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문숙 Oct 07. 2023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고, 작가도 아니고

버지니아울프의 첫 장편소설 [출항]

    

   레이철은 24살 미혼이다. 어머니는 레이철이 열한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해상 무역업자이자 선주다. 레이철은 두 고모와 함께 리치먼드에서 살다가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항해 중이다. 그 배에 휴가를 떠나는 외삼촌 부부가 탄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레이철과 외숙모인 헬렌의 첫 만남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와 같이 불안하고 서먹해서 캠브리지 동창인 아버지와 외삼촌, 그들의 친구인 페퍼 씨가 옛 친구들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헬렌이 레이철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레이철이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걸 알게 된 때부터이다. 헬렌은 사랑했던 친구의 딸이자 조카인 레이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바로 이 ‘문제가 있는’ 혹은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 속에 놓인 레이철의 혼란과 그걸 바라보는 헬렌의 감정이 마치  일렁이는 파도처럼 배 밑바닥에서부터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흔들리는 선실에서 멀미를 겪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구속과 억압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관계를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한쪽의 인내와 절제가 다른 쪽의 착각과 오만을 어느 정도까지 부풀릴 수 있는지가 버지니아 울프가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오래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식사 후 거칠고 축축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갑판을 걷던 헬렌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디 들어가 앉을자리가 없느냐고 묻자 레이철이 어딘가로 통하는 문을 열면서 말한다.


   “방이라기보다는 층계참 같은 곳이에요.”


   짧아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항해하는 동안 인물들은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 먹고 자며 대화를 나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곳이 고작 층계참이다.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방 아닌 방이다. 방 자체가 레이철인 셈이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배 ‘에우프로시네’호는 레이철의 삶이고.


   레이철이 침실로 사용하는 방도 마찬가지다. 레이철이 자기 방이라고 부르는 방은 사실 배에 사람들이 가득 찰 때 가족용 거실로 사용하거나 젊은이들에게 갑판을 내준 노부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레이철이 그 방을 자신의 방이라고 여긴 건 피아노와 많은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다. 레이철은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좋아했다. 레이철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건 그런 때였다. 피아노 소리로 장막을 치고 정작 자신은 다른 세계를 부유했으나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의심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가끔 화가 났지만 그 원인을 파헤칠 용기도 정열도 부족했고 게으르기까지 했다. 헬렌은 그런 레이철을 가여워하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하다가 마침내 레이철의 삶에 개입하기로 한다. 레이철에게 배에서 함께 내리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동시에 레이철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는다.


   헬렌과 빈레이스 씨(레이철의 아버지) 둘 다 레이철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의도는 달랐다. 헬렌이 생각한 건 그 나이의 여자들에게 필요한, 독립된(헬렌이 생각하기에)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필요한 교육이고,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은 집안의 안주인이 되기에 적합한 교육이었다. 의회에 진출할 욕심이 있었던 빈레이스씨는 적당한 때가 되면 딸이 일정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를테면 접대, 만찬, 이브닝 파티 등에서 죽은 아내 대신 딸이 자신을 위해 <집안의 천사> 노릇을 해주길 바랐다. 레이철을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빼내야겠다는 헬렌의 결심이 더 굳어지는 장면이다.     


앰브로우즈 부인(헬렌)은 그녀의 조카에게 함께 머무는 대가로 집안의 다른 장소들과 차단된 방을 줄 것을 약속했다. 이 방은 널찍한 자기 혼자만의 공간으로, 레이철은 성소이며 요새인 그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세상을 무시하며 살 수 있었다. 앰브로우즈 부인은 스물넷의 나이에는 방은 방이라기보다는 세상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출항] 중에서

   

   레이철은 새로 갖게 된 방에서 책을 읽는다. 아버지와 고모가 전부였던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세계로 건너가는 참이다. 아직은 그 방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파도가 칠 때마다 함께 출렁이곤 했던 층계참이나 가족용 거실 같은 방에서 의심도 하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았던 레이철은 이제 집안의 다른 장소들과 차단된 방에서 좋아하는 피아노와 책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그 방에서 자기가 얼마나 무지한 지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서, 남자들에 대해서. 여자로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일들의 지난함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자물쇠로 채울 수 있는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의 수입 외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에 레이철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여자들의 방은 레이철이 헬렌을 안내했던 ‘층계참’과 닮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길목,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지나가는 중간에 있는 공간, 누구든 언제나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는 방, 그 안에서 우리가 뭘 하고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진작에 헬렌처럼 자물쇠를 채울 수 없는 방은 제대로 된 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외숙모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출항]을 열 번 넘게 고쳐 쓰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가장 고민한 건 자신을 작품 속에 얼마나 노출시킬 것인가였다. 레이철은 아직 내세울 만한 작품을 갖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던 시기에 “스물아홉인데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고, 미친 데다가, 작가도 아니고.”라며 탄식하던 작가가 결혼을 계기로 사회적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과정을 투영한 인물이다. 여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을 고쳐 쓸 때마다 버지니아 울프 자신도 정신적으로 쇠약해져서 요양원에 입원할 정도로 몰두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안개에 갇힌 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잠시 후 마주칠 낯선 풍경에 설레고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는 기쁨을 만끽하려면 역시 ‘자기만의 방’에서 읽는 것이 좋을 듯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방은 '고통 없이 순한 잠 며칠'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