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재회
짙은 공포와 통증, 긴장으로 가득했던 수술실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시술이 무사히 끝나고 난 뒤, 수술 과정을 기록하는 기록지 작성을 위해, 방사선 차폐벽이 설치된 스테이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인턴은 환자를 이송용 침대로 옮긴 뒤 회복실로 퇴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턴 쌤, 지금 Urine color(소변색)은 어때요?"
"선생님! clear 합니다."
"좋습니다. 환자분은 회복실로 나가셨다가, 응급실로 가실 예정이에요. 회복실 선생님께 안내 부탁드립니다"
"넵 알겠습니다."
[드르르륵]
수술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이송 침대에 누운 환자가 수술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선생.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허허허"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일단 응급실로 가셔서 오늘 밤새 소변색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내일 오전에 퇴실하실 거예요. 외래는 1주일 뒤로 잡아드리겠습니다!. 조심히 내려가셔요!"
"그려~ 수고했어~ 고마워~"
언제 그랬냐는 듯, 환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농담을 건네고 수술실로부터 멀어져 갔다.
암과 같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독한 치료에 따른 합병증에 의해 자주 병원을 찾게 된다. 지독한 병을 치료하자면, 그만큼 독하거나, 험한 치료를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환자들은 특별한 문제없이 회복하지만, 행여나 치료에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환자는 내게 이제 보지 말자고 했지만, 나는 다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힘든 치료과정을 거친 환자에게 힘이 되고자 농을 섞어 대답한 것일 뿐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 관계를 뜻하는 라포르(rapport, 흔히 라뽀)는 실제 치료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의학적으로는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가 의료진과 라뽀가 잘 형성된 경우에, 힘든 과정을 이겨낼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치료에도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을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내가 환자를 다시 만난 것은 6개월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이선생! 나 또 왔어!"
"엥? 또 피 나와요? 왜 오셨어요?"
"오늘 정기검진 받는 날이여, 그래서 왔지. 오늘 검사 이 선생이 하는가?"
"네. 오늘은 제가 할 거예요. 진짜 괜찮으신 거예요?"
"사실은 그동안에 몇 번 피가 나와서 동네 병원에 갔었어. 그때마다 세척하니까 좋아지더라고, 그래서 그냥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줌이 지도 모르게 줄줄 흐르는 거야."
"그래서요? 지금 그러면 실금 팬티 착용하고 계세요?"
"기저귀 그거로는 감당이 안된다니까. 냄새도 많이 나고, 움직이질 못혀"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소변 땜에 힘들다고 자꾸 동네 병원 가니까. 소변줄을 넣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지금 소변줄 넣고 있는데 차라리 이게 더 좋아. 긴 바지 입으면 보이지도 않고"
"오늘 검사는 제 담당이니까 제가 이따가 검사하고 결과를 말씀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셔요"
"그려, 항상 고마워."
"별말씀을요. 조금 이따가 뵙겠습니다!"
나는 환자 대기실을 지나 검사실 복도로 들어섰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47 [의사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