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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Oct 12.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34. 슬기로운 골목 생활



34. 슬기로운 골목 생활



* 1권 12화와 동일한 등장인물입니다.


"이모, 빨리 찾아봐! 빨리빨리!"

"아오, 찾고 있어, 찾고 있어. 좀 가만히 좀 있어 봐라. 너 때문에 정신 사나워서 눈앞에서 널을 뛰어도 안 보이겠다."

"그러면 안 돼. 빨리 찾아 달라고.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 가야 된단 말이야."


가율은 똥줄이 탔다.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마지막 회가 곧 시작한다. 주인공 고정우를 연기한 변요한 말고 그를 돕는 형사 노상철을 연기한 배우 고준을 좋아하는 가율은 거의 전 회차를 본방사수 했다. 빨리 가서 이 사람 저 사람 방패 삼아 살살 구슬려 요리조리 빠져나간 권해요가 연기한 무천경찰서의 경찰 서장 현구탁이 제대로 잡히는 것을 보고 싶다. 지난주에 극장에서 본 <베테랑 2>에도 권해요가 경찰 간부로 나오는데 백설공주의 현구탁과 자꾸만 겹쳐 보이는 것이 보는 내내 그가 누군가를 가스라이팅 할 것만 같았다. 현구탁에게 가장 쎄게 가스라이팅 당한(?) 무능하게 순진한 형사과장 김희도(배우 : 장원영)의 최종의 최종도 궁금하고... 때문에 가율은 유선 이어폰이 반드시 필요했다. 드라마를 아파트 단지 헬스장의 러닝머신에서 볼 예정이므로.


회비 월 1만 원인, 없는 것(예를 들어 샤워장) 빼곤 다 있는 헬스장에는 당연히 TV도 있었다. 러닝 머신 위에서 걷거나 뛸 때 지루해하지 말라고 각각의 머신 위에 달려 있는데 저마다 리모컨도 따로 있어 원하는 채널의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대신 서로 사운드가 겹치지 않도록 오픈된 스피커는 없다. 화면에 나오는 영상의 소리를 들으려면 러닝머신에 케이블 타이로 묶여 있는 오디오 케이블에 유선 이어폰을 연결해야 하는데 8핀이나 C-type 이어폰은 잭이 안 맞아 연결할 수 없다. 오로지 3.5mm 유선 이어폰만 가능하다. 가율은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모가 일전에 빌려준 3.5mm 유선 이어폰을 잘 가지고 다녔었는데 하필, 오늘, 지금, 당최 잃어버렸는지 찾을 수 없었다.


"가율아 찾았어. 여깄다!"

"오! 이모 고마워!"

"너 그건 잃어버리면 안 돼. 나도 지금 쓰는 거란 말이야."

"응, 응!"


하아, 이모가 빌려줬던 흰색 이어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모는 이번엔 검은색 이어폰을 빌려줬다. 드라마는 9시 50분에 시작한다. 한 7분 남았나? 가율은 서둘렀다. 보면서 딱 30분만 뛸 거다. 아니 30분 내내 뛰는 건 아니고 15분... 어쩌면 10분, 그리고 최소 20분을 빠르게 걸을 거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에는 정말 천천히 걸어야지. 웨이트는 생략한다. 딱 좋은 계획이다. 미리 이어폰 양쪽 헤드를  각각 양 귀에 잘 꽂고 플러그 부분만 핸드폰 그립톡에 감았다. 이어폰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나 연결되지 않은 핸드폰은 위에 걸친 바람막이 호주머니에 넣고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헬스장까지 5분. 자전거를 타고 가면 금방이다. 빨리 가면 3분 안에도 갈 수 있다.


"아이, 씨(이양)."


가율의 자전거가 휘청했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길, 아파트 네 동이 직각으로 만나는 좁은 골목을 지날 때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어떤 아저씨가 보였는데 큰 이모부 나이쯤으로 보였고 덩치는 이모부보다는 작았다. 파자마 반바지에 위에 걸친 낡은 나일론 점퍼로 봐선 퇴근길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결정적으로 발엔 슬리퍼를 신었는데 손은 빈손인 것이 음식물 쓰레기나 일반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자신의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자전거 기척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어가 그리 재밌는지 핸드폰이 뚫어질세라 코를 박고 있었다. 가율은 '따릉 따릉' 소리를 울렸다. 두 번, 네 번, 일곱 번.


'...'


아, 저런 사람 잘 안다. 아무리 따릉따릉거려도 못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 조금만 비켜주면 참말로 고마울 텐데 절대 길을 내어 주지 않는 사람들. 좁은 골목이었지만 그만큼 짧은 길이었으므로 저 아저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잠시 멈춰볼까도 싶었지만  급한 마음의 가율은 그러질 못 했다. 가율은 맞은편에서 오는 아저씨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어떻게든 전진해 보고자 자전거의 페달을 멈추지 않고 계속 천천히 굴렸다. 자연스럽게 자전거 핸들이 이리저리 좌우로 꺾인다. 자전거는 서행을 하면 할수록 중심 잡기가 더 어려워진다. 가율은 이때부터, 아니 그냥 솔직히 눈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공간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고 오직 핸드폰에만 집중한 채 길을 꽉 채워 걸으며 자전거 네가 알아서 재주껏 자신에게 피해 주지 말고 피해 가라는 듯한 아저씨의 태도에 말이다.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몇 번을 더 따릉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가까운 곁을 스칠 무렵, 몹시 서행하던 자전거가 길바닥의 작은 보도블록에 '턱'하고 걸리면서 중심을 잃어 옆으로 기울었다. 깜짝 놀란 가율은 핸들의 브레이크를 급하게 쥐고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페달을 굴리던 오른발로 빠르게 땅을 짚었다. 당연히 넘어지지 않는다. 겨우 이 정도 해프닝으로 넘어질 소냐. 가볍게 중심을 잡고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그 아저씨는 옆에서 자전거가 자빠질 뻔하든지 말든지 계속 자기 갈 길만 가고 있었고. 그때 터진 거다. "아이, 씨(이양)."이라고. 코에 작디 작은 이물질이 느껴졌을 때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재채기 같은, 그저 짜증 섞인 감정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을 뿐인 감탄사. 막 크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고 자칫 욕처럼 들렸을 수도 있으나 욕은 아닌 감탄사. 그런데 그것은 가율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뭐요? 뭐야! 지금 나한테 그런 거요? 썅?! 나한테 썅이라고 한 거요? 어?!"


가율의 감탄사를 들은 아저씨가 그제야 핸드폰으로부터 고개를 들었고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리를 짚었던 오른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던 가율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러면 창피할 것만 같아 최대한 안 쫄기로 했다.


'아 진짜... 진짜 욕을 못 들어 봤나. 비켜 달라고 그렇게 따릉거릴땐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지금은 왜 저래?'


재채기 같은 감탄사에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낸 것이다. 와, 입을 안 가리고 해서 그런가. 한참 마스크를 하고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감탄사를 더 크게 뱉어내도 사람들이 몰랐는데. 가율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백설공주도 생각했다. 저 아저씨 때문에 애정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 앞부분을 놓치긴 싫었다. 물론 ott로 놓친 부분을 볼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냥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는 자체가 싫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안하다 사과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사과는커녕 이 골목에서 저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이 상황이 무언가 억울하기까지 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저 아저씨도 잘 한 건 없지 않은가. 애초에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말고 길을 조금만 내주었다면 가율은 어느 누구보다 매끄럽고 능숙하게 이 좁은 골목을 지나갔을 것이다. 더불어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미소를 갖추고 감사의 목례까지 했을 수도 있다. 욕이냐고 물어보는 감탄사 대신에 말이다. 흠... 어쩌면 욕이 맞을지도. 일단 고개를 들었다. 계속 숙이고 있다간 일방적으로 안 좋은 소리만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는데 호주머니 속 핸드폰 그립톡에 감겨 있던 유선 이어폰의 줄 중간이 자전거 핸들에 걸려 오른 귀에 꽂아두었던 이어폰 헤드를 당겼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헤드를 손으로 빼면서 아저씨를 쳐다봤는데.


"오잉?"

"... 오잉?"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 줄 알았던 아저씨가 어딘가 계면쩍어하고 있었다. 왜일까? 가율은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 헤드를 슬쩍 봤다. 설마?


'저 아저씨, 혹시나 내가 통화 중이라고 생각한 거야? 진짜? 정말?'


저 반응을 보면 아저씨가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못 듣는 건 절대 아니다. 모든 상황을 다 인지하고 자기 편한 대로 무시했던 거다. 고로 가율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제대로 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밑져야 본전. 가율은 연기를 해보기로 했다. 뭐랄까, 어릴 때부터 다져온 면피용 생활 연기라고나 할까. 결정은 빠르게 행동은 더 빠르게. 이어폰 헤드 한 뼘 밑쯤에 달린 자그마한 마이크에 대고 침착하게 속삭였다.


"아, 잠깐만. 내가 좀 있다가 다시 할게."


밤이었지만 가로등 불빛이 제법 밝았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밝아 봤자 어색해하는 가율의 동공을 훤히 비출 만큼 밝진 않다. 가율은 생활 연기를 쭉 이어갔다.


"그게, 제가 통화 중이었어 가주고. 방금 뭐라고... 저기, 무슨 일로 화가 나신 건지...?"


가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심 아저씨를 염려하려는 감정까지 실어 물어보았다. 물론 모르는 건 없었고 그를 염려하는 듯한 말투는 연기다.


"아니, 거, 거시기 통, 통화 중이었어요?"


빙고. 아저씨가 말까지 전다.


"네. 제가 친구랑 통화 중이었어서... 저기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고 말이야."

"네? 제가요? 아저씨한테요? 뭐를요?"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오해요 오해."

"네?"

"오해라고. 오해."


가율의 연기에 효과가 있다. 아저씨가 뒷걸음질까지 해가며 가율과 멀어지려 하고 있다. 괜한 생사람한테 버럭 했던 창피함에서 온 뒷걸음질 같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오해요?"

"에에, 오해. 오햅니다. 오해요."


아저씨는 몇 번을 더 오해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가던 길을 가려고 가율을 향했던 방향까지 틀었다. 무사히 넘어갔다. 이제 가율도 가려던 길을 가면 된다. 몇 분 늦을 수도 있지만 뭐 괜찮다. 그러면, 그러면 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율은 걸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확신이 생겼다. 내친김에 이 연기의 마무리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바로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뒷모습을 보였던 아저씨가 머뭇머뭇 가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저기, 그러면 혹시 방금 화 내신 거 제가 하는 통화 듣고 그러신 거예요?"

"아? 그게..."


아저씨의 인중이 쑥 길어졌다가 금세 짧아졌다. 그걸 몇 번 더 반복하더니,


"그게 그러니까... 내가 화를 낸 게 오해였는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이고... 그러니까, 아이고..."

"저, 제가 혹시 이유 없이 혼난 건가요?"


가율은 최대한 불쌍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목소리는 최대한 억울한 것처럼.


"아이고..."


그 모습에 아저씨는 아이고아이고를 몇 번 더 하더니 어디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가율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사과했다. 어색한 미소까지 한 스푼 곁들여서.


"내가 뭘 잘못 알고 애 먼 사람한테 화를 내삤네. 미안, 미안혀요, 미안혀. 미안하게 됐어요."


그러고선 가율의 대답을 기다려보지도 않고 급하게 그가 가고자 하는 길로 걸어 나갔다. 심지어 핸드폰도 들여다 보지 않는다. 가율은 저 모습을 이끌어낸 자신의 생활 연기에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듣다니.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아저씨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숙여 가벼운 인사까지 건넸다. 사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말이다. 뿌듯함이고 나발이고 이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마지막 회가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업자득. 그냥 가려던 아저씨를 가율이 불러 세웠으니, 덕분에 가율은 현수오(배우 : 이가섭)와 박다빈(배우 : 한소은)의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의 아련함 한 조각과 박형식(배우 : 공정환)의 죽음을 놓쳤다. 못 본 게 아니다. 앞부분 본방을 놓쳤을 뿐이다.


"이모 나 잘했지? 내가 *덕미보다 낫지?"


*덕미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등장하는 캐릭터(배우 : 고보결), 극 중 직업이 연기자다.


가율은 이모네 집에 이어폰을 돌려주러 들렀다가 마침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마지막 회 재방을 하길래 이미 본 것을 또 보려고 눌러앉았다. 다시 보고 또 봐도 현구탁에게 휘둘려 빈 깡통으로 큰 소리만 쳐대던 김희도가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그러면서 이모에게 신나게 자신이 그 골목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에게 사과까지 받아낸 무용담을 떠들어 댔다. 자신의 순발력과 연기력에 잔뜩 들떠서 말이다. 그런데 이모의 반응이 영 별로다.


"이모 반응이 왜 그래?"

"잃어버린 나의 하얀색 이어폰이나 찾아 오셔."

"아니, 이모 그건 찾아낼거라고 했잖아. 것보다 나 재치 있지 않아?"

"야, 야. 그건 재치라고 하면 안 되고, 그 아저씨가 딱 거기까지만 씅 부린 걸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지. 어딜 네가 이겨 먹은 거처럼 떠드냐, 떠들긴. 저거 저거, 우리 가율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우리 가율이는 언제 철들라고 그러니?"

"왜에? 내가 재치 있게 어? 그 순간 딱, 이렇게 통화하는 척 딱, 그래서 딱, 서로 심각하게 얼굴 안 붉히고 딱, 그렇게 넘어간 거잖아? 아저씨는 나한테 사과하고."

"그러니까 그게 왜 네 연기 때문이냐고. 그게 아니라 그 아저씨가 딱 거기까지만 씅을 부려서 그런 거라고 그게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딱 그 참에 너를 상대 안 하기로 한 것뿐이야. 너는 그 아저씨가 진짜 개차반에 눈탱이 맛 간 또라이가 아닌 걸 땡큐 베리 머치라고 여기면 되는 거고. 네 연기 잘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 오케이?"

"아니, 아니라니까 이모. 내가 말했잖아. 내가 딱, 그때, 어? 이어폰을 손에 쥐고 있다가 이렇게, 이렇게."


소파에 반쯤 앉아 있던, 아니 반쯤 누워 있던 가율은 답답한 마음에 바른 자세로 일어서서 이어폰을 손에 든 흉내까지 내며 그 당시를 재연해 냈다. 그러나 이 재연 연기도 이모에게는 도통 먹히질 않는다.


"아이고 우리 가율아, 세상에 어설프게 누구누구 이겨 먹었다는 무용담만큼 없어 보이는 것도 없단다. 어디 가서 고따구로 구라 쳐서 엄한 아저씨 한 명 이겼다고 나불거리며는 참말로 없어 보인단다."

"아! 이모!"

"우리 가율이는 언제 크냐, 언제 커? 도대체 언제 크는 거야?"

"무슨! 키는 내가 이모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거든!"


가율은 심통이 났다. 그러면 어떡하라고.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야 돼? 아니면 잘잘못 가려보자고 싸워야 돼? 무시하고 냅다 도망을 쳤어야 했나? 머릿속은 모든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않아 복잡했지만 입밖으로 더 할 말하기가 싫어져 분했다. 이모는… 이모쯤 되면 저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모는 주짓수 갈색 띠다. 지난달에 인근 대학교에서 열린 주짓수 일반인부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받아 왔다. 팔씨름을 하면 아직도 이모를 이길 수 없다. 이모는 꼭 질 것처럼 엄살을 피우다가 이긴다. 사람 약 오르게. 자전거도 수영도 달리기도 그렇다. 이모를 이겨 본 적이 없다. 그걸 이모 입으로 말 하는 것도 본 적이 없고.


"가율아, 오빠한테 들어오는 길에 치킨 사 오라고 그럴까?"


슬기로운 무용담에 찬물을 끼얹어 놓고 이제와서

치킨이라니. 가율은 잔뜩 삐졌음을 어필하기 위해 입을 잔뜩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만큼은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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