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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27. 2021

괜찮을 거야

시드니 스미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건 내가 아이가 되는 일이다. 아이의 키만큼 작아져서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작아지면 아이가 나만큼 커진다. 작아진 나와 커진 아이가 나란히 걷고 마주 보고 웃는 것, 그럴 때가 있었다. 이제 아이는 나만큼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우린 작아지거나 올려다보지 않고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란히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다른 곳을 향하거나 다르게 보는 것도 낯설지는 않지만 가끔은 어른인 우리에게도 또 다른 어른이 필요하다.


  때로는 자신이 아이가, 그것도 아주 작은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낯선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일 때 나는 다시 아이다. 제대로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댄다. 나는 고대 신전의 기둥같이 긴 다리를 가진 어른들 틈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불안하다. 어른들은 서둘러서 어딘가로 향하고 무언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길 잃은 아이 정도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이다. 누구에게라도 나는 발견될 수 없는 걸까 기다려보지만 말을 걸어주는 이도 손을 내미는 이도 없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감추고 용기를 내는 일, 그 시작은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묻는 일일 텐데 생각뿐이다. 생각이 목소리가 되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 [괜찮을 거야]는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간절함에 답한다. 


"괜찮을 거야, 내가 널 지켜보고 있어."


  어린아이가 혼자 버스에 타고 있다. 표정이 어둡지만 단단하다. 작은 몸을 늘여 하차벨을 누르고 어른들 사이에 서있다가 멈춰 선 버스에서 내린다. 목소리가 아이를 따라간다.  나도 알고 있다고, 혼자 세상 앞에 선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다는 목소리다. 쉽지 않을 거라고. 그렇지만 괜찮을 거라고. 눈이 내려 도시를 덮지만 아이가 자신을 지켜보고 염려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시끄럽고 복잡한 거리에서 아이는 조금 당황하고 놀란 듯 보이지만 곧 씩씩하게 걷는다. 나는 너를 잘 알아. 그러니 내 말을 좀 들어볼래? 골목길은 빠른 길이야. 하지만 너무 어두운 길은 좋지 않지. 위험한 길도 피해야 해. 숨거나 쉬거나 한숨 자거나 허기를 달랠 수 있을만한 곳을 알려줄게.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도 있지만 조심해야 할 곳도 있어. 좋아하는 일을 해도 돼. 이를테면 음악을 듣느라 창 아래에 머물 수도 있지. 어쩌면 내 친구를 만나서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네가 보고 싶어. 


"그러니까 지금 바로 돌아와도 괜찮아."


  그러니까 그 목소리, 누군가가 아이에게 건네고 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바로 아이의 목소리였다. 굳게 다문 입 속에서 아이는 소리내지 않고 끊임없이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있던 거였다. 고양이를 찾는 전단을 도시 곳곳에 붙인 아이는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간다. 거기, 집 앞에 엄마가 서 있다. 누군가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은 아이가 잃어버린 고양이에게 하는 말이엄마가 아이를 기다리면서 끝없이 되뇌었을 말이기도 하다. 엄마가 아이만큼 작았을 때 들었던 말이기도. 아니. 거기 앞에서 눈을 맞고 서서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게도 계속 들렸을 목소리. 때때로 내가 듣고 싶은 말.

 

"괜찮을 거야."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뻔한 거짓말로 포장한 헛된 위로는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회복은 이러저러한 믿음에 달려있다. 고양이는 무사할 거고 아이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 눈은 그칠 것이고 봄은 올 거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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