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pski, hrvatski, crnogorski, 세 스키 이야기
슬라브계 인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언어유희는 ‘스키’를 붙이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도, 도스토옙스키처럼 잘 알려진 ‘스키’로 끝나는 사람 이름이 우리말 비속어인 ‘새끼’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리드에 쓴 이노무스키가 바로 그 맥락이다) 그런데 발칸 반도를 여행할 때 농으로라도 세 가지 ‘스키’를 잘못 골라 쓰면 정말로 ‘새끼’ 같은 비속어를 들을 지도 모른다.
지금 이야기할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말에 쓰이는 어미 ‘ski’는 그 나라의 언어임을 나타낸다. 나라 이름의 어근에 –ski를 붙인 Srpski(스릅스키), Hrvatski(흐르밧스키), Crnogorski(츠르노고르스키)는 각각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몬테네그로어를 나타낸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는 20년 전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라는 하나의 나라였다.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된 건 고작 2002년의 일이다. 시기야 어찌 됐건 각기 다른 나라로 독립했다는 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었을 터. 정체성의 표현인 나라와 언어 명칭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세르비아에서 크로아티아어 못한다고 하거나, 몬테네그로에서 세르비아어 못한다고 하는 상황이 그렇다. 후자는 실제 내가 한 실수이기도 하다.
몬테네그로 코토르(Kotor)에서 근교 명소를 다녀오는 종일 투어에 참여한 날이었다. 픽업 장소에서 가이드를 처음 만났을 때 영어 대신 ‘도바르 단(Dobar dan)!’, 현지 말로 인사했다. (세 언어 모두 동일) 인사를 듣자 몬테네그로 말을 할 줄 아냐고 가이드가 물었다. 곧바로 ‘Ne govorim srpski’, 세르비아어를 못 한다고 했다. 코토르에 오기 전까지 세르비아를 여행한 탓이었다. 수보티차(Subotica)에 갔을 때 흔치 않은 동양인이 신기한지 괜히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세르비아어 못해요’라고 하던 게 습관이 되어 몬테네그로에서도 나도 모르게 그만 ‘세르비아어’를 못한다고 한 것이다. 가이드는 웃으며 여기서는 스릅스키 대신 츠르노고르스키라고 해 달라고 했다.
복잡하게 얽힌 지정학적 요소를 단번에 파악하길 바라는 건 외국인 관광객에겐 무리한 요구이다. 저 정도 실수에 ‘이노무스키’하고 험한 분위기를 연출할 현지인은 드물다. 북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던 외국인이 서울에서 무심코 ‘북한말 못해요’라고 한다 한들 빨갱이라고 욕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발칸 반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곳에서 자행된 인종 청소라든지 종교 갈등 같은 이야기는 함부로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땐 정말 ‘새끼’ 정도의 비속어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니, 항상 유념해야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 몬테네그로 사람이든, 크로아티아 사람이든, 세르비아 사람이든 자신들의 모국어로는 세 나라에서 아무 지장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그때도 물론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어'를, 세르비아 사람들은 '세르비아어'를, 몬테네그로어는 '몬테네그로어'를 구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