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Nov 20. 2024

내장산 단풍 보러 안 가도 되겠네


   가볍게 저녁을 먹고 TV를 켰다. 뉴스에서 단풍이 어디까지 들었네, 내장산 단풍이 어떠네, 하는 얘기가 들리길래 아내를 흘깃 쳐다봤다. 내장산 단풍 보고 싶다는 아내에게 정읍 거쳐 색색 단풍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 한 게 몇 번째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약속을 못 지킨 미안한 남편이 되어버렸다.

   아내가 웃으며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고 가볍게 차려입은 뒤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제는 서울 사는 딸아이가 첫눈 내렸다고 전화 왔었다. 하지만 남도 바닷가 근처는 눈 대신 어둑어둑한 밤기운에 얹혀온 쌀쌀한 바람만 쌩쌩 불어 대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초등학교 옆길로 들어섰다. 바람 따라 너풀대는 샛노란 은행잎들의 몸부림. 노랗다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짙은 황금빛 파도가 눈앞까지 밀려왔다. 놀람과 감동에 한참 올려보다가 눈에 들어온 오른쪽 단풍나무 한 그루. 어떻게 오늘에서야 보았을까? 크지 않은 아기단풍 나무에 열린 진홍의 여린 손가락들이 노란 가로등 빛을 배경 삼아 공간 가득 양각(陽刻)되어 있었다.

   “내장산 단풍 보러 안 가도 되겠네.”

   쓸데없는 한마디에 옆구리 한번 찔리고 나서야 노랑, 빨강의 미술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두어 걸음 옮겼을까. 갑자기 눈 끝에서 물기가 찔끔 흘렀다. 떨어져 밟히고 있는 노랑 빨강 낙엽 때문만은 아니었을 텐데. 짧디짧은 절정의 순간 뒤 바람결에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안타까운 낙엽 탓도 아닐 텐데.

   사전에 낙엽은 ‘고등 식물의 잎이 말라서 떨어지는 현상인데 한기나 건조기 등의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일어난다.’ 또는 ‘식물이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날들을 마무리하고 닥쳐올 고난의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떨어진 낙엽 하나는 오늘 아프겠지만 그 자리는 코르크 조직이 발달하여 상처받은 조직을 치유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밑동 두꺼운 저 나무는 내년에는 더 붉고 더 노란 이파리를 보여 줄 것이다.

   낙엽을 태우면서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라고 담담하게 얘기하며 오늘을 살았던 이효석 선생이나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란 시구절로 감상에 들게 했던 릴케도 같은 계절을 보았고 살다가 갔다. 

   절정의 순간을 지나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더라도 지금, 빨강 노랑의 단풍이 있어 행복한 가을. 내년엔 내장산에서 이 단풍을 즐겨야지.



가을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선 듯 잎이 진다.

하늘의 먼 정원들이 시들어 버린 듯이.

부정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깊은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다른 별들에서 떨어져 고독에 잠긴다.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 낙하를

한없이 너그러이 두 손에 받아들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