇴근 버스안에서 듣곤 했는데

짬이 날때면 라디오부스가 있는 7층으로 올라가 숨어서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방송을 지켜보곤 했다.

어느 날, 유희열이 방송을 마치고 나올때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생처음으로 연예인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PD가 꼭 될거라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조연출이 되다!
유희열이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내가 <스케치북>으로 발령받을 때는 정확히 100회 특집 때였다.

PD가 되었어도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같이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아직도 그런 기회는 없었지만;;

첫 녹화를 끝내고 회식자리에서 새로운 제작진인 나를 보고 희열이형이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떨리는 것도 잠시 내 이름을 불러주며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나는 거기다대고

토이의 애정곡을 술술 나열했다. 꿈만 같았다. 그리고 피디하길 잘했다라고 느낀 첫 경험이었다.

이후, 토크 편집은 내 업무중 하나였는데 밤새 편집하고 있으면 희열이형이 직접 전화를 해

편집손볼 부분들을 얘기해주었다. 부스밖에서 기다리다 조심스레 사진요청을 했던 내가

아예 그 분과 통화를 하게 되다니...어느 직업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이소라, YB, 이문세, 백지영, 아이유, 이적 등 최고의 뮤지션을 만났던 것도 소름끼치게 행복했다.


나의 자랑 유희열

녹화날 나의 업무는 부조정실에서 디렉팅을 하는 메인피디가 무대위의 업무를 진행 할 수 있도록 하는 플로어디렉터 역할이다.

부조와 무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인터컴을 끼고 내가 메인피디의 얘기를 듣고 진행하는

<분신>같은 존재인거다.

유희열과 함께 방송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런 짤막한 통화나 회식자리가 아니라 녹화장에서 보던 그의 말이었다.

가수들의 노래가 끝나갈때쯤 무대 오른쪽 아래에 잠시대기하고 있다가 나의 사인을 받고

희열이형이 무대위 가수와 토크를 이어나가는 형태였는데

MC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가수와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1000여명의 관객을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무엇보다 출연하는 가수에 대한 정보를 대본이상으로 파악해 오는 그의 질문들과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와 열정을 관객들에게 매우매우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가 멋졌다.

피디가 된 것이 그 순간이 나에게 희열이 되었다.


스케치북 훈남피디 되다!

당시 함께 일하던 제작진과 처음으로 스케치북 성탄특집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성시경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때였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선배의 기획으로 시작되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당시에는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해있던 때였고 스케치북을 해본 조연출이 필요하다하여 일을 돕게 되었다.

피디는 늘 출연진 뒤에서 일을 하기 마련인데 선배의 제안으로 존박에게 내레이션 큐를 주는 작은 촬영에

직접 출연하게 되었고 방송이 나가는 다음날에는 KBS연예대상팀에 또 차출되어

방송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25일 연예대상 당시엔 너무 바빠서 잠시 전화를 꺼두었었는데 방송이 시작될때쯤

출연자와 프로그램 별 제작진이 나에게 와서 "어이~훈남피디!" 연신 이런 말을 건넸다.

"나를 놀리나?" 이러면서 시큰둥하고 말았는데 방송다음날 리뷰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메인에 걸리면서

많은 분들이 기사를 보고 한 말들이었다.

*아래가 그 문제의 기사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스케치북 훈남피디가 되었고 신기하게도

지나가다 마추치는 사람들이 "어? 훈남피디다!"라고 사진을 함께 찍자고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인기는 부질없다고 느낀게 딱 2주가더라...

*아래는 그 문제의 오프닝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aVLSVKWyjw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00회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희열이형 대기실로 꽃을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형의 카톡을 받았다.

스케치북은 나에게 음악에 대한 소중함과 좋은 아티스트들을 만나게 해준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건, 사람 유희열을 알게 되었다는 것.

피디가 이렇게 행복한 직업이란 걸 새삼느끼게 해준 유스케가 1000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싶은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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