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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16. 2020

기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에쿠니 가오리

    침대 옆에 붉은색 가죽 의자가 놓여있다.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 잠이 들 때까지 그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화장대 역할을 겸하는 작은 책상 앞이다. 밤이면 그곳에 앉아 크림을 바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있기만 할 때도 많다. 처음에 반듯했던 자세는 점점 흐트러져서 다리를 올리고 한쪽 팔걸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었다가 의자가 해먹이라도 되는 양 두 다리를 올리고 눕다시피 몸을 맡기기도 한다. 물론 머리로는 그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시 똑바로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쉽게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창밖은 조용하게 어둡고 선풍기가 약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여름밤이라면 그게 뭐 그렇게 대단히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어깨가 뻐근하고 팔이 저려올 때까지 게으르게 늘어진 몸을 그대로 두기 일쑤다.


  그렇게 한동안 있다 보면 문득 내가 있는 곳이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처럼 여겨질 때도 있고 내가 무엇을 하든 남의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때면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방을 여행하는 법에 관해 몇천 자쯤은 너끈하게 쓸 수도 있겠다 싶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책을 읽는 나를 내가 또 바라보는 것, 게다가 마침 그것이 세상과 동떨어진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이라면! 그러니까 에쿠니 가오리의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 실린 짧은 소설, <기묘한 장소> 같은 작품을 예기치 않게 두 번째로 읽게 된다면 "하필이면 이 작품을" 이란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역시 기묘했다는 말.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다. 연말이면 여자 셋(엄마와 두 딸)이 만나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슈퍼마켓에서 두 시간 넘게 '시끌벅적하게, 거의 있는 힘을 다해' 쇼핑을 한다. 예순아홉의 ‘구니에’와 쉰을 넘은 ‘가즈코’와 ‘미미코’에게 세상은 애초에 '기묘한 장소'였는데, 해마다 점점 기묘해져서는 이제는 자신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괴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일 년에 한 번, 만나서 밥을 먹고 카트가 넘칠 만큼 쇼핑을 한 후, 물건들을 한아름 안고 각자 다른 장소로 돌아간다. 이게 끝이다. 세상이라는 기묘한 장소에서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뭔가가 그녀들이 껴안은 물건들 틈에 섞여 들어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남기고. 역시 기묘하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에쿠니 식의 싱겁게 기묘한 이야기 한 편이군'이란 기분이 소감의 전부였던 과거의 나 대신 나름의 기묘한 이벤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지금의 내가 있다. 어찌 됐든 나도 어떤 세상 안에서 살고 있고, 그곳이 살아가기에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닌 데다가, 나 또한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이미 실패했을지도 모르므로 만약 '어떤 방책'이란 게 있어서 그것이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힘을 모아준다면 나로서도 그걸 마련해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읽는 것은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처음에 그건 잠시 동안의 '산책'이었다가 차츰 멀고 긴 '여행'이 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리고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가는 그 일이 더 이상 간단한 일이 아니라 안갯속에서 길을 찾듯 복잡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 되어버렸다면 그때부터 읽는다는 건 취향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크고 작은 다리와 터널들을 만드는 것, 그래서 어쩌면 평온한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통째로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고작 책 몇 권을 읽는다고 일상이 비틀리고 깨지기야 할까 싶지만 나는 역시 겁이 많은 사람이라 무심히 읽어내려가는 중에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두근거리기라도 하면 금방 불안해져서는 '아. 모르겠다' 하고 읽던 책을 덮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곤 했다. 사실은 그보다 종종 건너간 그곳에서 이곳으로 건너오는 길을 잃고 헤매거나,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이곳인지 저곳인지 헷갈려서 어지러울 때가 더 많았다. 그건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것, 꿈인 걸 알면서도 깨어날 수 없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또 조금은 고통스럽기도 해서 부러 책을 외면하려고도 했으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든, 혼의 절반은 그쪽 세계에 가 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걸 보고 얼마나 얄밉던지. 나는 이토록이나 혼란스럽고 게다가 그런 나를 보는 이들에게서 정신이 어디 가 있는 거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칠 때면 그쪽으로 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쪽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는, 그리고 그걸 좋아한다'는 고백에 맥없이 그녀를 용서하기로 한다.

    책을 덮고 그대로 의자에 구겨진 채로 박혀서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읽기가 내 '삶을 비틀리게' 한들 그게 대수냐 싶고 또 그걸 싫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기념으로. '인생을 바꿔버리는 위험한 책에는 최대한 근접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작은 책상 앞의 붉은 의자는 그야말로 '기묘한 세상'이니까!

의자를 바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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