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연애>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아오! 씨벌탱!! 존나 씨발!”
끈적한 뙤약볕 속, 서둘러 분리수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거의 매미 만한 바퀴벌레가 오른발에 신겨 있는 쪼리 가까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바퀴벌레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발가락들을 힘껏 오므렸다. 소름이 끼치다 못해 몸서리가 쳐졌다.
“구설주, 무슨 욕을 그렇게 큰 소리로 박아? 아파트에 쩌렁쩌렁 울리잖아.”
“씨발! 저기 바퀴벌레가 기어잖아! 아이씨, 느리기는 또 존나 느려!”
미스테리다. 아파트 밖에서 발견하는 바퀴벌레들은 빠르지 않다. 아니 왜? 너희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잖아. 그런데 여기선 왜 이렇게 여유가 넘치냐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우리가 집 안에서 만날 때는 바퀴벌레가 침입자일 수 있지만 여기, 밖에서 만날 때는 우리가 침입자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빠르게 사라지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몰라.”
“… 아 또, 또… 임종혁 철학하시네. 네 네, 잘 알았으니까 들어가기나 합시다. 우린 할 일이 많다구요. 있다가 이사차 온다고 했잖아.”
“그래, 덥다. 빨리 들어가자.”
18개월째 동거 중인 설주와 종혁의 20평 아파트는 이사 준비로 다 꺼내놓은 짐들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와, 우리 이렇게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았던 거야? 진짜 버릴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후딱 가서 쓰레기봉투 넉넉히 사 왔잖아.”
“… 얼씨구, 그건 임종혁 씨가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그런 거구요. 쓰레기도 알고 보면 거의 다 임종혁 씨 거구요.”
“에이, 이게 어떻게 거의 다 내 거야. 굳이 말하자면 뭐… 우리 거지. 그치?”
“하, 정말 저, 저 말이나 못 하면… 너 똑바로 안 해?”
“구설주, 너 어제도 밤에 안 잤어? 그러니까 그렇게 까칠한 거야. 내가 항상 말했지. 사람이 해가 떨어지면 잠을 자야 된다고. 아! 아닌가? 너 아까 그 바퀴벌레 때문에 그래? 아까의 그 분노가 잦아들지 못 하는 건가?”
순간 종혁의 등짝에 불이 났다. 설주가 대화 대신 매운 손바닥을 보낸 것이다. 닥치고 할 일이나 하라는 뜻이다. 맞은 등이 아프다고 꿍시렁거리는 종혁은 짐정리를 위해 가구를 옮겼고 설주는 옮겨진 가구 밑 오랜 먼지를 닦아냈다. 소파 같은, 조금 크다 싶은 가구는 함께 옮겼다. 간혹 너무 힘을 쓴 종혁 쪽이 높이 올라가 설주 쪽으로 기울 때가 있었고 설주는 이러면 더 힘드니 적당히 하라고 항의했지만 종혁은 원래 힘이 센 걸 어떻게 하냐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렇게 엔진을 풀가동한 종혁은 대충 짐정리를 끝냈으니 잠시 쉬겠다고 소파에 누웠다. 저 소파에서 설주와 종혁이 처음 섹스를 나눴다.
그날은 설주가 14개월간 사귀었던 동아리 선배와 헤어지고 3일쯤 지난날이었다. 설주는 진한 이별의 슬픔으로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 한 채 3일 내내 울고 있었다. 이때 아직 친구였던 종혁이 설주가 식음을 전폐할까 걱정이 되어 전복죽을 사들고 찾아왔는데 그가 설주의 집에 온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목놓아 울면서도 배고프다 싶으면 야무지게 라면을 잘 끓여 먹었던 설주는 종혁의 정성을 봐서라도 가져다준 전복죽을 다 먹어주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 도저히 그러질 못했다. 종혁은 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는 설주가 더욱더 걱정이 되어 늦은 시간이 되도록 이만 가겠다는 말은 못 하고 다른 실 없는 소리만 주고받고 있었다. 설주의 얼굴이 생각보다 동그랬는데 너무 울어 많이 부은 것이라 추측했다. 그 얼굴은 또 그래서 더욱더 귀여워 보였다.
“어머, 어떻게 해. 저거 뭐야? 종혁아, 벌레 들어왔나 봐.”
눈물에 코가 잠겨 의도치 않게 콧소리를 내는 설주가 슬프지만 귀여운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했다가 눈을 꼭 감는 게 보였다. 귀여웠다. 종혁이 설주를 향했던 시선을 어렵사리 돌려 설주가 바라봤던 방향을 쳐다보니 그곳에 작은 쌀나방 한 마리가 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종혁은 중간중간 텔레포트까지 해대는 나방을 잠시 쳐다봤다.
“어머, 어머 어떻게 해. 저거 어떻게 해. 종혁아, 저거 잡아줘.”
멍 때리던 종혁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설주가 나방이 무섭다고 종혁의 왼팔을 꼬옥 감쌌기 때문이다. 솜털이란 것이 이렇게 온 전신에 덮여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정도가 아니라 자라는 반대방향으로 다 쓸려 넘어가는 것 같았다. 종혁은 왼손으로 설주의 손을 꼭 쥐고서 오른손 하나로 나방을 한 번에 잡았다. 멋있었다. 화장실로 손을 닦으러 간 종혁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얼굴까지 말끔히 씻은 후 살짝 남긴 물기로 머리까지 정리하고 나왔다. 그렇게 그날 소파에서, 둘은 사귀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에 함께 이사 온 것이 그로부터 1년 후다.
“뭐야, 임종혁. 그거 나 주기로 한 거잖아. 네가 그거까지 정리해 주려고? 네가 삼장이야?”
다시 엔진에 연료가 돌만해진 종혁은 소파에서 빠져나와 몸을 움직였다.
“응, 있던 자리에 돌려놔야지. 그런데 삼장? 삼장법사? 내가 왜?”
“아…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너 그거 조심조심 들어가주고 그대로 화장실로 가져가서 처리해! 알았지?”
“이 아령을 왜? 내가 뭐를 처리해야 되는데?”
언젠가부터 베란다 새시 앞에 아령 하나가 놓여있었다. 반년도 넘게 그렇게 있었던 거 같은데… 종혁이 아령을 들기 전 예상치로 준비했던 팔의 힘과 아령의 무계가 안 맞아 깔끔하게 한 번에 들어 올리지 못하고 몇 번 덜그럭거린 후 들어 올렸다. 그래서 설주가 고함을 쳤다.
“아이씨!! 임종혁!!”
들린 아령 밑으로 바짝 마른, 갈색의 얇고 가벼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짝 눌리고 건조된 어느 곤충의 미라였다. 바퀴벌레다. 다리 끄트머리나 더듬이 같은 가는 형태는 가루가 된 듯 안보였지만 전체적인 큰 형태는 잘 유지되어 있었다. 미라가 되기 전의 이것은 약 6개월 전, 술에 절어 곯아떨어진 종혁이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도 안 한 어느 깊은 밤, 나타났다. 매일 밤 고주망태가 된 종혁이 씻지도 않고 침대를 차지하던 때였다. 꼭 붙어 자자고 구입했던 슈퍼싱글 침대에 설주가 종혁 곁으로 비집고 들어가자니 드럽고 치사할 때였다. 그러니 설주 혼자 거실에 나와 소파에서 씩씩거리며 누워 있던 때였다.
“꺄아악!!!”
베란다 유리문에 비쳐 보일만큼 시커멓고 커다란, 엄지발가락만 한 어떤 덩어리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크기에 비해 매우 민첩한 움직임이다. 차라리 안 보이는 구석으로 그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자꾸 넓은 곳으로 나왔다. “꺄악! 종혁아!! 임종혁!! 종혁아!!” 너무 무서웠고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절규했지만… 그런 그녀의 비명 사이사이 들리는 건 낮게 깔린 종혁의 코골이 소리뿐이었다.
설주는 홀로 바퀴벌레와 대치해야만 했다. 무기가 필요하다. 뭐든 녹이는 산성호수에 떠 있는 구명보트에 간신히 올라탄 사람처럼 소파 위 자신의 맨발이 거실 바닥에 닿을까 온몸을 힘껏 움츠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뿌리는 살충제’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 가운데 건너편, 먼지가 뽀얗게 앉은 거치대에 크기별로 반듯하게 놓여 있는 아령세트가 보였다. 종혁이 홈트를 하겠다고 말도 안 하고 사들인 거였다. 이전 저 자리엔 설주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는데 저 아령들 때문에 지금은 옷 방에 어색하게 들어가 있다. 그나저나 9평도 안 되는 이 거실이 왜 이렇게 넓어 보이는지 설주는 마른침을 크게 삼키고 바닥에 맨발은 안 닿을 것처럼 뛰어가 7킬로 아령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짧은 시간, 나름 신중하게 선택한 무계였다.
사냥이 시작되었다. 큰 용기를 내 산성호수에 온전히 두 발을 디딘 설주는 자신의 동체시력을 총동원해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쫓았고 이윽고 문제의 베란다 새시 앞에서 바퀴벌레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이다. 설주는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아령으로 엄지발가락 바퀴벌레를 눌렀다. 설주의 계산대로 7킬로의 무계는 바퀴벌레의 몸덩어리가 터지는 느낌을 전달시키지 않았다. 행여 전셋집 마루에 흠집이라도 날까 근육 컨트롤력을 최대한 동원해 아령을 그것의 위에 놓았다. 성공이다. 평평한 아령 옆면과 마룻바닥 사이엔 물 한 방울 샐 틈은 보이지 않았다.
“아령, 너는 저 녀석의 오행산이 되어라!”
힘이란 게 무조건 세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필요한 만큼의 컨트롤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밤, 설주는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는 종혁은 덩그러니 베란다 앞에 놓여있던 7킬로 아령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설주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에게 지난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 맘 때, 그들은 서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이 참 많았고 점점 더 많아져 갔다.
그렇게 7킬로 아령 하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그곳에 있었다.
“진짜 이 소파 내가 가져가도 돼?”
“몇 번을 말해? 저거 네가 가져 가, 가져가라고!!”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바퀴벌레 미라를 닦아내던 설주는 자꾸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종혁을 노려봤다. 저 눈빛을 종혁은 잘 안다. 저럴땐 저 눈빛을 피해 말 하는 게 낫다. 저 눈빛을 향해 말 하면 설주는 아예 입을 다문다. 언젠가부터 계속 그래왔다.
“나 이제 대충 끝났다.”
소파를 중심으로 설주의 짐과 종혁의 짐이 나누어져 있다. 오늘이 종혁이 이사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 달여 전 끝난 연애를 비로소 제대로 끝내는 것이다.
“너 이사 가는 그 집에 저 소파 두고 싶다면서. 그러니까 가져가라고. 뭐 알아서 네 짐이랑 다 같이 쌓아놨으면서 자꾸 왜 물어보는 거야?”
“아니 내 말은… 고맙다고… 고마워서 그렇지. 고마워, 설주야.”
종혁의 이사차가 도착했다. 종혁이 당근에서 알아본 1인가구 이사전문 업체였다. 다부진 체격의 이사전문가 분은 가져가야 할 짐이 문가에 깔끔하게 놓여 있는 걸 보고 고맙다고 크게 웃으셨다. 그러고선 신속 정확하게 일을 진행시킨다. 설주도 이사 나갈 때 이분께 부탁드릴 예정인데 지금 보니 매우 안심이 된다. 하긴 종혁이가 이런 걸 참 잘 챙기지.
“설주야… 뭐, 우리 이제 악수라도 해야 하나?”
“아니.”
“…”
“종혁아, 알잖아. 우리 거의 한 달을 넘게 이별 인사만 했어. 그래서… 나는 더 할 인사말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가.”
“… 그래. 쓰레기, 쓰레기 이만큼은 지금 내가 나가면서 내놓을게.”
“어, 고마워.”
“… 응. 나 저기… 응… 갈게. 저기… 설주야 나 갈게.”
“응, 어서 가.”
종혁이… 떠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갑갑하기 이를 때 없던 코딱지 만한 집구석이 갑자기 탁 트여 보인다. 이렇게 드넓은 집이었던가. 설주는 거실 한가운데 대자로 뻗어 누웠다. 하루 종일 걸레질한 마루는 이사 온 이후 이 순간이 가장 깨끗할 터였다. 그러고 보니 맨바닥에 누워 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보다… 더 편하고 의외로 담담하다. 아마 이 연애의 후반부가 몹시도 지리멸렬했어 그런가 보다. 진짜 혼자 남으니 슬슬 코가 시큰거려 온다. 뭔가 울컥울컥 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려나 싶어 고개를 빠르게 돌렸는데 그때였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만 한 것이 샤샥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설주는 나방의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가진 듯 빠르게 튀어 일어나 종혁에게 소파를 넘기고 건네받은 아령세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젠장, 또 바퀴벌레다.
“그렇지, 이번엔 확실히 네가 침입자다.”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욕 한 개 아니 박고 아령으로 바퀴벌레를 눌렀다. 주로 드는 5킬로 아령을 썼다. 이번엔 바로 아령을 들어 올려 넉넉하게 말아 든 휴지로 능숙하고 신속하게 바퀴벌레 사체를 닦아내고 물로 한 번 더 헹군 훈 제자리 5킬로 짝 곁에 두었다.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일 뿐. 이제 오행산은 필요 없다.
“음… 어머… 꺅…”
예의상 감정 없는 비명을 영혼 없이 중얼거리고 바퀴벌레 사체와 엉긴 휴지덩어리는 반쯤 찬 남겨진 쓰레기봉투에 야무지게 꾸겨 넣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잘 잡았더라… 언제부터 이렇게 바퀴벌레 따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더라. 분명 예전엔 작은 날파리 한 마리만 봐도 콧소리 섞인 비명 소리를 질러대며 두 눈까지 질끈 감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뭐 날파리는 가뿐하게 맨손으로도 원샷원킬이다. 아, 아까 나 눈물이 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나중에 흘려야겠다. 그때 가서 안 나오면? 그럼 뭐 할 수 없고.
두 사람이 좁게 쓰던 침대는 슈퍼싱글이란 타이틀을 되찾아 다시 혼자 넓게 쓰는 침대가 되었다. 설주는 눕자마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숙면이었다. 잠들기 전 설주는 생각했다. 그동안 연애를 너무 했다. 바퀴벌레는 좀 나중에 무서워해야지.
바퀴벌레. by 옥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