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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01. 2023

꽃을 입은 할머니

                            

   여름이 서둘러 왔다. 봄꽃이 스러지기 전인데 여름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민들레 옆에서 망초가 피고, 새벽안개처럼 푸른 물망초 옆에서 꽃양귀비가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든다. 나는 혼란스럽지만 정작 꽃들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바람이 불어오면 사이좋게 휘어졌다가 힘을 모아 함께 올라와 태평스럽게 건들거린다. 나른한 오후 꽃그늘 아래에서 한아름 꽃 같았던 한 할머니를 떠올린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계단만 내려가면 서점이었다. 우체국은 뜻밖에 한산해서 등기우편을 보내는 일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하루가 온전히 남았으므로 좋아하는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발견하면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서 읽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도로를 건너는 데 갑자기 눈앞에 한아름 꽃 무더기가 어른거렸다. 현란한 꽃무늬의 고무줄 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꽃무늬 스카프를 둘러 쓴 할머니였다.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할머니가 내게로 다가오자 차츰 온갖 꽃무늬로도 감추지 못한 남루함이 드러났다. 할머니는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몇 장 겹쳐 입고 머리까지 스카프로 감싼 차림이었으나 봄날의 변덕스러운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빵 한 개를 청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빵이요?”

  “내가 배가 고파서 그러요.”      

    

  우리가 서있던 곳은 공교롭게도 빵집 앞이었다. 나는 꽃무늬 시폰 블라우스를 여러 장 겹쳐 입은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빵집 문을 밀고 들어서서 빵을 골라 담았다. 어느새 가게 안으로 들어와 내 곁에 와 있던 할머니에게 빵 봉지를 건넸다. 할머니는 봉지를 열어 안을 살피더니 빵이 많다고 하면서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남으면 나중에 또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 나오는 내 귓가에 할머니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난 이 빵은 싫어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할머니는 빵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겠다고 작정한 날이었다. 오랫동안 벼르다가 마음먹고 나온 소풍이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진열대 앞으로 다가가던 나는 결연히 걸음을 멈추고는 재촉하듯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다른 빵으로 바꾸고 싶으시면 여기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가능한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할머니를 그대로 놔두고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빵집을 나왔다. 유리문을 밀고 나오면서 흘깃 뒤돌아보니 온갖 꽃무늬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싼 할머니가 진열대 앞에서 빵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에 들린 종이 가방, 방금 전까지 보지 못했던 쇼핑백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새것임이 분명해 보일 만큼 산뜻했다. 할머니의 화려한 꽃무늬 옷들을 배경으로 쇼핑백들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듯 생경했다. 어쩐지 그 종이가방 속에도 빵들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며 서점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의 계획대로 서점에도 들렀고 카페에서 쉬기도 했으나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니 그날 이후로도 불쑥불쑥 꽃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날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이른 봄에 여름 블라우스를 몇 장씩 껴입고 빵집 앞에 서서 지나가는 이들을 눈여겨보았을 할머니와 빵집 안으로 들어간 내가 다음 순간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모습을 거듭해서 돌아보았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사람마다 다른 건 당연했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상했을까? 할머니를 놔두고 서둘러 빵집을 나와 버렸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빵을 고를 때 내가 가졌던 마음이 빵을 바꿔달라는 말로 사라졌던 순간, 생각은 항상 거기서 멈췄다. 아무리 여러 번 돌아가도 길 가는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빵을 구걸했던 할머니의‘형편’과 빵 봉지를 받아 들고 고마워하는 대신 교환을 요구했던 할머니의‘당당함’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 굶주림을 호소하는 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이 내게는 그‘부자연스러움’의 표상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봄이 지나갔다. 계절이 섞여 소란한 마당에서 잎과 줄기가 얽힌 화단을 헤집고 풀을 뽑으며 불편했던 마음의 정체를 알았다. 이기심이었다. 혹시 내 하루가 얼룩질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서둘러서 빵을 집어 들었던 것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그 할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고 각자의 세계에 상대방을 들이지 않을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했음에 틀림없었다. 작약 그늘에서 자라는 들깨를 솎아내고 안개꽃과 얽힌 별꽃을 뽑으면서 그동안 스스로 엮은 어설픈 문과 담장 안에서 머물렀던 것을 깨달았다. 그곳이 얼마나 비좁고 답답했는지도.

 

 꽃들은 제자리가 없다. 봄에 싹을 틔운 자리가 그 해의 살 곳이다. 그늘이라 춥고 좁아서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기대어 혹은 줄기를 감으며 더 높이 올라간다. 가지를 뻗다가 막히면 몸을 구부려 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위의 식물들이 연약한 줄기를 보호하는 동안 느릿느릿 햇살이 닿는 곳에 이르러 기어이 꽃을 피운다. 그리하여 수선화와 민트가 한 곳에서 자라고 물망초와 은방울꽃이 뒤섞여 산다. 어우러질 때 꽃밭은 가장 아름답다. 함께 사는 법, 꽃들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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