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어 ເກົ້າພັນກີບໄດ້ບໍ expr. 구천 낍에 되나요?
*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목에서만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발음을 표기했고 본문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작성했습니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친구를 만났다. 여행으로 왔다가 라오스의 매력에 빠져 4개월 넘게 장기체류 중이던 친구. 라오어 문자를 읽고 쓸 줄은 몰랐지만 그간의 내공이 쌓여 생존 라오어를 곧잘 구사했다. 그 친구에게 야시장 흥정 꿀 팁을 전수받았다.
원하는 가격 + 킵(라오스 화폐 단위) + 다이 + 버?
다이버란 말에 하계올림픽 때나 볼법한, 다이빙대에서 화려한 기교를 부리며 몸을 떨어뜨리는 다이버(Diver)가 먼저 떠오른다. 라오어의 ~을 할 수 있다는 단어 '다이'(ໄດ້)에 의문 조사 '버'(ບໍ)가 붙어 말의 내용이 가능한지를 묻는 문장이 된다. 다이빙 선수 Diver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기교를 부렸다면, 야시장에 나타난 다이버(ໄດ້ບໍ)는 낮은 가격을 받기 위한 기교를 부린다. 전자는 심사위원과 밀당을, 후자는 상점 주인과 밀당을 한다.
흥정의 법칙이라고 쓰긴 했으나, 위 공식은 참 간단하다. 가격과 화폐 단위만 다이버 앞에 붙이면 끝. 화폐 단위도 한 글자라 외워기도 쉽다. 잊기가 더 어렵다. 한 가지 넘어야 할 난관이라면 숫자를 알아야 하는 것. 다행히 알고 있던 태국 숫자와 라오스 숫자가 같아 새 단어를 공들여 외울 수고를 덜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무표정으로 계산기에 협상 가격을 타닥타닥 두드리던 주인은 '○○○낍 다이버~?' 말 한마디에 방긋 미소를 보이며 무장해제 된다. 서툴더라도 외국인이 현지 말을 써보려는 노력은 어딜 가도 가상하게 여겨지나 보다. 어렵사리 외운 외국어 문장을 뱉었을 때의 문제라면 대답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데 이 경우는 달랐다. 'XXX낍'하고 주인장이 새로 제시한 가격이 또렷이 들렸다. 라오어를 모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언과 체언이 앞뒤로 붙긴 했지만. 'XXX낍'은 그 단어들 사이를 뚫고 당당히 고개를 내민다. 다시 내 쪽에서도 처음 가격보다 금액을 살짝 높이며 '□□□낍 다이버?', 한 번 더 밀당을 한다.
덕분에 만족스런 '득템'을 여러 번 했다. 시장을 나오던 차에 펼치면 빠뚜싸이가 짠-하고 세워지는 종이엽서가 보였다. 가격은 10,000킵. 지갑에 남은 현금 9000킵. 킵은 재환전이 안 되니 다 써버려야 하는데 테이블 한 귀퉁이에 'NO DISCOUNT'가 쓰여 있다. 궁서체로 쓰인 것도 아닌데 상점 주인의 단호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일단 입을 뗀다.
'까오판 낍 다이 버~?' 구천 낍에 해줄 수 있냐는 말을 던졌다. 여기에 지금 수중에 현금이 구천 킵뿐임을 어필하려 지갑에서 지폐를 다 꺼내 보이는 수도 썼다. 이번에도 성공. 성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서툰 라오어 문장을 말하는 게 귀여워서 깎아 준 건지, 현금을 꺼내 보여줄 만큼 애쓰는 게 가여워서 깎아 준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현지 말로 흥정에 성공하기, 현금 탕진하기 두 가지 미션에 다 성공했으니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