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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09. 2019

참외 축제에서 배추를

히라마쓰 요코와 박완서


    여주에서 참외를 사 왔다. 주말에 참외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축제 뒤끝이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참외를 찾는 이들이 줄줄이 들어서니 주인 내외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다. 참외 농사지으면서 배추도 길렀다고, 참외 사는 이들에게 배추도 한 통씩 건넨다. 웬일인지 나는 세 통이다. 뭘 할지도 모르면서 준다니까 덥석 받았다. 너무 많은데 다 받아 가도 되겠냐는 남편 걱정은 못 들은 척했다. 한 아름이나 되는 초록색 배추가 예쁘기만 했다. 냉동실에 양지머리가 있는 걸 떠올렸다. 배추 된장국을 끓여야지, 여름이지만 뜨겁고 진하게, 배추를 잔뜩 넣고 오래 끓여서 단 맛이 우러나도록, 남으면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둘까, 언젠가 먹어봤던 배추 샐러드도 만들고 배추전도 부쳐봐야지, 그렇게 욕심을 부렸다. 집에 오는 내내 참외는 뒷전이고 배추 생각만 했다. 


    마당 수돗가에 배추를 내려놓고 다듬었다. 제일 큰 함지에 물을 받으면서 배춧잎을 하나하나 떼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엄마 같았으면 김치라도 담을 텐데. 기껏 한다는 생각이 국 아니면 샐러드라니. 큼직한 스텐볼에 배춧잎이 높다랗게 쌓였다. 희고 노란 속대를 클립 크기로 썰었다. 깨를 갈고 올리브유와 화이트와인식초, 소금, 후추를 넣어 섞어 뿌렸다. 기억하고 있는 맛과 비슷했다. 배추로 샐러드를 만든다는 생각이 그때는 신기했다. 지금이야 무를 살짝 데쳐서 오일에 버무리거나 당근과 뱅어포에 참기름을 둘러 역시 샐러드로 내놓기를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배추 샐러드라고 식탁에 올려도 특별할 게 없었다. 제법 여러 장을 썰었던 것 같은데 쌓여있는 배춧잎들은 그대로였다.


  제일 큰 냄비를 레인지 위에 올렸다. 물을 끓이고 된장을 풀고 큼직하게 썬 양지머리도 듬뿍 넣었다. 배춧잎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에 든 칼로 어슷어슷 잘랐다. 배춧잎을 도마 위에서 자르는 대신 펄펄 끓고 있는 국 냄비 위에서 바로 잘라 넣는 기분은 참 묘하다. 어설프기만 한 부엌살림 중 드물게 찾아오는 '내 마음대로의 순간'이랄까. 그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때다. 배춧국을 끓일 때는 너무 많아서 이걸 어떻게 다 먹냐고 걱정할 만큼 배춧잎을 많이 넣어야 한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도 있다.  배춧국을 끓일 때마다 그 말을 기억했지만 언제나 국 냄비에는 건더기가 거의 없는 국물만 남아있어 버리기에는 아깝고 상에 올리기도 뭣한 때가 대부분이었다. 넣을 수 있는 한 많이 넣어야 했다. 배춧잎이 너무 많았다. 한소끔 끓어 배춧잎들이 숨이 죽고 부피도 줄어들어 냄비에 여유가 생긴 걸 보니 배춧잎을 더 넣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신이 났다. 배춧잎을 이렇게 많이 넣었으니 비록 양지머리를 넣었어도 어쩌면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춧잎이 흐물거리도록 오래 끓였다. 배추를 얼마나 많이 넣었던지 국자를 냄비에 넣어 저을 때도 건더기가 많아서 묵직한 느낌이 좋았다.


막 끓인 따끈한 된장국을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마시면 금세 코끝이 따뜻해지고, 국그릇 바닥이 보일 즈음에는 몸속 깊은 곳까지 따끈하게 데워진다.
 ~~
건더기가 가득한 된장국은 그것만으로도 놀랄 만큼 맛이 깊다. 재료마다 지닌 맛이 알뜰하게 우러나, 조금은 복잡한 하모니를 내며 어우러진다. 
~~
미리 만들어둔 밑반찬밖에 없다 해도, 아니 그조차 없다 해도 건더기 가득한 된장국 한 사발만 있다면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부엌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도, 왠지 기운이 없을 때도, 나는 의지하는 기분으로 건더기를 가득 넣어 된장국을 끓인다. 
                                        히라마쓰 요코,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다, pp.47~49


아무리 배추를 많이 넣었어도 고깃국이었다. 나는 한 수저만 떴을 뿐이지만 커다란 냄비로 오랫동안 국을 끓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의지가 되었다고 할까. 국을 대접에 담는 손이 푸근했다.                               


                                                  

배추는 여전히 많았다. 쌈으로 먹을만한 노란 속잎들을 따로 골라 담았다. 시댁에 갈 된장국도 한 냄비 끓여놓았다. 그래도 남았다. 아일랜드 위에는 여전히 대형 함지에 배춧잎이 반 너머 남아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글 한편이 생각나 책장을 살폈다.

나는 우연히 지나치게 된 시골 장에서 배춧값이 서울의 3분의 1도 안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알찬 걸로 세 포기나 골라서 새끼줄로 묶어 달랬다. 그다음의 고역을 무엇에 비길까. 
양손에 번갈아 들었다가, 어깨에 메었다가, 머리에 이었다가, 길바닥에 태질을 했다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나중엔 엉망으로 으깨진 배추를 시외버스에 슬쩍 놓고 내리려고 했더니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친절한 승객이 악을 쓰며 따라와 이 비싼 걸 두고 내리다니 어쩔 뻔했느냐고 생색을 냈다. 
                                                               박완서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중에서


    책이 너덜너덜했다. 가장자리가 심하게 변색되었다. 활자도 너무 작고 종이는 말라서 바스락거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언제 적 책이길래 이럴까 궁금해져서 책 뒤를 살폈다. 1990년 5월, 초판본이다. 내 딸보다 나이가 많은 책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책인가 보았다. 그동안 여러 번 책 정리를 했는데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싶었다. 물론 내 기억은 왜곡된 것이었다. 배추를 사들고 돌아오는 길의 악전고투가 너무 재미있어 기억하는 그 글은 배추가 유례없이 풍년이던 해, 김치 많이 담그기를 권장하는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흉년이 들어 배춧값이 금값일 때 겪었던 일을 풀어놓은 글이었다. 무거운 배추를 들고 낑낑거리는 대목 이외에는 어느 부분도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잠시 '나는 왜 이런 것만 기억하는가'를 궁금해야 할 것 같았지만 역시 같은 대목에서 웃음이 터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배추와의 전쟁은 끝났다. 커다란 비닐 백에 두 봉지를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하루 쉬고 나면 배춧잎을 먹어치울 새로운 묘책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한다. 별 수 없으면 다시 국을 끓이거나 전을 부치든지 해야겠지만 일단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고 함지를 치우니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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