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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해라.

<식은 연애> 일곱 번째 이야기

by 옥광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토요일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인가. 6시 10분경. 양치질 중인 '진우'의 귓속으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진우는 빠르게 입을 한 번 헹구어 내고,


"누나!! 시끄러워!"


진우의 외마디 고함 때문인지, 진동 소리가 끊겼다. 진우는 어서 이 양치질을 마무리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 학교에 지각을 하기는 싫다.


<똑, 똑, 똑!>


"진우! 아직 멀었냐?"


양치질을 다 끝낸 진우는 수건을 하나 꺼내 들고 얼굴을 닦으며 거울을 한 번 들여다봤다. 머리도 단정하고 얼굴도 말끔하다. 안방 화장실 비데가 고장이라며 거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아빠 덕분에 옷 매무새는 나가서 점검해야겠다. 엄마는 이모들과 주말여행 '눈 구경'을 갔다. 이미 첫째 '지우'를 통해 고3을 겪어 본 엄마는 고3을 바라보는 둘째 진우의 겨울은 여유를 가져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새벽에 들어온,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어온 누나는 신입생 때보다도 더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


'어휴, 누나 생각하니까 갑자기 목이 마르네.'


갈증을 느낀 진우는 생수나 한 병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어라? 이게 웬 캔커피냐?'


냉장고엔 이모들이 여행 전 들러서 채워 놓고 간 반찬통들로 이미 그득했는데 그 사이사이로 익숙한 파란색 캔커피들이 보였다. 어젯밤까진 분명 없던 것들인데 일곱 개? 여덟 개쯤 되는 것 같다.


"누나!!! 이거 누나가 가져다 놨어?"

"……."


누나는 대답이 없었다. 아빠한테도 물어볼까 했지만 아침부터 웬 커피냐고 다짜고짜 안 된다고만 할 테고, 엄마한테도 이를 것이 분명했다.


"왜? 무슨 일이냐? 네 누나가 왜?"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화장실에서 궁금해하는 아빠에겐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며 캔커피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맛은 막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나.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저 핸드폰 소리는 누나와 함께 새벽에 들어왔다. 새벽 2시를 조금 넘겨 자려고 누웠는데 누나가 살금살금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었다. 엄마가 집에 없는 기회를 틈타 아빠한테는 대충 과모임이 어쩌고 둘러대고 신나게 놀고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저 누나는 지난번에는 현관 곁에 둔 행운목 화분을 쓰러트렸었다. 그래서 지난 새벽, 진우는 방 안에 누운 채로 오감을 누나에게 집중했다. 다행히 이번엔 화분이 쓰러지지 않았다. 웬일로 사람도 쓰러지지 않았다. 누나는 생각보다 맨 정신이었고 누군가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받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얼마 전 용돈을 모아 장만한 각 잡힌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학교 갈 준비를 끝 낸 진우는 남은 여유 있는 몇 분을 누나 '지우'의 핸드폰 진동 소리를 진정시키는데 쓰기로 했다.


"누나! 전화기를 꺼 놓던가, 아님 그냥 받아서 나중에 하라고 해! 밤새도록 뭐 하는 거야?"


이불속에 파묻혀 있는 누나는 손만 이불 밖으로 내밀어 진우를 그냥 가라고 손짓한다. 진우는 캔커피를 간헐적으로 벌컥벌컥 마시며 잔소리를 계속 이어간다.


"내 말 좀 들어봐, 혹시 누가 스토킹 해? 스토커야? 아니지? 응? 누나?"


지우는 진우의 잔소리가 지겹다.


"야 나가, 꺼지라고."



지난밤, 지우는 진우의 생각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학교 앞에 새로 생긴 포차의 크림 막걸리가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같은 과 오빠A 때문에 더 집에 갈 수 없었다. 학번은 같지만 1년 재수를 해서 한 살이 많은 이 오빠A는 옷을 잘 입었다. 얼굴은 그냥 보통이었는데 비율이 좋은 건지 옷발이 잘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경쟁률이 치열했다. 지우가 대충 파악한 경쟁자만 해도 4명이었다. 약간 불안한 감이 있었으나 다행히 방금 받은 톡으로 승리를 확신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민초?>


근처의 '베스킨 라빈스 31'이 문을 닫기 전에 둘만 몰래 빠져나왔다. 지우는 대충 엄마가 엄하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먼저 나와 베라31 앞에서 오빠A를 기다렸고 10분 만에 나오겠다던 오빠A를 15분만에 만났다. 오빠A는 지우가 추운데 기다리느라 아이스크림은 안 되겠다며 지우의 손을 잡고 무작정 걸었다. 무작정 걸어서 포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모텔로 들어갔다.


이 모텔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번에 오빠B와 와서 3층방을 썼는데 층간 소음이 심했다. 오늘은 7층방 열쇠를 받았다. 이 건물은 7층짜리 건물이고 오늘은 꼭대기층을 받았으니 층간소음 걱정을 덜었다. 방은 어딜 가나 그 구조는 비슷하다. 거의 반을 넘게 차지하는 트윈 베드, 락스 냄새가 나는 하얀 침구류, 벽에 매달려 있는 TV, 화장대, 화장대에 있는 전기포트, 녹차 티백, 커피 믹스 등등... 화장대 밑에는 조그만 냉장고가 의자 들어가 있듯이 쏙 들어가 있다.


"왜? 뭐 마시게? 지우야 목마르진 않아?"


지우는 냉장고를 열어 안을 보고 있었다. 볼 때마다 왜 있는지 궁금했던 미에로 파이버, 파란색 캔커피 2개가 있다. 지난번과 같았다. 오랜만이었다. 보통 생수병만 있는데도 많던데.


"뭐 해? 안 씻어? 나 먼저 씻는다."


오빠A가 벌써 옷을 홀라당, 홀라당 벗어 젖히고 있다.


"지우야, 우리 같이 씻을까?"


지우는 급하게 진행하는 오빠A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 진행 속도를 늦출 자신도 없었다.


'이 자식이 발정 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지우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뭐야? 애들이야?" 오빠A가 지우의 바지 지퍼를 내리며 물었다.

"아니, 아니야. 동생 톡. 무시해도 돼요. 아! 오빠! 뭐예요?!"


씻자고 해놓고선 화장실로 안 가고 지우를 침대로 밀쳤다.


"오빠, 안 씻어요??"


라고 물었지만 사실 지우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빠A는 이미 씻을 생각은 없었고 오로지 할 생각뿐이었다. 자꾸 뭐라고 뭐라고 물어보는 지우의 입을 오빠A의 입으로 막았는데 이건 키스라기 보단 말을 좀 그만 하라는 '입틀막' 같았다.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즈이이이잉~>


핸드폰으로 오는 톡이며 걸려오는 전화를 전부 확인 안 하는 지우가 동생 진우는 답답했다.


"야!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는데 잠수 타는 거냐?"

"뭐? 야아?" 지우가 큰 소리로 버럭 했다.


진우가 누나를 '야'라고 부르니 그제야 누나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불 밖에 나온 누나는 생각보단 깨끗했다. 머리도 그렇게 떡지지 않았다. 진우는 이쁘지도 않은 누나가 잘 씻지도 않는 것 같아 종종 걱정이 되곤 했었는데, 웬일로 세수도 하고 잠든 것 같아 순간 누나가 대견했다. 그러나 저 성질머리는 그대로다. 진우는 '천성설(하늘이 준 타고난 성질머리는 불변한다)'을 믿는다.


"야! 너 빨리 학교나 가! 잠수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꺼져!"


역시 천성설! 진우는 캔커피를 마시며 누나의 방을 둘러봤다. 누나가 벗어 놓은 양말이며 잠바, 목도리 등등으로 누나가 어느 경로로 방 제일 안 쪽 침대까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원래도 정리정돈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누나인데, 어는 날부터 옷도 서랍에 정리 안 하고 그냥 책상 근처에 쌓아 놓고 주워 입는 것 같았다.


"우왓! 이게 뭐야?!!"


방을 둘러보며 혀를 차던 진우는 콧등 밑, 방바닥에 널브러진 누나의 가방을 발견하지 못 해 발이 걸려 휘청 중심을 잃었다. 진우는 넘어지는 건 겨우 면했지만 얼마 안 남았던 캔커피의 커피가 쏟아지고 말았다.


"아! 이게 뭐야! 옷이 더러워졌잖아! 그러니까 치우고 살아라! 쫌!!"

"아니! 지가 흘려놓고 왜 승질이야?! 그러니까 그냥 가라고 했잖아! 왜 꾸역꾸역 들어와서 이 난리야, 너는!"


지우는 어릴 땐 찍소리도 못 했던 동생이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는지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진우 때문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행히 방바닥에 널브러진 지우의 옷가지들은 멀쩡 했고, 깔끔 떠는 동생 진우의 잠바에만 아주 조금 커피가 쏟아졌다. 아니 그냥 몇 방울 튀었다고 보는 게 옳다. 동생 자식, 겨우 저거 가지고 오버하기는.



"야 이걸로 닦아라! 나 좀 씻는다."


지우는 짜증이 확 났다. '저 미친 새끼가, 진짜! 아우!!'


오빠A는 생긴 이미지는 정말 좋았지만… 못 했다. 섹스를 너무 못 했다. 자기만 그냥 졸라 열심히 하고 끝냈다. 이렇게까지 상대방 반응 하나 살피지 않고 섹스를 하다니. 2인 3각에서 파트너가 넘어지든 말든 파트너를 질질 끌고 자기만 가는 타입이다. 뭐 완주는 하겠지, 거지같이. 지우는 크게 실망했다.


처음 지우가 콘돔을 찾았을 때 멈춰야 했었다. 오빠A가 자기는 프로라며 콘돔 없어도 피임을 잘한다고 했을 때, 그 때 “STOP!”을 외쳐야만 했었다. 정신이 없어 뭔 소린가 싶었는데, 우엨! 이 오빠 내 배에다 사정을 했다.

'피임약'을 먹는다고 말했음 더더욱 끔찍할 뻔했다.


오빠A는 지우의 배 위에 휴지를 둘둘 말아 덮어 놓고 혼자 화장실로 냉큼 들어가더니 정말 대충 씻고 나와서 침대에 누웠다. 절대 깔끔 떠는 타입이 아닌 지우가 봐도 이 오빠 더러워 보였다.



"야! 가방 안에 뭐 있어. 그걸로 닦아!"


진우가 잠바에 튄 커피를 닦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지우가 자신의 가방을 가리켰다. 지우의 가방 속엔 두루마리 휴지가 들어 있었다. 새것이었고 한 두 개가 아닌 네 개가 들어 있었다.


"누나! 누나는 무슨 휴지를 이렇게 들고 다녀? 조그만 거 들고 다녀 조그만 거."

"아! 시끄럽고! 빨리 닦고 나가! 아니 그거 가지고 나가서 닦어, 나가!"


지우는 동생 놈 때문에 어느 정도 잠이 깨 버렸고 마지 못 해, 핸드폰 톡을 몇 개 확인했다.


"아 놔 이게 끝까지 진상이네!" 핸드폰을 본 지우는 어이가 없었다.



지우는 머리까지 감고 개운 하게 씻고 나왔다. 오빠A가 침대 가운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짜증 나게 코도 골고 있었다. 지우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켰더니 오빠A가 눈을 감은 채로 시끄럽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우가 드라이를 포기하자 오빠A는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지우는 잠바의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복도로 나갔다. 질질 끌 필요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오빠A에게 톡을 보냈다.


‘설마… 톡 보고 쫓아 나오거나 그러진 않겠지.’


엘리베이터가 빨리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왜인지 1층에서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지우는 하는 수 없이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올라왔다.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디뎠다. 비상계단 복도, 중간층마다 진열장이 놓여 있다. 그 안에는 파란색 캔커피가 상자째 놓여 있고 두루마리 휴지가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지우는 3층과 2층 사이에서 잠시 진열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진열장 선반에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이대로 집에 가자니 뭔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나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지.’



"누나, 그럼 냉장고에 캔커피도 혹시 누나가 갖고 온 거야?"

"왜?"

"나 몇 개 가져가도 돼?"

"너 다 먹어! 다 가져가!" 지우는 핸드폰을 대충 엎어놓고 대답했다.

"오예~" 진우는 누나가 웬일로 인심을 쓰나 싶었다.

"누나, 그리고 말이야 너무 튕기지좀 마. 밀당을 해야지, 밀당을~"

"야! 닥치고 꺼져!"

"좀 잘 해봐. 나 간다~"


한결 기분이 나아진 진우는 냉장고에서 캔커피 3개만 꺼내 담았다. 다 쓸어 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책가방의 쉐잎이 망가질 것 같아 욕심부리지 않았다. 방금 꺼낸 냉장고의 캔커피는 차갑다. 행여 가방 안 문제집이 젖을 까 봐 플라스틱 파일로 문제집을 보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빠~ 저 다녀오겠습니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마친 아빠는 샤워 중이었다. 물줄기를 뚫고 잘 다녀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 나 진짜 나간다~"


현관문에서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묶고 일어선 진우는 거울로 옷 매무새를 점검하며 지우를 한 번 더 찾았다.


"아직도 안 갔냐?! 빨리 가."


지우는 침대에 엎드려 누워 오빠A가 밤새 전화한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었는지 확인하고 그가 남긴 진상어린 톡도 제대로 훑어봤다.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여러가지로 점점 더 별로다. 지우는 옷빨에 단단히 속았다고 생각했다.


"야! 양진우 갔냐? 나갔어?"


지우가 큰 소리로 진우를 찾았다.


"왜?" 막 현관문을 나서려던 진우가 지우의 부름에 대답했다.

"야! 양진우! 너는 잘해라~"

"뭘? 뭘 잘해?"

"아, 자세히 알 건 없는데... 그냥 좀 잘하도록 해~ 뭐든지!"

지우가 목청을 드높여 외친다. 잘 좀 하라고.


"뭐래? 누나나 좀 잘해!"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진우는 이 말이 누나 방까지 안 들릴까 봐 염려되어 한 번 더 크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순간 지우 핸드폰이 울렸다. 오빠 A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지우는 얼른 종료버튼을 누르고 수신 거부를 했다. 아빠가 해장국을 끓여 주신다 하니 그때 까지만 더 누워 있어야겠다.











너는 잘해라. by 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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