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시작하며 다짐했었다. 잘 살고 싶은 마음에 답하며 살아가겠노라고. 잘 살아내는 마음을 키워나가겠노라고. 그러면서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 검사지를 실시했고, 3개월에 한 번씩 검사지를 해보며 내가 얼마나 나아져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3월 31일이고, 두 번째로 회복탄력성 검사지를 열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월 초에 비해 점수가 오르긴 올랐다. 딱 4점. 충동통제력 지수가 올랐고, 공감능력 지수가 떨어졌다. 자아낙관성과 감사하기 지수가 올랐다.
3가지 지수가 올랐는데 전체적으로 4점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건 아마 떨어진 지수의 점수가 꽤나 크다는 뜻일거다. 공감능력 지수 말이다. 실은 지난 주부터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랄까 화로 인해 내면이 또 한참 가득 무겁고 시뻘겋고 어두웠었다. 목요일 즈음이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그런 사람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내 하루를 이렇게 보내야 하지. 분노하거나 화내고 있는 그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달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감정을 털어 버렸더랬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털어냈었기에 4점이라도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금요일 밤마다 늦게까지 독서심리전문가 선생님들 사이에 끼어서 독서기반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매번 지치고 힘들어서, 금요일 밤에 공부하는 엄마를 너무도 아쉬워하는 어린 아들의 눈이 밟혀서 몇 번이나 ‘그만할까...’하고 고민하고는 한다. 이번 주도 그랬다. 아이가 감기로 앓았고, 줌으로 스터디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그저 소리만 들으며 아이 옆에 있어주었다. 아픈 아이를 보면서 ‘공부하겠다고 이렇게 하는게 도리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건 아닐까, 내가 뭘 하겠다고 상담사도 아닌 내가 이 공부를 이렇게 하고 있단 말인가, 차라리 금요일 밤 아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게는 더 건강하고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등등 온갖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랬다가 뚝 떨어진 공감지수 점수를 보면서 ‘아, 나 아직 멀었구나.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상담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스님 한 분과 신부님 한 분이 나오셨던 영상이었는데 거기서 오은영 박사가 그분들에게 하신 이야기가 있다. 정신과 환자 중에 오전에 회진을 돌 때마다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우유팩을 집어 던지던 환자가 있었다고. 그런데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고. 알기 때문에. 이해하기 때문에. 그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나아지지 않은 나의 회복탄력성 점수를 골똘이 바라본다. 3개월 정도, 이렇게 생각해왔다. 나도 잘 살고 싶다고, 아프지 않고 싶다고,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인생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새해라는 시점이어서 그랬을까. 애쓰는 느낌이 있다. 오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회복탄력성 지수가 높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더 잘 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 않은 나라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왜 그런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나가고 싶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렇게 하나하나 조금이라도 알아나가고 이해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길의 방향을 조금 바꿔본다. 다음 3개월은 이렇게 살아보련다. 나를, 다른 이들을, 그리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나가고 이해해 나가기. 더 잘 살아보겠다고 억지로 애쓰지 않기. 6월 31일, 그날 나의 회복탄력성 지수는 어떨지 궁금하다. 비록 달랑 4점이었지만 나아진건 나아진거다. 이건 나의, 나만의, 예쁘고 고운 희망점수다.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