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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09. 2023

거울이 필요했던 남자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는 1878년에 결혼했다. 당시 줄리아 덕워스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세 아이(스텔라, 조지, 제럴드)가 있었고 레슬리 스티븐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로라)가 있었다. 46세로 줄리아보다 열다섯 살 연상이었던 레슬리 스티븐은 성공한 문필가로 당대의 지성인들과 교류했으며 산악 등반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던 활달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성마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성공한 문필가였으나 자신이 진짜 천재는 아니라는 자의식 때문에 늘 칭찬에 목말라했다. 줄리아는 살림과 양육과 자원봉사로 시간에 쫓겼으나 남편을 달래고 격려하고 영감을 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집안의 천사'였다.


    버지니아가 13살 때 줄리아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일과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큰딸 스텔라의 몫이 되었다. 스텔라는 안주인 역할과 아내를 잃은 남자의 슬픔을 달래는 일을  맡게 되었지만 줄리아의 딸답게 불평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 2 년 후에 결혼한 스텔라는 아버지의 집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마련했으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에 걸려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레슬리를 돌보는 일은 바네사와 버지니아의 몫이 되었다. 바네사는 18 살, 버지니아는 15 살이었다. 1904년에 레슬리가 사망할 때까지 7 년 동안 자매는 그의 '폭발적인 성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의 자신을 과민하고 겁 많은 어린 원숭이로, 아버지는 시무룩하고 위험한 사자로 회고한다. 나이가 들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았던 레슬리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라고 여겼다. 귀먹은 노인의 자기 연민과 자기 본위가 십 대의 딸들을 얼마나 숨 막히게 만들었는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훗날 바네사는 자기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일종의 구원이었다고 털어놓았고 버지니아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6년 11월 28일에 쓴 일기다.


아버지 생신. 살아 계셨으면 96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로 96세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96세가 될 수 있었지만, 고맙게도 그렇게 되진 않았다. 그랬더라면 그의 인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책도 없었을 터,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
                                                                          1926.11.28 일기

   

   버지니아 울프는 죽기 일 년 전에 쓴 회고록 [지난날의 스케치]에서 아버지를 묘사한다. 소설 [등대로]의 램지 부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버지니아가 자신을 사로잡았던 부모의 기억에서 벗어났던 건 바로 글로 쓰는 것이었다.  버지니아가 ‘글로 써서 지울 때까지 직접 하지 못한 온갖 말들을 중얼거렸다’고 고백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도 소리 내서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얼마나  깊이 들어앉아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버지니아가 소환한 건  바네사의 수요일과 가계부에 얽힌 기억이었다.  바네사와 버지니아가 집안일을 물려받았을 때 레슬리는 까다롭고 억압적이었다. 난폭했고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져있던 사람이었다. 수요일이 되면 바네사와 버지니아는 일주일치 가계부를 레슬리에게 가져갔다. 식탁 위의 가계부를 훑어보던 레슬리는 주먹으로 가계부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난 파산했어.”


   레슬리가 가슴을 치면서 자기 연민과 경악, 분노를 표출하는 동안 바네사는 입을 다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레슬리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퍼붓다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펜을 잡고 보란 듯이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썼다. 가계부를 밀어내고 나면 의자에 파묻혀 고개를 가슴에 떨구고 진풍경을 만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의 처신이 야만적이었던 이유로 의존적이어서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해 주는 여자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들었다. 레슬리도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남자, 거울이 필요한 남자였다. 끝없이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란 신념을 유지하는 남자들 중의 하나였다. 거울 역할을 하던 줄리아와 스텔라가 사라지자 당황한 것이었다.      

  바네사가 노예이자 천사인 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격분했고, 자신에게 필요했던 자기 연민의 흐름이 가로막히자 자기도 알지 못했던 본능이 끓어올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본능이었다. “네 생각에는 아버지가……”격렬한 분노를 터드린 후에 한 번은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어리석어 보이겠지.”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지.
                                                                             [지난날의 스케치] 중에서     


   바네사는 나중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지만 버지니아는 달랐다. 버지니아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분노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이 괴로움은 훗날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양가감정”이라는 것이 흔한 현상임을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극복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과거로 돌아갔다. 고약한 수요일의 주간 가계부를 떠올릴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작고 푸른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둘이 서로 통한다고 느끼게 해 주었을 때의 기쁨도 기억했다. 아버지의 분노를 시대에 갇혔던 천재 지식인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단순하고 진실하고 열정적이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면모를 묘사하는 문장들에서는 딸로서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904년, 2년 간의 암투병 끝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버지니아는 심각한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자살을 시도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필요로 했을 때 자기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자책에 빠졌다. 엄마와 언니가 ‘집안의 천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걸 봐왔던 버지니아로서는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레슬리가 사망한 후 버지니아는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했다. 하이드파크 게이트에서 고든 스퀘어로 이사를 하는 일을 바네사가 혼자 감당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1939년부터 1940년 사이에 쓴 회고록 [지난날의 스케치]에는 레슬리 스티븐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되풀이되는데 그중 마지막은 서재에서 파이프를 입에 물고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다.


  아버지만큼 관습에 무관심한 사람도 없었다. 그처럼 속물이 아닌 사람도 없었다. 지성을 그토록 존중한 사람도 없었다. (중략) 아버지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서히 이마의 주름살을 피며 어떤 결론에 이르고는 내가 들어선 것을 알아차리고 아주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곤 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서가로 걸어가서 책을 꽂고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묻곤 했다.
                                                                                     [지난날의 스케치] 중에서     


    삶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말했듯이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당시에 결코 깨닫지 못하던 감정을 나중에야 속속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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