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요?”
“내가 배가 고파서 그러요.”
우리가 서있던 곳은 공교롭게도 빵집 앞이었다. 나는 꽃무늬 시폰 블라우스를 여러 장 겹쳐 입은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빵집 문을 밀고 들어서서 빵을 골라 담았다. 어느새 가게 안으로 들어와 내 곁에 와 있던 할머니에게 빵 봉지를 건넸다. 할머니는 봉지를 열어 안을 살피더니 빵이 많다고 하면서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남으면 나중에 또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 나오는 내 귓가에 할머니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난 이 빵은 싫어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할머니는 빵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겠다고 작정한 날이었다. 오랫동안 벼르다가 마음먹고 나온 소풍이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진열대 앞으로 다가가던 나는 결연히 걸음을 멈추고는 재촉하듯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다른 빵으로 바꾸고 싶으시면 여기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가능한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할머니를 그대로 놔두고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빵집을 나왔다. 유리문을 밀고 나오면서 흘깃 뒤돌아보니 온갖 꽃무늬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싼 할머니가 진열대 앞에서 빵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에 들린 종이 가방, 방금 전까지 보지 못했던 쇼핑백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새것임이 분명해 보일 만큼 산뜻했다. 할머니의 화려한 꽃무늬 옷들을 배경으로 쇼핑백들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듯 생경했다. 어쩐지 그 종이가방 속에도 빵들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며 서점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의 계획대로 서점에도 들렀고 카페에서 쉬기도 했으나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니 그날 이후로도 불쑥불쑥 꽃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날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이른 봄에 여름 블라우스를 몇 장씩 껴입고 빵집 앞에 서서 지나가는 이들을 눈여겨보았을 할머니와 빵집 안으로 들어간 내가 다음 순간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모습을 거듭해서 돌아보았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사람마다 다른 건 당연했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상했을까? 할머니를 놔두고 서둘러 빵집을 나와 버렸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빵을 고를 때 내가 가졌던 마음이 빵을 바꿔달라는 말로 사라졌던 순간, 생각은 항상 거기서 멈췄다. 아무리 여러 번 돌아가도 길 가는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빵을 구걸했던 할머니의‘형편’과 빵 봉지를 받아 들고 고마워하는 대신 교환을 요구했던 할머니의‘당당함’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 굶주림을 호소하는 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이 내게는 그‘부자연스러움’의 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