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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베지테리언

<식은 연애> 다섯 번째 이야기

by 옥광



어느 날부터 오빠가 <육식의 종말>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읽는 듯했다. 분명히 다 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후로도 계속 책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오빠는 채식을 선언했다.


<육식의 종말>은 단순히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이라는 1차원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역사적, 경제적, 환경적 자료를 다양한 시점으로 다룬다. 책에서는 가축으로 길러진 동물들이 생명체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은 고깃덩어리로 태어난 ‘공산품’임을 말하고 있었다. 몇몇 강대국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저개발국가에서는 옥수수를 사료용으로 키워 가축에게 양보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고 했다. 많은 가축들이 모여 있으니 그 지역의 물을 다 마셔 버리고, 가축들의 배설물은 공기를 오염시켜 환경을 파괴한다고 했다. 생산과 수요의 나라는 다르고 수요의 나라는 생산의 나라를 책임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최고로 저렴한 비용만 지불할 뿐이다.


오빠는 자꾸 내 앞에 이 책을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기어코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책은 유익했다. 그래서 나도 채식을 선언했다. 한 가지, 오빠가 놓친 사실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채식을 했을 거라는 거다. 나는 오빠가 너무 좋아서 오빠가 하자는 건 다 하는 착한 여자 친구였다.


오빠는 처음부터 완벽한 채식을 했다. 육식을 완전히 끊었고 고기로 국물을 낸 육수도 입에 대지 않았다. 당연히 달걀 같은 알류, 우유, 유제품, 생선 모두 먹지 않았다. 오빠는 원래부터 오장육부가 약하여 먹는 걸 즐기지 아니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착한 여자 친구 이자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데 부엌은 싫어했다. 나가서 사 먹는 걸 좋아했고 이때, 오빠 같은 순수 베지테리언을 위한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타협을 해야 했고 세미 베지테리언 중 '페스코'를 선택했다.


'페스코'는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 닭고기 같은 가금류는 먹지 않고 유제품, 알류, 어류와 해산물까지 먹기로 한다. 양지고기가 올라간 물냉면 대신 비빔냉면으로 갈아탔다. 그냥 비냉은 아쉬워서 회냉으로 먹었다.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은 설렁탕이나 갈비탕을 먹었다. 평소 매운걸 못 먹는 나는 거의 울면서 회냉을 먹었지만 끝까지 주전자에 든 따뜻하고 뽀얀 육수는 마시지 않았다. 친구들은 오빠도 없는데 몰래 좀 먹어도 되지 않느냐며 고기만두를 권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착한 여자 친구다.


나에게 신세를 졌던 친구 A가 '삼겹살'을 쏜다고 나를 불렀다. 나는 내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장어'를 얻어먹었다. 장어에는 복분자주였다. '장어'로 부른 배를 잠시 쉬어 주기 위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야? 오빠가 너 담배, 아직 피는 거 모르지?"

친구 A가 가게 문에서 빼꼼히 얼굴만 내밀고 물어봤다.

"야! 당연하지! 오빠는 끊은 줄 알아."

허공에 흰 담배연기를 뿜으며 대답했다. 담배 연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까 친구 A는 얼른 문을 닫았다.

"담배는 몰래 피면서, 고기도 몰래 먹지, 그냥."

담배를 다 피고 돌아온 나에게 통통한 장어 한토막을 쌈에 싸지도 않고 입에 넣으며 친구 A가 말했다.


사실 나는 그냥 착한 여자 친구가 아니라 '세미 착한 여자 친구'였다. 여기서 고기까지 몰래 먹어 버리면 '세미 착한' 타이틀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오빠는 나와 달리 부엌을 즐겼다. 직접 채소를 하나하나 장 봐와서 샐러드 만들어 먹는걸 좋아했다. 나는 이 밥상에 슬그머니 '새우 버거'를 올려놓곤 했는데 가뜩이나 순수 베지테리언 오빠는 나의 세미 베지테리언을 못 마땅해했다.


"너는 채식 오래 못 할 거야."

나는 새우 버거를 먹으며 내 채식이 실패할 거라는 오빠의 호언장담을 들어야 했다.

"아니, 하다가 뭐... 못 하면 할 수 없는 거긴 한데... 그래도... 뭐... 나 할 수 있어!"

"아니야, 아니야. 너는 못 해."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오빠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나의 할 수 있다는 말은 오빠에겐 다 거짓말로 들리는 듯했다. 우리 대화의 마무리는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로 끝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오빠에게 나의 몰래 피는 흡연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오빠가 이럴 때마다 정말 간절하게 한 대 태우고 싶긴 하지만, 꾹 참았다 친구들 만나서 몰래 한 대, 두 대, 세 대 펴버릴 거다. 그러면 된다.


각자 형편에 맞게 베지테리언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던 우리 커플은 연말, 처음 사귀었을 때 함께 했던 옛 직장 동료들 모임에 나가게 됐다. 나는 우리 커플의 식습관 패턴을 적극 반영한 장소에서 모이기를 원했지만 오빠는 타인을 향한 배려심으로 다수가 원하는 장소에서 모이기를 바랐다. '삼겹살 집'으로 정해졌다.


연말의 '삼겹살 집'은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다. 추운 날씨를 방어하고자 입은 두꺼운 옷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 비좁았다. 여느 때 같으면 테이블 중앙, 불판에 가까이 앉아 있을 나였지만 그 날은 오빠와 제일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고기 불판과 가장 먼 자리였다. 삼겹살을 미디엄 레어로 먹던 나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빠는 맨 쌀밥을 쌈장과 벗 삼아 쌈채소로 싸 먹었고 나는 맨밥에 차돌박이 된장찌개 국물만 떠서 곁들여 먹었다. 또 친구가 삼겹살 기름에 구워진 김치나 파채를 밥에 얹어줘서 종종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오빠 눈치가 조금 보였지만 맛있었다. 모두들 오랫 만에 만났으니 서로 근황을 물어가며 안 좋은 이야기는 피해 가고 좋은 이야기만 왁자지껄 오 갈 때였다. 오가는 술잔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친구 B가 자기 앞 불판을 가는 사이, 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야! 너 그거 할 만하냐? 네가? 채식? 베지테리언?"

"그럼! 그리고 나 혼자 하는 거 아닌데. 오빠랑 같이 하는 건데 뭐."


지난 직장에서 오빠는 친구 B의 사수였다. 입사 초반 잠시였지만.

오빠는 입 안 가득 쌀밥 쌈을 씹고 있어서 아무 대꾸도 안 하고 있었다.


"아... 형님이랑 같이 한다고? 그래서 왜 하냐? 힘들게?"

"아니... 멀리 보면 육식은 인류에게 좋지 않을 거야... 그리고 또 감정이 있는 생물을 먹는다는 건 그러니까..."

"야! 그 논리면 왜 동물만 감정 있고 식물은 없냐? 식물도 좋은 음악 틀어주면 좋아한다매?"


하필 B가 말하는 도중, 김치를 건네줬던 친구가 이번엔 불판에서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를 건네줬다. 받자마자 입에 넣었다. 삼겹살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져서 맛이 있었다. 대신 B의 말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뜨거웠다. 좀 호호 불어서 입에 넣었어야 했는데.


"힘들게 산다! 힘들게 살아~ 야 이거나 먹어."


친구 B는 구운 마늘이랑 김치, 밥이랑 넣어서 쌌다며 상추쌈 하나를 건넸다. 아직 입 안에 맛있는 감자가 남아 있었지만 뭐... 친구 B의 쌈도 입에 넣었다. 한 입, 두 입 꼭꼭 씹었다. 그리고 목구멍에 넘길 즈음 얼른 휴지를 빼 내서 입에 있는 것들을 모두 뱉어 냈다.


쌈 안에는 삼겹살 한 토막이 들어 있었다. 처음엔 고기 기름이 가득 배어 있는 김치가 두꺼운 건 줄 알았다. 먼저 느껴진 구운 마늘 몇 점은 이미 목구멍으로 넘긴 후였다. 두꺼운 김치를 두 번 세 번 씹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씹힌 것이 고기가 확실하다고 혀가 증명해줬다. 고기를 씹지 않은지 이제 겨우 6개월을 쫌 넘긴 건데도 그 느낌이 매우 생경했다. 누군가의 살을 씹는 듯 이상한 느낌이었다. 얼른 뱉어낸 몰래 숨어 있던 고기는 입안에 있던 다른 음식물들과 뒤엉켜 이번엔 휴지에 쌈 싸졌다. 시야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는 B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기 옆자리 친구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어 재끼기 까지 하며 웃고 있었다.


"형님! 제가 듣기로는 채식을 하면 성욕이 없어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는 거라고. 맞습니까? 야 맞냐? 어떠십니까?"


B의 말을 듣고 다들 웃었다. 나는 나와 오빠만 안 웃는 줄 알았는데 오빠도 웃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굳게 다문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만 빼고 다 웃었다.


"오빠? 오빠! 오빠는 이게 웃겨?" 그리고 B에게 말했다.

"야! 너 말 다 했어? 이거 씨! 싸가지가! 아 재수 없어서 정말!"


웃고 떠들며 서로 반갑기만 했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나의 한마디로 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서 있었고 방금 전 입에서 뱉어낸, 이제는 휴지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 덩어리를 B에게 집어던지고 있었다. 잘못 날아가 된장찌개 같은데 빠지면 너무 망신스러웠을 텐데 웬일로 정확하게 B의 맥주잔을 쓰러트렸다. 덕분에 분위기는 더 안 좋아졌다.


"너, 잠깐 나가자. 나가야겠다."


오빠가 내 손목을 잡았다. B가 옷이 맥주로 다 젖었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일행들은 오빠가 나를 알아서 진정시키겠지 하며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잡아가려 는 듯 소란스러우려 노력했다. 오빠한테 끌려가는 내 뒤통수 너머로 항정살을 더 주문하자는 B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내가 주사 부리는 거 싫어하는 거 몰라?." 한 숨을 한 번 쉬고 오빠는 이어 말했다. "잘 알잖아?"

"뭐? 내가 무슨 주사를 부렸어??? 아니 오빠! B가 먼저 말을... 하 놔! 말도 안 되게 했잖아? 아니야?"

"하아... 사람이 술을 마시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 B성격 몰라? 알잖아?"

"뭐어어가 사람이 술을 마시다 보면 그래? 진짜 뭔! B가." 오빠가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네가 어설프게 하니까 너를 우습게 보는 거잖아."

"... 내가... 내가 뭘 어설프게 해?"

"채식을 하려면 똑바로 하든가! 그리고 B 같은 애들은 그냥 상대를 하지 마. 무시하면 될 일을 왜 너는 크게 만들어?"


고깃집 의자 밑에 돌돌 말아 넣은 패딩을 꺼내 입고 나오지 못해 추웠는데 순간 추위가 싹 가셨다.


"아니야... 아니야 오빠. 내가, 아니! 화 날 만 하잖아? 막 성욕 어쩌구 그딴 거 물어보고? 아니 B가. 씨... 재수 없었잖아?"

"그러니까 네가 제대로 채식을 했으면 그런 애한테 꼬투리 잡힐 일이 없었다고."

"아니... " 오빠를 쳐다보았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자, 들어가서 B랑 잘 이야기하고, 잘 놀다 가자. 응? 알았지?"


오빠는 손이 시린 지 엄청 비벼댔다. 그 속도가 엄청 빨라서 연기가 날 것 같았다. 나는 그 비벼대는 손을 보느라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오빠는 다시 일행들이 있는 고깃집 안으로 들어가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따라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비벼대는 오빠의 손에 시선을 빼앗긴 나는 자연스럽게 오빠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앞서 들어간 오빠는 B랑 다른 친구들과 떠들며 내 앞자리에서 그들의 자리로 옮겼다. 나는 원래 앉았던 자리로 갔다. 국물만 먹어댔던 된장찌개엔 차돌박이 건더기들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우리 테이블엔 고기를 굽지 않았으니 따뜻하게 데워줄 불판도 없었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담배가 무척 땡겼지만 공식적으로 여기선 금연자라 필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오빠가 하는 거라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한 거라고 말하면 나았을까...'


그러면 공격을 덜 받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내가 솔직하고 실없는, 얄팍한 사람으로 모두와 웃으며 끝났을지도 모른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이 처음도 아니다. 세미 베지테리언을 시작한 이 후로 내가 자신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에 있어서 자신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 마냥 나를 공격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외로 전혀 개의치 않아했고 내 선택에 무관심했다. 내 선택을 신경 안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했다고 말해도 그 또한 귀담아듣지 않을 만큼 내 선택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마 내가 채식을 안 하고 육식만 하겠다 하면 그때 생각이 많아지고 관심을 보일 사람들이다.


"뭐야 너 추워?"

패딩을 주섬주섬 꺼내 입는 나를 보고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던 친구가 물었다.

"아... 어... 갈라고! 집에."

"왜? 왜 지금 가?"


친구가 나를 붙잡았지만 집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와버렸다. 나는 B와 언성을 높이고 남자 친구랑은 싸우고 삐져서 갑자기 집에 가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날 밤, 오빠한테는 문자만 달랑 하나 받았다.


<조심해서 들어갔지? 내가 내일 전화할게>


오빠는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었고 진짜로 아침에 전화를 했다. 첫 전화는 자느라 못 받았고 이후에 걸려온 전화는 일부러 안 받았다. 갑자기 오빠랑 말하기가 싫어진 나는 그렇게 며칠을 잠수를 탔다. 연인 사이에서 잠수는 상당히 매너가 안 좋은 행동에 속한다. 그래서 매너 안 좋은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오빠에게 차였다.


B에게도 연락이 왔는데 B임을 확인한 전화는 벨이 울리자마자 바로 받았다. B가 안 했으면 내가 할 기세였다. B 하고는 그때 못 올린 언성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피치를 높여서 싸우고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는 결론을 보았다. 간혹 너무 고상하게 싸운 건가 싶어 맘에 걸릴 때가 있다. 더 다양한 욕을 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같은 욕만 반복했다.


나는 이후로도 1년을 더 넘게 세미 베지테리언을 이어갔다. 남의 살을 씹는 듯 한 그 느낌이 싫었다. 그러다 생뚱맞게 'A형 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어이없게 거기서 세미 베지테리언을 끝냈다. 거의 한 달을 소화불량과 저혈압에 시달린 채 시름시름 앓았던 나는 얼굴이 계란 노른자 색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A형 간염' 진단을 받고 입원을 했는데 입원 중 먹었던 소고기 미역국에서 무너졌다. 이렇게 한 번 무너지니 병원에서 주는 불고기도, 동그랑땡도 양념 하나 남김없이 깔끔하게 다 먹었다. 물론 밥 한알, 김치 한점, 콩나물 무침에 들어 있는 작은 쪽파 조각 하나까지도 남기지 않았다. 뭐든 다 잘 먹었다.


퇴원을 하고 얼마 지나 친구 A가 찾아왔다. 간염 앓느라 고생했으니 같이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니! 양꼬치 먹자! 양꼬치!! 연태고량주!!"


A는 내 덕택에 '장어'에 맛을 들였다며 '장어'를 고집했지만 '양꼬치'를 목 놓아 부르는 내 투정에 넘어가 결국 '양꼬치'를 택했다. 돌돌돌 돌아가는 양꼬치를 각 10대씩 후루룩 훑어내 먹고 양갈비를 굽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킨 연태고량주는 명색이 '간염'환자였으니 맛만 보기로 했다. 나는 '꿔바로우'도 시켜야 하나 고민하며 '계란밥'을 떠먹고 있었다. 친구 A가 이모를 불렀다.


"이모! 여기 쯔란이랑 이거 맨날 내가 이름 까먹는 거, 이것도 더 주세요! 이거 찍어 먹는 거."


A의 양념 접시에는 아직 찍어먹을 가루들이 남아 있었다. 내 양념 접시가 텅텅 비어 있었다.


"야! 너는 무슨 쯔란이랑 양념을 먹을라고 양꼬치를 먹는 애 같애."

"그러게. 이게, 사실, 나 고기 안 먹을 때, 고기는 안 먹어도 괜찮았거든. 뭐, 참을만했어. 그런데 이게 양념이, 치킨도 양념치킨, 막 스팸, 막 이런 게 참느라 힘들었다니까."

"그래, 그거야 뭐, 지 꼴리는 데로 사는 거지. 그래도 너, 담배는 좀 끊어!"

A는 양갈비를 뒤집으며 말했다.

"흠... 안 그래도 입원하는 동안 강제 금연했으니까 그건 생각 좀 해 볼께. 일단 지금 한 번 참자."


이렇게 2년 남짓, 나의 세미 베지테리언은 끝났다. 세미 베지테리언 생활로 얻은 것은 '인간관계를 잃은 것'이었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세미 베지테리언. by 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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