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넷 대신 말을 모으는 여행 [prologue]

외국어 ‘처돌이’의 여행 기억법

by Fernweh
souvenir 「동사(fr)」 기억하다 「명사」 기념품


기념품을 사기 위해 들르는 수베니어 숍. ‘수베니어’라는 영어 발음으로 적힌 단어 ‘souvenir’는 기념품/선물이란 명사다. 같은 말이 프랑스어에서는 기억한다는 동사가 된다. (물론 명사로도 쓰인다) 기념품은 어원을 거슬러 오르면 말 그대로 여행을 ‘기억’하는 것이 된다.


여행을 기억하는 건 ‘나’의 여행을 떠올리는 행위이다. 파리에 다녀온 사람이 친구 방에 놓인 에펠탑 모형을 보면 으레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직접 그 모형을 사 온 친구 시선 속 파리 여행이 아닌 본인이 다녀온 파리 여행. 그래서일까. 무언가를 기억한다고 프랑스어로 말하려면 souvenir를 단독으로 쓰지 않고 재귀 대명사를 넣는다. Je(주어) me(재귀 대명사) souviens(동사, 인칭에 맞게 변화). 직역하면 ‘내가 자신을/스스로 기억한다.’고 쓰인다.


스스로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사랑받는 기념품은 여럿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마그넷. 구하기 쉽다. (개중에는 비싼 것도 있지만) 저렴하다. 부피로 보나 무게로 보나 가지고 오기 적합하다. 집에 돌아와 눈에 잘 띄도록 붙여 놓을 수 있다, 등등. 쉽게 떠오르는 마그넷을 기념품으로 ‘픽’하는 이유는 참 많다. 그 사이로 ‘수집욕(慾)’을 자극한다는 또 다른 이유 하나가 쓱 고개를 내민다. 자석이 달린 뒷모습은 다 똑같아도 겉모습은 천차만별이니, 마그넷이란 주제에 수만 가지 변주를 더해 기념품 컬렉션을 완성하게끔 하는 욕구가 샘솟는다. S 커피숍의 머그잔이 기념품으로 사랑받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그넷의 변주가 지겨워질 즈음 다른 기념품에 손이 갔다. 유적지 미니어처 모형, 엽서, 서적, 열쇠고리, 배지. 변주를 깨 버리고 사들인 기념품을 쌓아 두니 선반 속이 잡탕이 되었다. 뒤섞여버린 유형(有形)의 기념품을 보고 있자니 무형(無形)의 기념품으로는 여행을 기억할 수 없는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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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치는 마그넷. 마그넷이 지겨워져서 자꾸 다른 형태의 기념품을 샀다.
KakaoTalk_20201022_232054437_03.jpg 그렇게 기념품용 선반은 '잡탕'이 되었다. ⓒ Fernweh


생각의 흐름 위로 여행 중에 주고받은 ‘말’이 켜켜이 쌓였다. 마그넷과 다르게 형태가 없으니 변주를 해도, 주제를 바꿔도 뒤죽박죽 섞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형태도 없는 ‘문이 열립니다.’ 따위의 문장을, 그것도 외국어로 기념품이랍시고 지인에게 내보이기엔 모양이 빠진다. (애초에 보일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들려준다면 모를까.) 직접 보여줄 수 없다면 그 말들을 한 단어, 한 문장씩 여행 속에서 끄집어내 차곡차곡 글로 써두면 되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니까 ‘말을 모으는 여행’(줄여서 ‘말.모.여’)은 영영 잊힐지도 모르는 말 뒤에 자석을 달아 유형의 기념품으로 만들어 박제해두는 여행이다.


너는 마그넷 모으니? 나는 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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