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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02. 2019

읽거나 말거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책이나 서점, 도서관에 관한 책들은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시인들이 쓴 산문을 발견하면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쁜데 게다가 서평집이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싶었다. '쉼보르스카'라고 쓰인 글자들은 낯익지만 그 이름을 말하려 하면 입가에서 뱅뱅 돌 뿐 쉽게 나오지 않으니 잘 아는 시인은 아니다. 다른 지면에서 그의 시를 발견하면 반가웠으나 시집을 산 적은 없다. 지난 세기말에 노벨문학상을 탔고 벌써 오래전에 세상을 등진 폴란드 시인이라는 사실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녀가 30여 년 동안 연재했던 독서칼럼을 엮었다고 한다.  [읽거나 말거나], 제목부터 경쾌하다.


    쉼보르스카가 1967년에 발표한 첫 번째 서평의 제목은 '비필독도서'였다. 보통 문예지에서 다루는 권위 있고 무게 있는 문학작품들은 그녀의 칼럼에 포함되지 않았다.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생겨난 의문  - 내가 지금 이걸 왜 읽고 있을까 - 들은 어느 순간 읽기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바뀐다. 어쩌면 내게 영영 읽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책들과, 영영 읽고 싶어지지 않을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켜켜이 쌓여가는 재미와 흥겨움만큼 내가 읽어버린 페이지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가정용 조류], [모두를 위한 하타요가]. [장미 도감], [돌고래의 모든 것], [아파트 도배하기]. [암살 백과] 같은 책들에 내가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혹시 생길지도 모를 앞으로의 '쓸모'를 찾아 애쓴다면 결국 '쓸모없음'에서 터지는 느닷없는 폭소(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유쾌한)를 얻게 된다.  물론 [삼국지], [춘향전], [총, 균, 쇠], [사랑의 기술], 그리고 디킨스나 슈베르트, 니체나 릴케에 관한 책들에 관한 언급들도 있으나 어느 부분에 이르면 쉼보르스카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알든 모르든, 읽을 마음이 동하든 그렇지 않든에 상관없이 그녀의 글 자체에 빠져드는데 그 느낌이 또한 얼마나 각별한지!


    서평 모음집에 소개되는 책들은 거의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소개한 책들에 대한 열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마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저자들은 책들에게 우호적이지만 쉼보르스카는 아니다. 그녀는 젠체하는 책들, 애초에 책으로 쓰일 혹은 번역될 필요가 없던 책들, 작가의 선한 의도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책들과 작가와 출판사에 관해서도 익살과 재치가 섞인 일침을 가한다. 오로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하고 가뿐한 읽기다. 4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도서 목록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우나 그렇다고 해서 [읽거나 말거나]를 놓친다면 그건 실수다. 쉼보르스카의 말마따나 '혹시라도 누군가가 이 책이 집에 없다고 말한다면, 그런 이야기는 아예 듣고 싶지도 않을(p.325)' 것이다.


    책을 덮고 나는 바로 서점으로 가서 그녀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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