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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10. 2021

게으른 자의 변명

정유정


   한동안 장터를 찾아다녔다. 장이 열릴 때마다 내리 몇 번을 찾은 곳도 있다. 단골 천막이 보이면 마음부터 풀어진다. 처음 보는 채소나 과일이 보이면 그게 뭔지 물어본다. 이름, 갖가지 요리법, 피를 맑게 하고 눈을 환하게 한다는 정보들이 줄을 이어 따라 나온다. 동네 마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열매와 잎들이 많으니 그게 신기해서 이것도 저것도 집어 들고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려 애쓴다. 장터를 도는 중에는 얼마나 평화로운지 걱정거리나 밀린 일 따위는 저만치 물러나 있어서 가슴을 죄는 답답증도 사라진다. 올망졸망한 봉지들을 집안에 부려 놓고 나서야 저것들을 다 어찌할까 싶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시장에 가기만 하면 흥이 나니 자책도 후회도 소용이 없다. 크고 작은, 붉고 노란 사과를 앞에 두고 어이없어해 봤자 모두 내가 저지른 일이다. 그러고도 즐겁다. 장터에 다녀오는 날은 무엇이든 많다. 웃음도, 음식도, 일거리도. 좋다. 아니 좋았었다.


   문득 장 나들이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빵 굽기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먹여보는 것도, 바느질이나 뜨개질도 시들했다. 집 근처 마트에 가는 것도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나서는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식욕도 떨어지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속이 메스껍다. 열이 나고 목도 아픈 듯했지만 정작 어디가 아픈가 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다. 무엇을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이 함께 따라다녔다. 매사가 성에 차지 않았다. 아침이면 아침이라 즐겁고 비가 내리면 비가 와서 즐거웠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대기 시작했다.


   소소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쉬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주방이 낯설고 매일 해오던 일들이 생소해서 나는 다시 서툰 사람이 되었지만 그 상황이 이상하지도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안 해도 되는 일은 물론 해야 할 일도 가능하면 미루었다. 집안 일도, 외출할 일도, 누굴 만나는 일도 내가 먼저 만들지 않았다. 마냥 게으름을 부리면 나아질까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시도 때도 없이 불안했다.


   소설가 정유정은 [히말라야 환상방황]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막막했을 때 안나푸르나에 다녀온 이야기를 다. 살다 보면 벽에 부딪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몇 번쯤 맞닥뜨리기도 할 텐데 히말라야는커녕 며칠 집을 비우는 것도 어려운 형편인 나는 다소 비틀리고 자조적인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작가가 여행을 계획할 때, 현지에 도착할 때, 걸어 올라가기 시작할 때마다 나 역시 한 계단씩 올라서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맞지 않는 음식에 불편한 밤들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스키를 타듯 꿈틀거리는 문장들에 신이 났다. 히말라야의 영봉들을 눈에 담고 끝이 없는 계단을 오르고 낯선 마을에서 빈손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일들이야 내게는 분명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사실이 글의 유쾌함을 훼손하지 않았다.


   어느 곳보다 죽음과 가까이에서 나란히 걷는 일이 분명했다. 아름답지만 험난하고 발을 내딛지 않으면 조금도 나아갈 수 없고 멈추기라도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의 날들이 지나간다. 일행이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건 산을 넘겠다는 의지나 용기가 아니었다. 다음 쉬는 곳에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어떻게 변비를 해결할지 언제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욕실을 기대할 수 있을지 하는 것들, 그러니까 먹고 씻고 자는 일에 매여 있던 마음이었다. 이러다가 산을 넘고 나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이라도 나오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히말라야에 갈 가능성이란 거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남는다면 읽은 걸 후회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작가는 떠날 때의 자신과 돌아왔을 때의 자신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담담하게 쓴다. 자신을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고도 쓴다. 안나푸르나가 들려준 대답은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 살아있는 한 링을 떠나지 않겠다는, 스스로를 싸움닭이라고 부르는 작가 자신의 본성의 확인이었다.


   나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무기력 정도야 나를 바꾸지 않아도 떨쳐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밀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건 의무이기도 하고 갈망이기도 했다. 내가 공을 들인 일이 사실은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시렸다.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무수히 많은 도깨비들과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아무리 읽어도 밥이 되지 않는 책을 옆에 끼고 묶이지 않는 글을 쓰며 살 것이다. 책은 사람을 바꾸는 대신 정확히 보게 한다. 물론 떠나고 싶은 자신과 되고 싶은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우연히 만난 책에서 지름길이나 잠시 주저앉아 쉴 만한 나무 그루터기 같은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를 썰면서 손톱을 자르고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다가 손을 데이는 건 여전하다. 꽃씨를 모으고 행주를 삶으면서도 읽고 쓰는 일을 생각하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손톱을 부러뜨리고 화상을 입으면서 모아둔 문장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는 눈에 보이는 것 뒤로 들어오라는 열렬한 환영일지도 모른다. 순조로운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면 달의 뒷면에서 나도 평온할 것이다. 그러면 며칠에 한 번쯤은 하루를 마감하며 느긋하게 빈둥거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 버릴 일을 걱정하거나,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거나, 백신 예약을 앞당겨야 할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각자의 최선을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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