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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1. "이별"의 과거완료형: 만남

이별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다.

매번 반복되던 이별타령이 어느 날 멈췄다. 그는 갑자기 혼자 지리산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7월 어느 날.. 끈적거리게 더운 어느 날.. 대나무 돗자리에 베개를 밀치고 얼굴을 파묻었다. 돗자리 자국 도장으로 눈물을 뒤덮으려 여기저기 마구 찍어댔다. 진짜 짓눌려서 아팠다. 얼굴도 마음도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몰라 그냥 그렇게 얼굴을 처박고 울다 잠들었다. 



처음으로 하루 종일, 이틀 연락이 없었다. 아.. 정말 이별이구나.. 이겠구나.. 삼일째 늦은 밤, 전화가 왔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흐느꼈다. 그는 나를 콩이라 불렀다. 180 하고도 8센티 훤칠한 큰 키에 뚫고 나올 것 같이 큰 눈에 쌍꺼풀을 한 그는 160 하고 1센티 아담한 나를 콩이라 불렀다.

 


-콩, 미안해..

가슴이 털컹했지만, 귀에서 이명이 들렸지만, 붙잡고 싶었지만, 첫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대학원 시절 나는 다른 연구실로 파견 갔었다. 그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처음부터 나와 계속 눈이 마주쳤던 그가, 나에게 눈을 떼지 않던 그가.. 이제 그가 그만하자고 한다.



-자꾸 헤어지자고 해서.. 그런 거야?.. 알잖아.. 그건 그냥 네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반복되다 보니 나도 힘들고.. 그게.. 안 돼서.. 그러니까.. 미안해.. 아니, 내가 이번에 너무 심하게 했지. 미안해 이번에는..

그는 말을 끊었다.



-콩, 넌 내 가슴 넘치게 밀치고 들어왔어.. 내가 밀어낼 수 조차 없었어. 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는데.. 내가 그랬다. 내 마음이..

그는 한참을 말없이 울기만 했다. 수화기 넘어 빗소리에 묻히지 않았다. 그의 울음소리는 서글펐다.



-헤어지자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많이 듣게 되면서, 가슴에 절반씩, 절반에 절반씩 자꾸 멀어져 갔어. 며칠 전 마지막 너의 메시지는 내 마음의 마지막 자리를 비워냈다.. 그런데.. 아파.. 너무 아파..



우린 아무 말 없이 수화기 너머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 아니 내가 주도하던 이별타령은 정작 그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비수로 꽂혔다. 억수같이 비가 오던 그날 자정 곧 장마가 올 것 같았다. 정작 나는 그의 거처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혹시나.. 어디에서 쓰러져 있지는 않을지..


눈을 뜨니 다시 아침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뜨거웠다. 우중충하던 장마가 올 것 같던 어제는 사라졌다. 혹시 어제도 같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아침이 와줘서, 빛이 나는 아침에 기대어 지내보기로 했다. 마음과 달리 몸은 물도 밥도 없어도 살아지고, 마음은 계속 달래도 달래도 어제 그 자리에 있다. 혹시나 이 슬픈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까 봐 어서 추스르고 집을 나섰다.



가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모자를 쓰기로 했다. 괜찮은 것처럼 하다 보면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괜찮은 분홍색 모자를 골랐다.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혼자 실컷 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밀린 시험지를 잔뜩 들고 학교 가서 채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말이라 버스는 너무 빨리 달려 도착했다. 오늘은 차가 좀 막혀도 좋으련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도착해 버렸다. 모자 아래 얼굴은 아무도 몰라봤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번 학기에 강의를 몇 개 맡아서 했다. 막상 시험문제를 낼 때는 편했는데, 채점을 하려니 주관식은 주관이 필요했다. 시간을 내고 주관적이면서 사실만 설명한 정답을 찾아낼 직관적 집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음을 추스른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학교는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반쯤 등산을 해야 했다. 오늘은 분홍색 모자에 분홍색 티셔츠형 원피스에 흰색 힐 샌들을 신었다. 산뜻함을 함께 하고 싶어서 운동화 대신 불편하고 발가락이 훤이 보이는 페디가 반짝반짝 빛나는 틈에 한껏 빛나고 싶었다. 운동화를 신고 등산길 내내 울고 싶지 않아서 샌들을 골랐다. 가슴 한가득 시험지를 안고 셔틀을 기다렸다. 혹시나 수업 듣는 학생과 눈이 마주칠까 봐 고를 더 숙이고 모자도 더 푹 눌러썼다.



꼬불꼬불 휘청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부여잡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는 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었다. 하차벨은 겨우 누르고 미끄러지듯 매달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내렸다. 하얗게 질린 발가락에 긴장을 풀고 다시 시험지를 고르고 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볼까 봐.. 그런데.. 그냥 또 눈물이 난다.. 언제까지 아플까.. 몇 걸음 걷지 못했다.



-저기.. 요.. 잠.. 시만.. 요..

수업 듣는 학생인가?  얼른 눈물을 훔쳤다.

-네.. 네.. 무슨 일이시죠?

-아... 그게.. 혹시.. 저.. 음..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요?

-네?.. 뭐라고요? 왜요?  

-아.. 저기 저.. 제 친구 가요.. 첫눈에 반했다고.. 머뭇거리고 괴로워해서요.. 제가 도와 줄려고요..



먼발치 저기 저 쪽에 남자라고 하기에 다소 마른 체구에 여자보다 얼굴이 더 하얀 사람이 고개 숙인 채 우리 쪽으로 반쯤 몸을 돌려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한마디로 어디서 개수작인가 싶었다.

-도대체 저를 어디서 첫눈에 보셨다는 건가요? 저 아세요? 친구분 하고는 눈을 마주친 적이 없는데요?

-방금 전 셔틀버스 타셨죠? 아, 서점 앞에서 맨 앞에 줄 서 계셨었죠? 저희는 뒤뒤에 서 있었습니다.

아무 기억이 없었다. 뒤에 누가 서 있었는지, 줄이 있었는지.. 사실 설명을 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 그.. 네, 셔틀은 탔어요.. 그런데 제 뒷모습 보고 지금 뭐 이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뭐 하자는 거죠?

그냥 이 사람을 붙잡고 짜증도 내고 퍼붓고 싶었다. 실랑이처럼 보이는 우리 쪽으로 먼발치 그가 다가왔다.



- 버스 오기 전에 뒤쪽으로 살짝 얼굴을 돌리셨을 때 잠깐 볼을 봤어요. 얼굴이 아니라 볼이요.. 그때 처음 봤습니다.

뒤를 돌아봤다고? 내가? 언제..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없다. 버스가 오지 않아서 그냥 등산을 해볼까 하고 잠시 뒤를 돌아다봤던 그 찰나? 1초 잠깐 그때 말인가? 설마 그때? 모자 아래 볼을 보고 지금 이런다고? 아..뭐 이건 대단한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이 대답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아.. 그.. 저.. 그래요.. 그래서 뭐라고요? 전화번호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찬찬히 그 둘을 위아래 훑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리다. 한 3살 정도? 음.. 머리가 짧고.. 이제 복학하나? 대충 나보다 어리다 짐작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휴학생인가요? 이제 복학하려고 하나요? 전, 여기 이 건물 박사과정생이고 강의를 해요.. 뭐 또 질문 있나요? 나는 제법 강사답게 또박또박 잘라 말을 했다. 그리고 시험지를 한번 훔쳐 올렸다.

-네, 아.. 제 선배님 이시네요.. 네 군대는 갔다 왔고, 복학했다가 다시 휴학했다가 복학하려고 학교 나왔고요. 그리고 제 용무는 선배님, 전화번호 알려달라고요.



여리여리 키만 멀뚱하게 큰 이 사람.. 눈 하나 깜하지 않고 나랑 같은 어투로 똑같이 말대답을 했다. 난 한참을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 셋을 쳐다보기 좋은 길목에 서서 나 혼자 멋쩍은 것 같았다. 난 얼른 이 자리를 정리하고 싶었다. 일단 피하고 싶었다.  

- 그래요.. 뭐 여전히 괜찮은가 보죠. 그래요.. 뭐.. 후배니까 전화번호 알려주는 거야 뭐.. 여기.. 어디 적어드려요?



대충 숫자를 흐릿하게 흘러내리듯 써서 건넸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좀 더 당당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뒤를 돌아 차분히 걸었다.

-선배, 뒷자리 1이에요 7이에요? 아... 7이네요. 앞에 7도 비슷한 필체네요.라고 대충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입가에 피식 웃음이 그리고 그가 떠났을지 그 자리 서 있을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앞만 행해 걸었다. 이제 와서 뒤를 돌아보는 것은,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한번 뒤를 돌아보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이미 떠난 사랑과 다시 찾아올지 모를 사랑에게 이별은 후진이 허락되지 않는 하이웨이이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서로 다른 속도로 달려가다 보면 쉬어가야 할 타이밍에 들르는 휴게소는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할 수 있기에 살렘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이별은 아프지만 되돌릴 수 없고, 새로운 만남은 두렵지만, 여전히 설렌다.



이별의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은 셀램이라는 신호탄으로 부터 온다.. 우리는 만남은 그렇게 지난 사랑의 이별을 끝으로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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