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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08. 2023

목련은 목련으로


  라디오에 꽃차를 덖는 이가 나왔다. 해마다 제일 먼저 만드는 차는 목련꽃차라고 했다. 목련꽃봉오리를 만지며 차를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방 구석에 잠자고 있을 목련꽃차가 생각났다. 좀처럼 열 일이 없는 서랍 안쪽에서 꽃차가 든 병을 발견할 때까지 주방을 뒤지느라 수선을 피웠다. 물이 끓는 동안 바싹 말라 딱딱해진 꽃들이 든 병을 열었다. 마른풀 냄새가 났다. 꽃 한 송이를 찻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찻물 속에서 목련 꽃잎이 다시 핀다. 오랫동안 갇혀있던 향기가 미미한 단내로 코끝을 간질인다. 재작년 봄 무렵 SNS에서 보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동영상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목련의 꽃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모습으로 시작됐다. 회갈색 꼬투리를 벗겨내자 미색의 꽃봉오리가 드러났고 그 끄트머리를 손바닥으로 비벼  꽃잎들을 벌어지게 한 뒤 꽃잎을 한 장씩 뒤로 젖혔다. 방금까지 솜털이 부스스하게 덮여 이게 꽃눈이 맞나 싶던 것이 순식간에 꽃이 되었다. 꽃송이를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누른다. 꽃잎이 다시 오므라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억지로 펼쳐진 꽃은 갓난아기의 손처럼 작았다. 꽃차를 덖는 이가 목련꽃차를 만드는 작업 중 가장 좋아하는 과정이라며 몇 번을 거듭 보여주는 동안 나는 멀미가 났다. 엎어진 꽃송이를 내리누르는 사람의 손바닥 아래에서 꽃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목련차가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미처 깨어나지도 못한 꽃눈의 꼬투리를 벗기고 오므려진 꽃잎을 벌려 만든 꽃이라니!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충격적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두어 달이 지난 즈음 지인에게서 한지로 곱게 포장한 꾸러미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포장을 풀던 나는 그만 울고 싶었다. 유리병 속에 들어있던 게 바로 목련꽃차였기 때문이다. 아기의 손만큼 작은 목련꽃은 완벽했다. 나는 그걸 묵은 허브나 과자틀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살림을 모아두는 서랍 깊숙이 넣어버렸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사실 목련차를 알게 된 건 그보다 몇 년 전이었다. 찻물 속에서 다시 살아난 꽃잎에서 번져 나오는 맑은 기운에 매료된 나는 자리가 파한 후 꽃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목련차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손에 넣었다. 목련꽃은 우려낸 후에도 아이들 주먹 정도의 크기였다. 집 마당에서 피는 목련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이렇게 작은 목련꽃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궁금했다. 그 차를 마실 때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목련도 있구나 감탄했다. 꽃과 향기만 즐기느라 찻잔 속의 목련꽃이 때를 거스르고 얻은 것이란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세상 어딘가에는 갓난아기 주먹만큼 작은 꽃이 피는 목련이 모여 사는 곳이 있을 테니 언젠가 꽃이 피는 계절에 찾아가리라 염두에 두기까지 했으니 나는 얼마나 둔하고 무지했던 것일까?


2023년 봄의 목련


  어릴 때 살던 집에 커다란 목련이 있었다. 어린 나는 나무 꼭대기가 어디까지 닿을까 궁금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봄이면 하얀 목련이 나뭇가지 전체에 촘촘하게 피어나 멀리서 보면 마치 성장을 한 여인이 흰 옷자락으로 집과 뜰을 감싸 안은 것처럼 보였다. 저녁이면 목련꽃 향기가 뜰 안에 달콤하고 서늘하게 내려앉았고 나는 저녁을 먹자마자 뜰로 달려 나갔다. 어스름하니 이른 봄밤에 목련 아래를 서성이거나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꽃향기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게 저녁 뒷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그만 들어가라고 성화를 하면 나는 향기로 가득한 마당을 남겨두고 불 켜진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밤에는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져서 마당에서 묻혀 들여온 봄꽃의 향기로 뒤덮인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듯하여 자고 일어나면 하룻밤 사이에 어른이 되어있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목련 향기의 찬 기운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꽃향기니까 달콤한 건 알겠는데 왜 차가울까? 향기를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면 목련의 그것은 손이 시릴지도 몰라. 목련꽃 향기는 겨울 아침 쌓인 눈밭을 연상시켰다.


  어느 날 내가 외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목련꽃에서는 왜 차가운 냄새가 나요?”

“아직 잎이 없으니까 그러지.”


  외할머니의 설명은 짧았으나 강했다. 목련꽃 향기를 맡을 때마다 제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새치기를 한 말썽꾸러기가 떠올랐다. 꽃이 자기 멋대로 피어버린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건 재미가 없었다. 무엇이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좋았던 시기였다. 나날이 지루했고 시시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이름을 다시 붙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물들은 이미 이름을 가졌으며 모두에게는 제 역할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아이였다. 그대로 있으면 친구들의 언니 오빠처럼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말 것 같아 불안했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될지는 알아내지 못한 채로 해마다 봄이 오고 갔다. 목련이 점점 좋아졌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 눈의 차가움을 닮은 향기, 미련 없이 온몸을 던져버리는 무심함이 좋았다. 유난을 떨어도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는 거라고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었을 때나,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속을 알 수 없어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말이 돈다는 걸 옆자리 친구가 소곤거리며 알려 주었을 때는 오히려 키가 한 뼘 쓱 자란 것처럼 으쓱했다. 그건 뭐랄까 조금씩 목련을 닮는 느낌이었다. 내가 되는 건 남과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을 지나는 동안 목련은 해마다 꽃이 피고 졌다.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 가지가 무성해지면 목련도 다른 나무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즈음 나도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나는 새잎이 돋기 전에 꽃송이가 먼저 벌어지는 나무들이 목련 말고도 여럿 있다는 걸 안다.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절동안 무수한 계절을 지나온 외할머니에게 목련은 이런저런 나무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다만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딱 그만큼만 다른 나무였던 것이다. 목련은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원래 그런 나무였다는 걸,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목련은 목련으로, 나는 나로 있는 것. 사는 건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것을 배워가는 것이로구나 싶다. 온기를 잃은 찻잔 너머로 벌써 꽃눈을 만들며 봄을 준비하는  목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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