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마주 앉아서 찻잔을 들어 올리는데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손목이 왜 그래?”
놀랄 만도 하다. 손목 안쪽에 커다랗게 붉은 멍이 들었던 것이다. 며칠 전 벌에 쏘인 흔적이다. 잔뜩 성난 피부가 붉기까지 해서 마치 손목에 지도가 한 장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집에서 나오기 전에 밴드라도 한 장 붙일까 하다가 부위가 너무 넓어서 그대로 나왔는데 만나자마자 당장 알아챈 것이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비가 계속 왔잖아. 마당에 풀이 마구잡이로 자라서 꼭 나간 집 같았다니까. 엊그젠가 비가 그치길래 바로 장화 신고 모자 쓰고 나갔지.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땅은 부드럽더라고. 잡아당기면 뿌리까지 순하게 따라 나오더라. 그거 알아? 플 뽑는 재미, 엉킨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것처럼 뽑혀 나온 뿌리를 탈탈 털어 잡초바구니에 던져 넣는 재미 말이야. 모른다고? 그렇지. 네가 알 리가 없지. 아무튼 그렇게 풀을 뽑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서 벌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앵하고 들리는 거야.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 얼마나 놀랬던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양팔을 마구 휘둘렀지. 그러다가 그 벌이 내 손등에 맞고 튕겨나갔는데 화가 났던지 금방 다시 돌아오더라고. 얼마나 재빠른지 피할 틈도 없었어.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더라. 벌에 쏘인 자리에 피가 맺히더니 이렇게 됐어. 용감한 벌이었나 봐.
병원에는 다녀왔느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는데 붉게 부푼 것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가지 않았다는 내게 지금이라도 가는 게 어떻겠느냐 묻는다. 하루이틀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가보겠노라 했다. 헤어질 때 친구는 다시 한번 병원 얘기를 꺼냈다.
“하긴 너 그때 손등에 화상 입었을 때도 병원에 안 갔지. 그 흉터 오래갔잖아. 그러니 병원에 꼭 가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목 안쪽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벌에 쏘였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나는 괜찮은 것 같았다. 통증은 가라앉았고 붓기도 빠졌지만 피부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채로 선명한 붉은 멍으로 덮여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이미 한 번 겪은 적이 있다고, 마치 주문을 외듯이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왼쪽 손등 어디에서도 화상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손목의 멍도 곧 없어질 것이었다.
난롯가에 둘러앉아 한창 말을 하던 중이었다. 이야기에 흥이 오른 나머지 손동작이 커져서 달아오른 난로에 손등을 부딪고 말았다. 상처가 제법 크고 깊었다. 친구가 기억하는 대로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버텼다. 어찌어찌 아문 뒤에도 흉터가 남았다. 한동안 화상 흉터에 놀라는 이들에게 나는 훗날 나를 찾고 싶으면 왼쪽 손등에 서핑보드처럼 생긴 흉터가 있는 여자를 찾으라며 농을 하곤 했다. 그때는 한창 이산가족 찾기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헤어진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억했는데 그중에 상처나 흉터도 있었다. 아마도 흉터가 귀하게 여겨진 유일한 때가 아니었을까? 내가 찾는 그 사람만 갖고 있는 특별한 것, 설사 그것이 한 때의 흉터일지라도 기대어 찾을 수만 있다면 꺼릴 이유는 없다. 기억이 사랑의 한 형태라면 흉터를 기억하는 것도 사랑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서 친구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멍이 옮는다는 거 알아? 그것도 보이지 않는 멍만. 멍을 옮긴 사람도 멍이 옮은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네. 마치 전염병처럼. 옆 사람의 멍이 옮으면 그동안 숨어있던 멍이 새로 옮은 멍과 합쳐져서 더 크고 깊은 멍이 된다나 봐. 멍이 점점 커져서 비슷한 멍을 갖게 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멍이 보이지 않아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야. 왜 누가 나를 제대로 봐주기만 해도 힘이 생기잖아. 멍도 그렇다나 봐. 서로를 알아본, 멍든 사람들이 차츰 모여들게 되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지고, 점점 더 아파져 오고 그러다가 그 아픔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지면 펑! 하고 폭발한다는 거야. 멍이 옮는 일은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아프다고 해. 상처 난 곳에 소금이 닿은 적 있어? 쓰라림을 넘어 저릿저릿하잖아. 보이는 멍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지만 모르는 사이 옮은 멍은 터뜨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지. 길을 지나다가 유난히 큰 목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멍이 든 사람인가 보다 하게 돼. 그 사람의 멍이 내게도 옮아오기를 바라기도 해. 조금이라도 빨리 터질 수 있도록 말이야. 하긴 모르지. 내 안에도 어떤 멍이 자라고 있을지.
터널 안에서 조금 밀리는 듯했던 버스가 시원하게 달렸다. 한남대교 남쪽 고속도로 램프 조금 못 미친 곳에 몇 년째 변함없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는 오늘도 몸을 기울여 현수막을 바라본다. 단발머리에 스웨터를 입은 여자와 ‘실종된 ㅇㅇㅇ 좀 찾아주세요’라는 문장이 나란하다. 햇볕에 바라 흐려졌던 글자들이 선명한 걸 보니 최근에 바꾸어 단 모양이다. 수십 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는 부모의 가슴에는 어떤 모양의 멍이 들어앉아 있으려나. 현수막을 바꾸어 달 때마다 잊고 있던 멍이 건드려질 것이다. 상처에 소금이 닿은 것처럼. 서울을 오갈 때마다 봐오던 것이라 무심하게 지나쳤던 글자들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멍든 채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외면하고 쉬쉬하는 동안 멍은 옮고 또 옮아 우리들 머리 위로 옅은 구름처럼 퍼져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보이지 않는 멍을 부여잡았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오늘따라 가슴이 뻐근한 걸 보니 내 속에서도 멍이 자라고 있나 보다. 소나기라도 시원하게 한 줄기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