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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02. 2020

털신 한 켤레만 있으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와 메리 올리버

    날이 추워지면서 털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겨울이 되면 시장 초입에 있던 신발가게 선반에 나란히 진열되던 그것. 플라스틱인지 비닐인지로 만든 몸체에 복슬복슬한 털이 신발 안쪽을 감싸고 가장자리에까지 둘려져  보기만 해도 따뜻해 보였던 신발 말이다. 그 털신을 실제 신어본 적은 없다. 그건 할머니들이 신었다. 알록달록한 버선을 신고 털신에 발을 집어넣으며 ''따시다''고 좋아하셨던 외할머니의 겨울 구매 목록 중 하나였던 그걸 나도  사서 신고 싶었다. 남편은 신발을 사러 가자 하면서도 설마 하는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아마 창고나 마당에 잠시 나갈 때 신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나는 이런저런 계산 없이 그냥 그 털신을 사고 싶었으니 그 마음은 아마 내가 어렸을 때 바라보던 할머니들에게서 풍기던 냄새, 비누향이 섞인 노년의 은근한 따뜻함이 그리운 건 아니었을까?


    [올리브 키터리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던 건 '올리브도 늙는구나'였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단어를 고르지 않는 사람, 겁 많고 사랑 많고 욕 잘하는 커다란 사람, 올리브 당신도 늙는군요 라고 인사를 남겼었다. 어이없을 만큼 생경한 분홍색 표지의 [다시, 올리브]가 며칠 전 도착했을 때 책 속에서 만난 올리브는 그동안 더 늙어 있었고 내게는 그게 충격이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늙어가는 건 뻔한 일인데 뭔 호들갑이냐고 올리브에게 한 소리 들어도 대꾸할 한 마디도 찾아내지 못할 거면서 나이 듦과 죽음에서 계속 도망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붙들어 앉히고 또 앉혔다. 기억 속 털신 한 켤레가 상징하는 늙음의 반의 반 조각도, 아니 아무것도 나는 모르고 있던 거였다.


    올리브는 여전히 올리브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늙은 올리브라서 지켜야 할 관습과 갖춰야 할 예의를 제때 지키는 일에 거듭 실패한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과거의 자신, 사랑했던 사람들, 지나간 사건들,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어떤 말들에 더 자주 빠져들지만 진짜와 가짜, 무례와 사랑을 가려내는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처진 엉덩이와 나온 배를 가리려고 퀼팅천을 사다가 스스로 재킷을 만들어 입긴 하지만 그게 다른 이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에는 생각이 미치치 않는다. 뒤늦게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새삼스레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데다가 되돌리고 설명하는 성가심은 올리브의 몫이 아니다. 어울리는 삶에는 여전히 서툴고 거듭되는 실수는 슬프고 화가 난다. 삶은 본래 그런 것이니까 올리브 역시 그걸 못 본 척 살아왔다. 부지런히 돈을 벌고 아이를 기르고 사람들을 참견하고 마음껏 미워했는데, 이제 노인들을 위한 아파트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작아진 몸집의 할머니가 된 올리브를 사람들은 상관하지도 않는다. 올리브 말대로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엘라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다시, 올리브]에서 다른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을 올리브와 만나게 한다. [버지스 형제]의 짐과 밥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에 누워서 책장을 넘기다가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 이저벨과 올리브가 함께 죽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두려워하는 장면에서 이 이저벨이 그 이저벨인가, 그럼 에이미는 언제 나올까 숨을 죽였던 내가 우습다. 나, 여전히 이야기를 탐하던, 옛날 얘기 속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걸 보고 손뼉 치며 좋아하던 아이에서 멀리 떠나오지 못했구나.


    올리브는 늙어가면서 점점 느슨해진다. 감정이 새는 것처럼 말도 샌다. 심장마비를 겪고 난 후에는 몸도 느슨해져서 이제는 디펜드필요한 노인이 되었다. 더 이상 씩씩한 올리브이기를 포기하고 타자기와 잉크 카트리지를 구해서 남아있는 기억을 기록하다가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된다. 그건 함께 있어주고 싶은, 곧 죽을 테지만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한 이와 함께 좋아하는 2월의 햇볕을 보는 일. 메리 올리버가 여우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했던 말처럼. 


당신은 삶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말들로
그 의미를 숙고하고 곱씹으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우린 그저 삶을 살아가지.

아!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걸 알아내려고 그 많은 시간을 쓰는 건지.
당신은 야단법석을 떨고, 우린 살지.

                 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중에서


시인이 우리에게 해 줄 다음 말은


''그는 이제 늙은 몸이라 천천히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어.''


그래. 올리브처럼.

털신 한 켤레만 있으면 발은 얼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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