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 걷는 걸음마

그냥 해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by 유영

물.

부드럽게 만져지지만,

움켜쥘 수도 없지만,

저어 보면 느낄 수 있는 강력한 힘.


물속에서는 저항이 크다.


수영장에 '걷기 레인'이 있는 것도 납득이 간다.

물속에서는 '걷기만 해도' 운동이 된다.

온갖 저항을 이겨내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직도 가끔 선생님이 한 바퀴 걷고 오라고 할 때면(짧게 주어지는 휴식시간이다.)

통통 튀거나 팔을 저으며 가지 않으면 힘들다.

오리발 데이에는 더욱 곤욕스럽다.

나는 앞으로 걷지 못하는 슬픈 꽃게가 되어 옆으로 걷기밖에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쉬운 일이 없다.

걷는 것조차 쉽지 않다.





헤엄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차기가 기본이다.

그러니까, 물속에서는 발차기가 지상에서의 걸음과 같다.


처음엔 발차기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웬걸.

마구 일으키는 물보라가 민망하게 제자리다.

허벅지는 터질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얼마 가지도 못했다.


원래 기본을 잘 해내는 게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말 민망하다. 하하...


같은 수준에서는 힘의 세기로 속도 및 기록이 판가름 나지만,

부드럽게 유영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과도한 힘은 불필요하다.

(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초보의 입장은 이렇다.

열심히 차는데(정말 열심히 찬다),

뒤에서 사람이 쫓아오고(압박감이 느껴진다),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 이 악물고 차게 되고(뒤처지면 힘껏 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닌가),

결국 침몰한다.


멋지게 수영하는 나를 상상하며 시작했지만,

팔 돌리기의 'ㅍ' 까지도 가지 못한 채

거의 한 달을 발차기만 했다.


데크 잡고 발차기

킥판 뒷부분 잡고 음파 하며 발차기


그 이후에도 다채로운 발차기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킥판 앞머리 잡고 헤드업 발차기

풀부이 잡고 발차기

아무것도 안 잡고 팔 뻗고 발차기

....


최근에 했던 죽음의 발차기는

아쿠아봉을 바닥으로 누르며 하는 발차기였다.

이제는 쭉쭉 나가는 발차기에 자신이 꽤 있었음에도

정말 안 나가서 죽는 줄 알았다.

나의 우주는 아무래도 내가 교만해지는 것을 가만 보지 못하고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직접 경험하는 장을 마련해 준 것이 분명하다.


여기까지 적은 발차기는 기본 자유형 발차기이고

배영, 평영, 접영 모두 발차기가 다르다.

물속에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여담이지만,

나의 평영 발차기는 이제야(3년 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다시 태어나는 데에는 끈기가 필요하다.






보통 앞으로 못 가는 데에는 공통적인 이유들이 있다.

당연하게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차는 방법의 정반대로 하기 때문이다.


다리를 무조건 쭉 펴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온몸을 쭉 펴야 한다.)

발 끝까지 펴야 한다.

발목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물을 뒤로 보내는 느낌으로 차야 한다.

무게 중심을 앞에 두어야 다리가 뜬다.

허벅지부터 힘주기 시작해서 발등으로 물을 눌러주어야 한다.

리듬감도 필요하다.


하지만 처음엔 이게 어렵다.

몸을 쭉 피는 것부터가 어렵다. 무섭기 때문이다. 물이 아직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목도 무서우니까 펴지 못한다.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도 자꾸 하체로 간다.

의욕은 앞서기에 수면만 빠르고 힘차게 때린다.


올바른 자세와 편안한 마음가짐,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지,

힘을 빼야 할 곳과 주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무작정 찬다고 나아가지 못할 때는 멈춰 서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갈 때의 기쁨.


삼십 대 중반에 다시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나에게

이 한 걸음 한 걸음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소중한 발자국이 되었다.



우리는 지상에서도

공기의 저항을 이겨내 서있고, 걷고 있다.

그냥 해내지는 일은 없고,

쉽게 되는 일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오늘도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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