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외운 회화 표현

태국어 ช่วยจอดที่นี่ครับ expr. 여기서 내릴게요.

by Fernweh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24)


태국어 ช่วยจอดที่นี่ครับ [추어이쩟-티-니-크랍] expr. 여기서 내릴게요.


몇 번을 반복해서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영어 단어나 문장처럼

태국어 '여기서 내릴게요'는 자꾸만 이상하게 외운 문장이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잘못 외운 표현이 있다. 방콕에서 택시 탈 때, 치앙마이에서 툭툭이를 탈 때 써먹으려 외워 둔 '여기서 내릴게요'가 그랬다. 태국어로는 '추어이 쩟 티-니- 크랍>. 무슨 이유에서인지 '티-니-'를 자꾸만 '똥-니-'로 기억했다. 문장 속 '티-니-'만 따로 외울 땐 잘만 기억했는데 말이다. 화자에게서 가까운 장소부터 먼 장소를 순서대로 가리키는 여기, 저기, 거기는 태국어로 티-니-(ที่นี่ ), 티-난(ที่นั่น), 티-논(ที่โน่น)이다. 여·거·저 한 글자만 바꾸는 우리말처럼 티- 뒤를 니·난·논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니 어렵게 외울 단어가 아니었다. 너무 간단해서 굳이 니나노~를 연상해서 외우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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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분홍'한 방콕의 한 택시 / 알록달록 각자의 색을 입은 아유타야 툭툭이.


'여기'는 '티-니-'로 잘만 기억하는데 여기서 내린다고 말을 붙이려고 하면 자기 멋대로 '똥-니-'가 튀어나왔다. 택시나 툭툭이를 탔을 때 변(대변의 便)이 마려운 변(봉변의 變)을 당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을 때문에 급하게 내려달라 한 적은 없다. 정말 그랬다면, 뱃속이 꾸르륵 요동치는 통에 태국어에 나도 모르게 한국어 '똥'을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추어이 쩟- 똥(마려우)-니- (당장 세우)크랍!"이라고. 콩글리시도 있는 마당에 코타이리안(Ko+thai+rean)이 안 될 이유는 없다. 추어이(ช่วย)는 ~해 주세요로, 쩟(จอด)은 차를 세운다는 뜻으로 해석되니 얼추 비슷하게 알아들을 수도 있다. 물론 못 알아들었지만.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고 있지 않은 내가 표현에 굳이 '똥'을 넣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차가 한 번 막히면 답 없는 방콕 교통 체증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뿐. (자꾸만 더러운 단어가 나와 급하게 화제를 바꾼 건 아님) 방콕 택시 요금은 싼 편이지만 도로에 갇혔을 때 천정부지로 치솟는 미터기 요금에 자비란 없다. 이럴 땐 '좀 걷지 뭐', 합리화하며 여기서 내린다고 하는 게 상책이다. 일초라도 빨리 내리려다 '티-니-' 대신 '똥-니-'가 튀어나와 기어코 문장을 떠듬떠듬 다듬다가 시간을 허비한다. 그 찰나에 요금이 오르진 않았지만 괜히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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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막히면 답이 없는 방콕의 교통 체증. 몇 번 겪어본 후 '여기서 내릴게요'란 문장을 외워 갔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덧붙인다. '쩟-티-니-'가 '쩟-똥-니-'로 잘못 외워진 건 똥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연일 뿐이다. (내 장은 아주 건강하다)


태국어로 똥(โตง)을 검색해 봤는데 아예 없는 단어다. 그나마 성조를 끼워 맞추니 '맨 끝', '아주 큰'이란 뜻이 나오기는 하나 택시에서 내린다는 뜻과 거리가 멀다. 뜻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문장이란 것. 다음에 방콕을 갈 땐 꼭 말이 헛나오지 않게 추어이 쩟-티-니- 크랍으로 연습해 가야겠다.


DSC_0878.jpg 용변 문제로 '티'자가 '똥'자가 된 건 결단코 아니다.
1.gif 다음 번엔 제대로 말하기 위해 손으로도 끄적거려보기. (클릭시 끝까지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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