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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Feb 17. 2020

세계를 건너가는 일

주제 사마라구와 타라 웨스트오버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다가 앓아눕고 말았다. 거기 나오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들이 나와 같은 종이라서, 게다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갈 수도 있어서 끔찍했다.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피를 흘리는 것처럼 아프고 무섭고 두려웠다. 아마 책 모임이 아니었으면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사실 책도 읽고 영화까지 보고 만나기로 했었지만 영화는 포기했다. 책모임의 과제를 하지 못한 건 그때가 유일하다. 며칠을 진저리를 치다가 나머지를 읽었다. 책이 종반에 접어들고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붙잡고 매달릴 작은 끈 같은 걸 발견했기 때문에. 어쩐지 후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작금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경고와 염려인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그 작품을 읽을까 물어오면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해서 상대방이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주기를 바랐다. 무서워요? 네! 잘 읽히나요? 네! 다시 읽을 건가요? 아니요!


   여기 그와 비슷한 책이 있다. [배움의 발견]이 '알라딘'의 새로 나온 책으로 소개되었을 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너무 많고 너무 뻔한 서사 같았다. 우린 모두 부모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는가. 어느 순간 그 터널이 굴곡지고 어두운 데다가 자갈투성이였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우리들의 사랑하는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타인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 단련되어(교육) 자유를 찾는 스토리라니. 그런 건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서둘러 이 책을 주문했던 건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번역자의 책 소개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 한 두 개의 단어로 규정될 수 없는 가족들 간의 관계의 변화, ‘문학이란 사물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경험’이란 은사의 말씀에 덧붙여 그가 그간 읽었던 몇몇 책의 번역자란 사실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물론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사실은 까맣게 잊기 마련이지만. 


   비밀이란 단어를 겁낸다. 비밀은 대개 슬프고 어둡고 게다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 비밀에 덧붙여진 온갖 이름들을 함께 떠맡는 것이니까. 게다가 비밀을 털어놓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겪었을 혼란과 갈등으로 이미 지쳐있을 테니까,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있을지 염려해서다. ‘타라 웨스트오버’는 한 세계를 나와 다른 세계로 건너가지만 번번이 돌아온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 속에서 두 세계가 충돌하고 그녀는 그 사이에서 매번 부서진다. 그녀가 두 개의 세계에 번갈아 존재하기 위해 갖춘 무기는 바로 ‘비밀’이었다. 계속 읽어나가는 건 힘들었지만 멈추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술술 읽혀서 빨리 읽을 수 있었으니 마주 보고 앉아 비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견딜만했다고 하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라가 집을 떠나온 후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 마음이 놓였지만 그건 떠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모르는 사람의 성급함에 불과했다. 신체적인 위험이나 폭력적인 언어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거나 감정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과거를 완전히 잊거나 벗어나기가 쉬울 리 없다. 원제인 ‘Educated’의 의미는 저자가 밝힌 대로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 일 것이다. 스스로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이라고도 했던 건 그녀가 떠난 세계가 바로 그녀가 속하고 싶은 세계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자는 끝없이 자신이 떠나온 세계로 돌아가고 싶고 여전히 그 세계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이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밝은 곳으로 나온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한 몰이해와 외면을 딛고 서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의 용기와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끝이라 여길 수 없어 나는 여러 번 갑자기 울었다. 누군가와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때 나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잘 읽히나요? 네! 다시 읽을 건가요?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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