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그 명함 너머의 밤
그림자 끝자락마저 놓칠까
정신없이 일을 쫓아다니던,
끝을 생각할 겨를 없던 시간이
눈이 녹고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사이
뜨고 지는 해와 함께 지나갔다.
재촉하던 걸음도 어느새 빨라져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나는 제법 일과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시간만큼 소중한 게 없어서,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우리를 돌볼 수가 있는 것이다.
거울 속 내 눈앞은 흐렸고,
"요즘 뭐 해?"
아무렇지 않은 인사 같은 질문이
내 마음에 꽂혀 들어왔을 때,
출근과 퇴근으로만 채워진 삶이
문득 아파왔다.
직업 외에 나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누워서 허무를 온몸으로 맞다
벌떡 일어났다.
피아노를 다시 해야겠어.
그 길로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피아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이 먹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미 나는 너무나도 커버렸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 ㅡ
중요한 건
빠르게,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걸.
셈과 여림의 조절,
그리고 호흡을 배웠다.
내게 단어가 하나 추가되었다.
버티고 버텼는데,
결국 체력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다.
더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우연히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배워보는 운동이다.
둔한 운동신경에 자신이 없었는데,
오히려 수영은 내게
나를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또 하나의 별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음악과 물은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는다.
나는 그 안에서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했든,
어떤 실수를 했든,
나를 안아주는 단단한 하늘이 있다.
내쉰 숨을 청량한 공기로 돌려보내주는 하늘.
여전히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을 향하는
출근길 인파 중 한 명이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반짝이는 별들이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