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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계획

<식은 연애> 여덟 번째 이야기

by 옥광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 10분만 걸어가면 발레학원이 있다. 나는 이 발레학원 취미 발레반 수강생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반은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나이차가 스무 살 이상이고 결혼 유무, 아이 유무 모두 제각각 다르지만 생김새는 건강한 지구인 종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학원에는 우리 지구인 종족 말고 다른 종족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선생님, 중력을 거스르는 ‘발레리나 종족’.


가늘고 긴, 특히 목이 길고 얼굴이 작은 그들 ‘발레리나 종족’은 나이 더하는 ‘셈’은 우리 지구인 종족과 똑같이 한다. 대부분 20대 중후반 또래이다. 결혼과 임신, 출산이 고민이 될, 혹은 그 고민이 시작 될 나이. 어느 날, 이 종족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K 씨는 다시 태어나도 아이 엄마… 할 거예요?”


그 해, 29살 발레리나 종족 그녀는 우연히 독일에 있는 작은 발레단에 오디션을 볼 기회를 갖게 되어 곧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발레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남기보다 댄서로 나아가길 원했던 그녀는 29, 결정을 해야 했다. 그녀의 독일행은 단순한 ‘출국’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오디션 기회를 함께 기뻐해 주고 독일행 준비를 응원했던 그녀의 남자 친구가 머릿속에는 진작부터 해왔을 ‘질문’을 출국이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서 털어놓은 것이다.


‘우리의 아이 계획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것이 그의 질문의 요약이었다.


선생님은 사이드 스트레칭, 일명 다리 찢기 중인 나를 거들기 위해 내 양 허벅지 위에 서 있었다. 나는 골반 탈골의 고통을 호소하기 직전이었는데 선생님의 질문에 호소를 잠시 미루고 나를 따라 학원에 놀러 와 운동 매트를 늘어놓고 징검다리처럼 뜀뛰기 놀이를 하는 5살 내 아이를 보았다.


첫 임신은 남자 친구라고 부르기는 뭣 한 친구와 함께 했다. 성격 좋고, 술 마시고 놀고 섹스 하기는 좋았지만 어디 가서 사귄 다고 말하기는 싫은 친구였다. 그에게 사회적 애정은 없었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낙태 의사와 함께 말했고 그도 흔쾌히 동의했다. 병원비도 함께 부담했고 수술 당일뿐 아니라 수술 하루 전, 자궁문을 열어 주기 위한 병원행도 함께 갔다. 수술 후에 맞는 영양제의 가격대 상, 중, 하를 두고 내가 고민할 때 당연히 상으로 가야 한다며 결정의 시간도 줄여주었다. 회복은 1주일 정도, 평소보다 긴 생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몸이 허해 있었으므로 1주일의 반을 고기반찬으로 먹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순두부찌개와 함께 한 식사를 마지막으로 그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두 번째 임신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커피빈 화장실에서 확인했다. 커피빈의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를 시켜 놓고 지난번, 피임에 방심했던 날이 떠 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를 사용해 보고 안 것이다. 손에 소변이 튈라 조심조심 힘 조절해가며 소변 줄기에 임테기 끝을 적셨고, 소변은 점점 물들어 가며 바로 선명한 보라색 두 줄을 만들어냈다. 나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피임약을 먹고 있었는데 딱 그 달이 의사의 권유로 간에 부담을 덜기 위해 한 달간 약을 쉬던 달이었다. 그렇다면 도구라도 잘 사용해야 했건만 방심했다. ‘오늘의 커피’는 한 모금도 못 마셔보고 버렸다.


그 날 새벽 1시에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새벽 3시가 지났을 무렵, 술자리에 있던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친구들은 그제야 내가 왜 술은 입에 대지도 않고 냉수만 벌컥벌컥 마셨는지 이해가 간다며 속 시원해했다. 생일인 친구는 내가 준 생일 선물 외에 내가 미쳐 버리지 못했던 내 호주머니 속 담배 반 갑까지 선물로 받아 갔다. 두 번째 임신을 함께 한 남자 친구라고는 부르지만 결혼 하기는 뭣 했던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결혼을 했다.


“뭐야? 언니는 그럼 임신 안 했음 결혼 안 했어?”

“응! 안 했지.”


선생님 도움 없이도 다리 찢기가 되는, 결혼을 안 한 지구인 종족 친구의 물음이었다. 이 물음에는 1의 고민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항상 스스로 해왔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매트와 매트 사이를 뛰는 것에 실패를 거듭했던 아이가 드디어 성공했다. 깔끔하게 매트 위로 착지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조금 버거운 거리여서 저 폭을 줄여줘야 하나 싶을 때 한 성공이었다. 아이는 바로 나를 향해 빨갛게 닳아 옳은 뺨을 더 붉히며 웃어 주었다. 성공의 기쁨에 흥분한 콧구멍에선 코가 찔찔 흘렀는데 그 콧물을 닦지도 않고 아이는 또 뛰었다. 나는 그 뜀뛰기에 환호성을 질렀다. 절대 골반 탈골의 고통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의 다음 생의 아이 계획에 대한 물음에 대답했다.

“내세에도 또 아이 엄마가 된다라…, 저는 지금 저 아이가 내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보장이 확실하면 그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래요. 그렇지 않다면 엄마라는 거 안 해!”


아이는 매트와 매트 사이를 뛰는 저 동작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수 없이 반복을 이어갔다. 발레 홀의 모든 지구인 종족과 발레리나 종족 선생님까지 아이의 다음번 뜀뛰기 성공을 기다리며 응원했다. 만일 응원받고 있는 저 아이가 없었다면 반대로 내가 선생님한테 물었을 것이다.


“선생님! 독일 머무는 동안 나도 독일 여행 갈래요! 독일 같이 가면 안돼요?”


물론 이 질문 대신 그런 고민은 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아니 꼭 다녀오라는 강요 같은 덕담을 건넸다.


얼마 후, 선생님은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오디션은 안 됐고, 남자 친구와는 카톡으로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대로 1년간 독일에 더 머물며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 1년은 선생님에게 ‘홍삼’ 같은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계획했던 독일에서의 댄서 생활은 못 했지만, 지금 한국 발레단에서 발레리나로서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여행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있던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원하는 목적지에 꼭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할 여행을 계획 중이다.











출산 계획. by 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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