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려는 노인 2부

無의 바다

by 알렉산더

나침판은 어디에도 없다.



망각의 바다속에서 홀로 던저져 있으니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언제부터 바다 속을 떠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 지도 모른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말은 하나였다 '신을 죽여라.' 그는 신을 죽인 것일까? 신을 죽였다면 홀로 남은 그는 신이 된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가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오아시스가 있는 육지로 가려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오랜기간 표류해왔지만 육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다. 뗏목은 점점 낡아가고 언젠가 어둡고 깊은 바다에 빠져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가만히 누웠다. 그러자 조용하게 느껴졌던 파도소리가 그렇게나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또 다시 노를 잡아야 하는가? 파도소리가 날 때면 그는 마치 바다에 멘몸으로 떨어졌을 때의 공포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듯 노를 저었었다. 그렇게 공포에 질려 노를 젓고 나면 깊은 꿈 속에서 수영하듯 노를 젓던 순간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정말로 내가 노를 저었는가 아니면 그저 꿈을 꾼 것인가? 그러나 그 기억은 물이 안개가 되듯이 희미해졌었다. 그는 노를 잡은 손을 보았다. 손은 물에 흠뻑젖어 투명하게 빛났다. 마치 물결을 붙잡듯, 노를 잡고 있던 손의 감촉마저도 이제는 알 수 없었다.



바다가 나를 삼키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삼켜졌고 남은 것은 나의망상 뿐인가? 의문은 깊어갔지만 바다는 그에게 파도소리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안 되겠다. 일어나자. 무서우니 노를 좀 저어보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가다보면 뭐라도 보이겠지. 바다가 나를 다시 한 번 속일지라도, 새들의 노래 소리에 파도소리가 묻히고 물고기들이 춤추는 그곳으로 가다보면 육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는 아무런 이정표가 없어 어디를 가도 똑같은 곳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파도소리를 를 거슬러 노를 저었던 기억이 있는 거 같은데... 어째선지 물결은 그 때 그 방향 그대로다.



여긴 어딜까? 처음에 내가 존재했던 곳과 다른 곳일까?



그는 새의 노래소리를 찾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새들은 오히려 겁먹은 듯 방향을 잃고 비틀거렸고, 그 중 몇 마리는 날개를 접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그는 크게 실망하고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물고기는 손발이 없이 파닥거렸다. 물고기의 눈은 텅 비어있었고 움직임은 춤춘다기보다는 마치 죽기 직전에 발작처럼 보였다.



노래하지도 않고 춤추지 못하는 존재라니... 가치 없는 것들. 그는 또다시 노를 쥔다. 그것이 산 건지 죽은 건지도 모른체. 어디까지 저었을까? 아니 언제까지인가? 이것은 의미 있는 질문일까?



바다는 여전히 하늘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끝없는 물결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렇게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다는 어째서 생긴 것일까? 그러고보니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이전에도 바다가 있었을까? 그는 처음으로 바다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봐도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팔을 뻗어도 다리를 적셔보아도 잡히는건 없었다. 출렁이는 파도소리는 언제들어도 무서운 자장가 같았다. 그것은 전설의 괴물의 속삭임일까? 내가 모르는 진실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바닷물을 다 마시면 바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너무 짜서 한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결국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지평선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진실은 그 너머에 있는 거 같았다. 그는 곧 허탈해졌다. 그러나 허탈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또다시 파도 소리가 그렇게나 무섭고 거슬렸던 것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바다를 갈랐다. 마치 그의 갈라진 입술처럼. 그의 입술로 짠 것들이 닿았고, 그는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다는 남자의 생명수를 소진시켜 자신의 몸을 불리는 것을 멈추지않았다. 네놈은 내가 말라 죽을 때가 돼서야 멈출 셈이냐? 그러나 남자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바다에게 빼앗긴 것은 물뿐만이 아니였다.



그는 다시 누워서 물을 갈망하듯 바닷물에 손을 뻗었다. 왠지 바다가 더 과장되게 뗏목을 물결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다. 바다가 나를 농락해서 계속 그 자린 걸까? 노를 젓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남자는 노를 저은 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상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도 땀도 잊혀지고 남은 것은 또 다시 파도소리 뿐이었다.



나는 더이상 너한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쪼그려서 앉아 귀를막았다. 남자의 마음은 물 먹은 공기처럼 무거웠다. 해는 점차 져가고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남자의 주변은 수평선부터 뿌였게 흐려졌다. 파도소리는 더 기괴해져갔고 남자는 안개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남자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끝없는 바다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표류해야 하는 거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듯,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끔찍한 바다 속에서 나는... 나는 대체...!



그는 마치 두려움에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바다를 향해 외쳤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두려워할 것 같으냐?"



"나를 죽여라, 그리고 나를 박살내라! 항상 그래왔듯, 나에 모든 것을 앗아갔던 것 그대로, 과거도 미래도, 항상 그래왔듯이 그렇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비웃으며, 한 줌의 흙조차 남기지 마라"



그런데, 어째서 바다속에는....



내 얼굴만이 비치는 것이냐?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해져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바다만큼이나 짠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러나 하도 오랫동안 파도를 맞아와서 그것이 바다의 것인지 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파도를 맞았다. 더이상 파도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를 젓는 일에 몰두하지도 않았다. 육지를 찾지도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워서 하염없이 파도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시간이지날수록 그렇게나 두려웠던 파도 소리가 점차 익숙한 노래소리와 같이 들리는 것이었다.



어쩌면..바다 깊이 누군가는, 홀로 있다 외로워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동안 파도소리가 무섭게 느껴진 이유가,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은 나에 대한 아우성이었을까? 그 역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했던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의 눈물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나와 같이 잊혀지고 사라져간 영혼들의 눈물...



그러나 그는 마치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마냥 무시했다. 그한테 필요한건 싸워 극복해내야할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잊혀진다는 것을. 바다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사랑해야할 존재도, 미워해야할 존재도, 굴복시켜야할 존재도, 용서해야할 존재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끝내 목 놓고 엉엉 울고 말았다. 파도는 거칠어졌다.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일까? 누군가 내가 우는 것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 바다는 나를 기억해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멈추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바다가 그의 눈물을 모조리 삼켜버렸을지도 모른다. 메마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다야. 바다야. 너는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구나.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느냐?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바다는 고요해졌다. 그는 한동안 숨을 죽였다. 목이 메말라 헛기침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바다도 그랬을 지 모른다.



왜 이럴 때만 조용해지는 것이냐? 너는 마치 나의 애원이 너의 도달할 수 없는 바닥까지 전해지게 하는 것만이, 마치 그만큼 깊은 나의 죄를 고백하는 것만이, 너의 존재의 의미인 듯 그렇게 내가 무너지기를 바라는구나. 그렇다면 너는 성공했다. 너는 충분히 의미있는 존재다.



물결이 뗏목을 휘감아 소용돌이를 일으켜 뗏목이 빙빙돌기 시작했다. 뗏목은 밀리고 당겨지고를 반복하고 물보라가 남자의 귀와 코를 덮쳤다. 남자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켁켁거렸다. 남자는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없다면, 너는 어디서 너의 의미를 찾을 것이냐?



파도소리는 다시 그의 말에 침묵에 빠진듯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결은 뗏목을 끝없이 에워싸며 파도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가 법을 집행할 수 있다면, 나는 법을 창조할 수 있다. 네가 내 고통으로 신이 된다면, 나는 나의 의지로 신이 되리라.



목소리는 점점 메말라갔지만, 두려움 뿐만은 아니었다.



자비로운 바다여! 그대 나한테 고통을 주어서 나를 높이니



날 용서하지 마라. 나의 작은 눈물들은 모두 물고기들한테 양분으로 주고, 파도소리로 하여금 나의 작은 신음소리를 파묻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여라



그렇게 기도하였다고 하니



바다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알렉산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제 글은 출처를 밝히면 문학(시, 소설, 유머)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상업적 이용도 동일 이용 조건 하에 사용하셔도 됩니다

4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신을 죽이려는 노인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