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UX 디자이너로 첫걸음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 입장에서 UX 디자인을 처음 접하면 이게 디자인 영역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디자인 전공자답게 앱(app) 화면인 UI(user interface)를 디자인한다 건너 들었는데, 문제 인식부터 조사와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수행하는 과정이 시각 디자인과 관련이 없다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입시생인 시절부터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미대에 왔다. 그런데 추론, 조사, 탐구, 분석이라니. 리서치는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조금 쉽게 생각하면 리서치는 기획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디자인은 상업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는 투자자나 클라이언트가 있고, 아래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와 고객이 있다.
따라서 디자인은 순전히 아름다운 결과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클라이언트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고, 기업의 디자인 기조(principle)에도 벗어나면 안 되며, 사용자의 시선을 이끌면서 고객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이끌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마케팅도 심리도 시장 상황과 트렌드까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기획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디자이너 개인의 감각적인 부분보다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이끌 수 있는 이성적인 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UX 디자인 프로젝트에 표현된 그래픽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누가 들어도 매력적인 문제 해결이나 신규 서비스를 제안하면서, 트렌드에 벗어나지 않고 프로젝트 내용에 적절한 그래픽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서 UX 디자인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해 볼 때 느끼게 되는 답답함이 있다. 계획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누구나 첫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그래픽으로 인한 절제된 표현에 답답하기도 하고.
처음 시작한 UX 디자인 스터디 소모임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자신의 할머니가 이해하도록 간결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 이론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경험과 지식을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UX 디자인 스터디에서 어떻게 발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매끄러운 이야기로 디자인을 이어가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 디자인 노벨상 후보감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어떻게든 좋은 프로젝트가 구성되도록 노하우와 경험을 전달하는 입장과 배우고자 하는 학생 입장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서 우선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를 찾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소재는 일상에서 찾는 것이 좋다. 이는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디자이너는 ‘특별한’ 것을 창조하려고 부단히 애쓰나, 이 특별한 소재가 디자인의 전부는 아니다. 이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환상에 빠진 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는 ‘평범한 것’은 자극을 주지 않는 지루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평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절대 지루하지 않다. 진부하지 않게 평범함을 포장해 새로움을 보이는 슈퍼노멀(super normal)이야말로 디자인의 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11]
이처럼 평범함을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보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존의 것을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로 이끄는 ‘프레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내가 직접 겪고 나서 현상을 판단하며 나만의 프레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 단어에 savoring은 ‘현재 순간을 포착하여 마음껏 즐기는’ 행위를 뜻한다. 이처럼 어떠한 현상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프레임으로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12]
여기서 이야기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다르다. 자연과학은 어떠한 현상을 증명함으로 사실 아니면 거짓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인문학은 추론을 통해 기존에 없는 사실을 정의하여,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며 제안을 한다. 즉, 인문학은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이 아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학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이 생각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추론으로 이야기로 UX 디자인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어찌 보면 리서치의 본 목적은 내가 어떠한 현상을 다르게 본 프레임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추론을 위해 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리서치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일이 아니다. 다만 재미없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재미있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디자인을 시작하며, 그 이야기를 보다 사실로서 포장하기 위해 리서치를 하는 방법으로 UX 디자인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야기를 위해 여러 토론을 거쳤다. 그리고 토론에서 건진 주제는 2가지였다. 하나는 대구에서 살아온 대구 사람답게, 가장 대구스러운 경험을 살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인 메타버스를 다른 방향으로 살려보는 것이다.
우선 대구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다. 대구 하면 떠오른 문화가 무엇일까. 바로 사투리일 것이다. 경상도에 사투리는 크게는 남과 북으로 갈린다. 그리고 경상북도의 대구 사투리는 같은 경상북도의 포항과 경주, 그리고 다른 도시의 사투리와 또 다르다. 대구 사투리는 대구의 브랜드 경험으로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경험에 재미를 줄 수 있는 소재가 되지 않을까.
앞서 UX 디자인은 그래픽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인터페이스 안에 그래픽, 모션(motion) 뿐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인 텍스트와 문구(writing)까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보 전달 수단에는 소리도 포함된다. 소리는 효과음과 음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효과음을 통해 문제가 생겼는지, 태스크 수행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혹은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는지 알 수 있다. 최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은 디바이스(device)와 직접 소통하며 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소통은 인간과 디바이스가 서로 말을 하면서 정보를 주고받는 상황을 뜻한다. 이처럼 사용자와 디바이스가 서로 소통하는 인터페이스를 VUI(voice user interface)라고 한다.
대구만의 문화 상징이자 도시 브랜드 요소가 될 수 있는 대구 사투리를 인터페이스에서 정보 전달 수단인 텍스트와 VUI에 활용하면 어떨까. 최근 수도권에서 늘고 있는 키오스크에서 사투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황. 다른 도시 시민이 들었을 때, 사투리를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대구가 고향인 사람이 오랜만에 들렸을 때 키오스크에서 대구 사투리가 들린다면.
예상하건대 재미난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용성이 좋을지 우리는 모른다. 사투리로 텍스트와 보이스를 구성할지. 아니면 사투리는 틀리고 표준어로 구성하는 것이 옳을지. 또는 텍스트는 표준어인데 보이스는 사투리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사용자 경험이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키오스크 인터페이스의 화면은 시각디자인 전공자답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UX 디자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인터페이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투리를 활용한 서비스가 재미있는 경험과 사용성에도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나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
다음으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 하면 다수의 사람이 게임을 즐기고, 혹은 대화를 하는 서비스로서 활용하는 이야기를 먼저 던졌다. 우리는 이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메타버스는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를 뜻한다. 즉, 실존하지 않는 환경과 요소들이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실질적인 경험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메타버스에서 구성된 환경과 공간을 보며 사용자가 직접 움직이면, 그 움직임 대로 화면도 움직이다 보니 뇌는 이를 실제 상황이라 착각하게 된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가상공간이다 보니,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이동하고 진짜라 착각하는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면 좋을까. 의외로 대구가 광역시라 해도 큰 동물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동물원이 있으면 어떨까 했다. 그래서 조사를 하다 보니,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환경에서 살지 못하니 심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권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 여러 동물원은 가능한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유사하게 장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에 동물원을 구현하면 동물권에 침해가 가지 않는 서비스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동물을 만나보는 메타버스 서비스를 기획하고자 했다. 동물권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우리의 추론을 보완하기 위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사투리의 문화적 측면의 장단점,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 동물권 보호를 위한 노력과 메타버스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하나씩 조사하며 이야기를 빌드업하노라니 2달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그렇게 소모임의 여름은 끝났다.
[11] 후카사와 나오토 저, 박영춘 역. (2009). 슈퍼노멀 :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 파주: 안그라픽스.
[12] 최인철. (2016). 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서울: 21 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