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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Oct 08. 2020

전공의 일기.

5-19 자식이 뭔지

숨찬 하루를 보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저녁 일과를 마치고 탈진상태가 되었다. 퇴근을 준비하고 전공의실을 나서던 순간,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가운을 입지 않고 병실로 향했다.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 친한 할아버지의 병문안으로써의 의미였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아고, 이선생 왔어? 옷을 이렇게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네. 가운이 더 잘 어울려 이선생은" 


"퇴근하려던 길에 들렀어요.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병원은 밥을 제때제때 주니까 좋아. 당연히 먹었지." 


"잘하셨어요. 어떻게 다시 입원하시게 된 거예요?" 


"아들놈들 성화에 못 이겨서지 뭐. 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수술받으라고......" 


"아드님들이 수술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큰 아들놈이 여행을 가자고 해서 손주들이랑 다 같이 바닷가에 다녀왔어. 이것저것 평소에 못 먹던 맛있는 음식을 사주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우리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수술을 받으라고 하잖아. 처음에는 귓 등으로도 안 들었어. 내가 결정했으니까 날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얘기했지. 여행에서 돌아와서 집 마당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마누라가 밭에 다녀오는 게 보이더라고, 구부정 할망구가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게 마음이 짠해. 나야 죽어버리면 되지만 마누라는 나 없이 혼자 있어야 하잖아. 미안하더라고." 


"......" 


나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마누라가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 며칠 고민하다가 교수님 외래에 와서 수술해달라고 했지. 그래서 입원한 거야" 


"잘하셨어요. 많이 힘든 수술이 될 거예요. 마음 단단히 잡수세요. 각오는 되어 있으세요?" 


"그런 게 어딨어. 내가 암 수술이 첫 번째도 아니고, 괜찮아." 


"아닐 텐데...... 이번엔 진짜 힘드실 거예요." 


"지까짓게 힘들어봤자지 뭐. 입원은 얼마나 해야 하는 건가?"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이요. 수술이 진짜 험해요. 아프다고 우실 수도 있어요." 


"다 늙어서 주접스럽게 눈물은...... 안 울어. 이선생이 담당인가?" 


"이번 달은 아니고요. 아마 다음 달이면 제가 담당할 것 같아요." 


"그려 잘 부탁해. 이선생만 믿어. 잘해줘" 


"아무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려 늦었는데 어서 가봐. 항상 고마워 이선생" 


"오늘 잘 주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그려, 운전 조심해서 가."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아마도 '아들스러운 어투'로 할아버지를 걱정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 엄마 고생시키지 말라는 말은 아버지 건강하시라는 염원이 담긴 문장일 것이다. 할아버지도 이 뜻을 이해하고 수술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 믿는다. 수술이 정해졌고, 이제는 본격적인 수술 준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병이 진행되지는 않았을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챙겨야 할 검사들이 많다. 할아버지를 보고 반가웠지만, 이내 커지는 걱정을 가슴에 담아두고, 병원을 나섰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63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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