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마리 용의 횡포

광둥어 九龍 n-proper. 가우룽, 구룡 반도

by Fernweh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26)


광둥어 九龍[카오룽] n-proper. (홍콩 지명)가우룽,구룡 반도


* 실제로는 ‘카오룽’이라 많이 쓰지만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본문에선 ‘가우룽’이라 적었으며, 아래 지명은 생생한 발음 표현을 위해 들리는 대로 적었습니다.


홍콩의 여러 지역 명칭은 입에 착착 감겼다. 흔히 듣지 못하던 말이어서인지, <중경삼림>을 워낙 좋아해 그 감성이 떠올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명을 광둥어로 알아두면 택시 탈 때 편하다는 후기를 보고 착착 감기는 광둥어 발음을 느껴보고자 겸사겸사 광둥어 명칭을 블로그에 정리해 두었다. (물론 성조가 있어서 지명을 적어서 보여주는 게 제일 정확하다)


쐥완(上環)

쫑완(中環, 센트럴)

깜쫑(金鐘, 어드미럴티)

완짜이(灣仔)

통로완(銅鑼灣, 코즈웨이 베이)

찜싸쪼위(尖沙咀, 침사추이)

웡꼭(旺角, 몽콕)

야우마떼이(油麻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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쐥완~ 통로완~ 통통 튀는 어감인 광둥어로 읽어 보는 홍콩 지명


딱 여덟 군데만 정리해 둔 게 화근이었을까. 마침 이름도 아홉 구(九)로 시작하니 아홉 번째 지명으로 적어 두었어야 했던 걸까. 아홉 마리 용, ‘가우룽(九龍)’은 자신을 빼먹었다며 심술을 부렸다. 전설의 동물인 용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낭패를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겪었다. 페리터미널을 잘못 찾아 낭패, 택시를 괜히 타서 낭패, 배를 안 놓치려 짐 들고 뛰느라 낭패. 쓰리 아웃된 타자마냥 넋이 나간 채로 홍콩에서 마카오로 넘어갔다.


마카오행 페리는 가우룽에서 출발한다기에 찾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가우룽역으로 갔다. 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탈 페리는 침사추이의 ‘CHINA FERRY TERMINAL’에 있단 걸 알았다. 역 직원에게 물으니 대로를 따라 걸으면 15분이면 간다고 했지만 비도 오고 캐리어도 있어 택시를 탔다. 하필 역 앞에 공사를 하고 있을 건 뭐람. 한 차선으로만 차량 운행을 통제해 역 앞을 빠져나오는 데만 10분 넘게 걸렸다. 미터기엔 이미 50달러가 찍혀있었다. 오스틴역이 보일 때까지 도로가 뚫릴 기미가 없어 55달러를 내고 오스틴역에서 내렸다. 시간도 돈도 더 아깝던 이유는 가우룽역에서 분명 오스틴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봤기 때문이다. 오스틴역에서도 페리터미널은 바로 이어져 있었고 심지어 가까웠다. 직원 말마따나 걸어갔으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 택시에서 시간을 까먹었으니 배 시간에 닿기 위해 냅다 뛰었다. 캐리어를 끄는지 내가 캐리어에 끌리는지 정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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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행 페리는 가우룽 역이 아닌 가우룽 반도 안에 있는 'china ferry terminal'에서 출발한다...
DSC_1171.jpg 표에도 그저 九龍 > 澳門(오문, 마카오의 한자 표기) 이라고만 되어 있다. 쳇.

겨우 배를 타고 나니 몰려드는 억울함. 정리해 둔 지명과 가오룽은 행정구역상 범주가 다르니 낭패를 겪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덟 지명이 시(市)라면 가오룽은 도(道)였다. 부산시가 경상남도 안에 있듯 침사추이, 야우마테이, 몽콕은 가오룽 반도 안에 나머지는 홍콩섬 안에 있는 동네였다. 한 단계 아래 행정구역 목차에 자기가 없다며 삐지다니, 천하의 용 치곤 너무 쪼잔했다.


근데 따지고 보면 가우룽이 쪼잔하네 어쩌네 욕할 처지는 못 된다. 행정구역의 범주까지 나누려는 사람이 ‘가우룽에서 출발하는 마카오행 페리’에 의구심을 품지 않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저 말은 가우룽 반도 안의 여러 페리 터미널 중 한 곳에서 출발한다는 뜻인데, 검색도 안 해보고 가우룽역으로 간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강남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강남역에 간 거다. 청담역도 압구정역도 강남인데도 말이다.


내 잘못으로 여행을 망친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남 탓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고 아홉 마리 용에게 덤볐으니 여행 마무리가 엉망진창이 될 수밖밖에. 이러나 저러나 다 내 탓이오(한숨), 내 탓이다. (또 한숨)


우여곡절 끝에 탄 마카오행 페리. 멀어져 가는 홍콩의 모습.


2.gif 어감은 중국어보다 정감있는 광둥어는 번체라 쓰기엔 까다롭다. (클릭시 끝까지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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