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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알! 금욕(禁辱)

<식은 연애> 여섯 번째 이야기

by 옥광



분리수거할 종이박스들과 함께 자빠지며 생각했다. 전에도 딱 여기에 발이 걸렸다. 아파트 앞 주차장, 주차 방지턱. 지금 아홉 살 아들 '범블리'가 세 살 때였다.


이혼 후, 새로 우리가 이사 온 이 곳으로 방문한 동생네를 배웅 나가던 때였다. 겨울이라 해가 짧았다. 바람이 아이에게 찰까 봐 아파트 현관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깜깜해서 지하주차장에서 아파트 앞, 지상으로 올라온 동생네 차를 놓칠까 봐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곧, 헤드라이트로 앞을 밝히는 동생네 차가 보였다.


집에서부터 동생과 동생 와이프는 밖에까지 나와서 배웅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사양했었다. 내가 거기에 고집을 피우고 아이를 안고 나왔다. 녀석은 막 저녁을 먹어 눈이 가물가물 했다. 배웅만 하고 후다닥 들어올 생각에 신발도 신기지 않고 내복 바람으로 대충 담요에 둘러서 나왔다. 동생 와이프가 아이는 자기가 안고 같이 차를 기다리자고 제안했었는데 거절했다. 녀석은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 무거운 녀석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점점 안고 있는 팔이 약해졌다. 빨리 얼굴 한번 더 보여주고 집에 들어가서 아이를 내려놓지 않으면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동생네 차가 아파트 현관 앞으로 거의 접근했을 때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급했다. 그리고 딱 이 방지턱에 발이 걸렸다. 그 순간은 슬로우로 기억된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고속촬영한 것처럼 너무나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서 가장 아쉬운 것은 내 몸도 그만큼 천천히 움직인 다는 것이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면 범블리가 크게 다칠 것이 분명했다. 고속으로 움직이던 그 짧은 순간에 상상을 해버렸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하고 더러운 아스팔트에 아이가 부딪힌다.' 절대, 절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분명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는데 나를 다시 뒤로 넘어지게 한 것이다. 그 신박한 움직임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왼팔 하나로 계속 아이를 안은 채,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크게 엉덩방아를 찌었다. 거의 누웠다. 범블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털 끝 하나 닿지 않았다. 우리를 발견한 동생이 급히 차에서 튀어나와 범블리를 안아 올렸다. 넘어지던 순간에도 꿈쩍 않던 녀석이 내 품에서 떨어지자 울기 시작했다. 한 번에 벌떡 일어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두어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일어나 다시 범블리를 품에 안았다.


이때가 내 기억 속, '첫 번째 위기'였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아홉 살 범블리는 자기 머리 위로 올라온 큰 택배박스를 들고 뒤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범블리는 작은 장난감들을 종류별로 넣을 수 있는 서랍장을 요구했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크기와 가격을 고려해 주문한 가장 적합한 서랍장이 마침 오늘 도착했다. 범블리의 서랍장이니 그 택배박스까지 범블리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있다.


"너 발 조심 해! 너 발 조심!"


나는 범블리를 향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나도 이것저것 분리수거할 것들이 담긴 종이박스를 들고 걷고 있었는데 이 박스도 제법 커서 나의 시야를 가렸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앞을 안 보고 걷고 있었다. 내 고개는 뒤에 따라오고 있는 범블리를 향해 돌아가 있었다. 아이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질 까 엄청 예민했다. 그때, 내가 넘어졌다.


세 살 범블리를 안고 넘어질 뻔했던 그 주차 방지턱에 발이 걸렸다. 순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게 이런 거구만' 알게 됐다. 이번엔 슬로우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몸도 슬로우로 움직이지 않았다. 공중에 뜬 기억은 없는데 아파트 2층쯤에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으로 제대로 넘어졌다. 오른쪽 엉덩잇살이 터진 것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넘어지는 걸 본 어떤 아줌마가 나를 그냥 지나쳐서 갔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모른 척 지나가 주는 것이 나를 덜 챙피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아는 분이셨다. 그녀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하이고 저거 아파서 어떻게 한데."

그러나 멀어지는 그녀의 혼잣말은 들렸다.


아이가 놀란 눈으로 다가왔고, 나는 보란 듯이 땅에서 튕겨지듯 벌떡 일어났다. 오른쪽 엉덩이 위로 엉덩이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았다. 바지 속에 대충 손을 넣어 새로 생긴 엉덩이를 만져 봤다. 그 순간 아파서 발을 동동 구르다 또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튀어나왔다.


"아오! 씨발!!"

아이 앞에서 선명하게 욕을 했다. 나의 금욕()이 깨졌다.


내가 처음, 임신 테스트기에 소변이 젖어 들어 보라색 두줄이 올라오는 걸 봤을 때 중얼거린 말은 "좇됐네! 씨발!!"이었다.


나는 임신과 동시에 결혼 준비를 해야 했고, 아이 아빠와는 모든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싸움을 함께 했다. 나는 거의 모든 싸움에서 욕을 해댔다. "좇까 씨발~", "씨발 그래서 뭐 어쩌라구!", "씨발 꺼져!", "아 몰라 씨발", "씨발", "씨발". '씨발'단어를 거의 안 빠트리고 사용했다. 앞뒤로 붙여 넣고 중간중간 섞어 썼다.


가끔 욕으론 부족할 때가 있었다. 내가 합정역 지하철역 기둥을 발로 걷어찼을 때처럼. 그땐, 임신 7개월이었는데 아이 아빠는 그러고 있는 나에게도 훈계질이었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듣고 말하라는 훈계질.


'어떻게 화가 나는데,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아름다운 것만 논하라는 건지... 정말 말도 안 돼! 씨발!'


임신 막달이 되었을 때 뱃속 범블리의 태동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는 밤낮을 안 가리고 뱃속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아이가 운동을 많이 해줘서 인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구워 먹을 고기가 없을 때는 국물 내는 양짓살이라도 구워 먹었다. 간혹 누군가 '임신 축하 선물'로 뭘 갖고 싶냐고 물어보면 고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로 받았던 채끝살인지 부챗살인지가 너무 맛있어서 고기를 맛보고 외쳤다.


"아 씨발! 존나 맛있어."


이후, 고기를 씹으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이 아빠는 자고 있었다. 새벽 5시쯤이었다. 그 순간, 뱃속의 아이가 발로 나를 걷어찼다던가 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밤새 뱃속에서 굴러다니던 아이는 가만히 있던 때였다. 그냥 갑자기 욕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씨발'이 너무 입에 붙어 버렸다. 주로 분노용으로 쓰이던 단어가 기분이 좋을 때도 마구 튀어나오다니.


나는 금욕(禁辱)을 겸심했다. 욕을, '씨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대신 아이 아빠와 대화가 줄었다.


무통분만으로 오롯이 모든 고통을 견뎌냈지만 욕은 사용하지 않았다. 출산 이후, 온 공복 때문에 살짝 고비가 왔지만 그래도 욕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먹었던 첫 끼니가 너무 맛있어서 욕이 나올 뻔했지만 무사히 욕은 안 했다. 안 하고 생각만 했다. 욕을 안 하는 것은 금연처럼 힘들지 않았다. 담배는 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었지만 '씨발'욕은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부분 "ㅆ~"에서 끝났다.


그런데 오늘 망했다. 너무 또박또박 큰소리로 아이 앞에서 "씨발!"이라고 말해버렸다.


첫 번째 넘어질 때 아팠던 오른쪽 새로운 엉덩이에 이어서 지금 넘어질 때 짚은 왼손까지 아팠다. 접 찔렸는지 욱신거려 행여 관절이라도 다쳤을 까 걱정됐다. 바로 일어나기를 포기하고 나자빠진 채로 왼쪽 손목을 연신 돌려보았다. 다행히 잘 돌아갔지만 아팠다. 혹시나 부었을까 봐 아프지 않은 오른쪽 손목과 비교해서 보았다. 너무 아파서 왜 두 손목의 굵기가 같은지 이상할 정도였다.


종이 박스는 엎어져 안에 있던 폐지며 플라스틱, 깡통들이 다 흩어져 나왔다. 아홉 살 범블리가 그것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분리수거를 할 때는 어기적 어기적 거리는 나를 범블리가 거들었다. 아이는 야무지게 플라스틱류는 플라스틱에, 금속류는 금속에 넣었고 간혹 폐지 사이에 비닐이 섞여 있으면 그건 또 다 빼내었다. 안에 분리 수거 할 것들을 다 비우고 나서는 마지막 종이상자는 폐지 구역 안쪽으로 던졌다.


"근데 엄마, 아까 욕하더라~"

범블리가 결국 한소리 했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었는데.

"어? 아! 미안. 엄마가 조심했는데! 정말... 씨이~"

아! 좀 아까 망한 게 생각나서 욕이 또 나올 뻔했다. 다행히 선명하게 끝까진 하지 않아 안심했는데,

"엄마, 씨도 욕이야. 욕은 나쁜 거다~"

"맞아. 엄마도 알지. 조심할께..."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던 9년여에 걸친 금욕(禁辱) 생활이 오늘은 망했다. 대신 한 가지 변화를 알았다. 이미 시작된 변화였는데 이제 깨달은 것이다. 나의 금욕(禁辱) 생활의 시작과 함께 했던 아이가 나의 금욕(禁辱) 생활의 감시자가 되어 있었다.


아까 넘어질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간 그 아주머니가 범블리를 분리수거도 거드는 똑똑한 아이라며 칭찬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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