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MON FAVORI 2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Jan 31. 2021

걷다가 마주친, 보르도

프랑스 네 도시 이야기, 몽파보리(4-3)







    보르도에서 묵었던 숙소는 좁고 복잡한 골목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트램에서 내려 ㄱ자로 한 번, ㄴ자로 한 번 돌고 돌아 들어가야 하는 골목 어귀에. 찾아가는 길이 구불구불하다 보니 처음 보르도에 도착한 날엔 구글맵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착실히 따라가야만 했다.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내내 눈에 들어온 건 골목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쉴 틈도 없이 시내 구경을 나섰을 때도, 해가 질 무렵 다시 숙소로 돌아올 때도 여전히 시선은 스마트폰에 표시된, 나보다 반걸음 앞서 걷는 화살표에 머물러 있었다. 


    이쯤에서 밝히는 나의 치부. 내 뇌 속엔 방향 감각이 없다. 지독하리만치 길을 헤매는 길치인지라 숙소 가는 길을 3번이나 연거푸 들락거렸음에도 왔던 길을 외워서 숙소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좁아터진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봤자 무슨 큰일이 나겠냐며 다음 날부턴 구글맵 대신 골목 풍경을 눈에 담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아침. 보란 듯이 길을 잃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하긴 다른 도시에서 2주나 넘게 머물던 숙소에서도 지하철을 타러 가다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맨 적이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걷기 좋은 날씨였고, 코끝에 닿는 아침 공기가 선선하니 좋았다. 서둘러 해치워야 할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신 후 발길 닿는 대로 걷기로 작정했다. ㄱ자든 ㄴ자든 꼬불꼬불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트램 정류장이 있는 큰 길이 나올 거라 믿고 계속 걸었다. 테트리스 조각은 어떻게든 맞춰지니까.


    스마트폰 지도에서 거두어 골목에 떨군 시선에 그제야 정갈한 골목길이 담겼다. 똑같은 색,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골목 양옆에 즐비해 있다. 건물과 골목이 자아낸 원근법을 따라 시선을 멀리 던져 봤다. 어디 한 군데 눈에 띄는 스폿이 없는데도 정갈함과 단아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어제까지 이 풍경을 놓쳤다는 걸 떠올리니 좀 아쉽기도 했다.


    골목 풍경을 프레임에 담으려 카메라를 꺼냈다. 이른 아침 조용한 골목길에 찰칵찰칵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화답은 나보다 더 이른 아침 이 골목으로 와 가게 셔터를 올렸을 빵집 주인이 해줬다. "봉주르(Bonjour)!", 인사는 귀로 흘러들어왔는데, 뜬금없이 코가 반응했다.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우연한 골목 산책의 수확이라며 크루아상과 뺑오쇼콜라를 집어 든다. 아차차, 까눌레*(Cannelé)도 두어 개 봉투에 담았다. 여긴 보르도니까.


* 까눌레는 보르도에서 유래한 디저트다.


보르도에서 유래한 빵, 까눌레(Cannelé)


이전 22화 걷다가 마주친, 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