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걸까?

자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래

by 유영

"좋은 게 좋은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불필요한 갈등은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할 뿐.
난 지금도 둥근 게 좋아.

하지만
좋은 게 전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둥글어지기 위해 나를 깎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나 나를 떠올리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어른인 줄 알았지만
아직 한참 미숙했던 시절,
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햇병아리 같던 때였다.

이전과 다르게,
나이대와 직급 등 스펙트럼이 넓어진 동료들 사이에서
호수 위 백조처럼
물 밑에서는 처절하게 발을 휘젓고 있었지만,
책상 위에서 만큼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여러 명이 자신이 담당한 부분을 끝내야
내가 그다음 단계에서 내 일을 할 수 있는 업무를 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모든 마감일은 지켜지지 않고,
100% 완벽하게 완료되지 않는다.
그날도 엄마뻘의 동료분께 메신저를 웃으며 보냈다.

"기한이 지나셨네요~ 오늘 안에 꼭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전화가 왔다.
"미안한데, 내가 이거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 와서 봐줄 수 있어요?"

의아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일하셨는데,
모를 리 없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기에.

어쨌든 나는 달려갔고,
하나하나 정성껏 버튼 누르는 법을 알려드렸다.




한 번이 어렵지,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네 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친절의 인내가 뚝! 하고 끊어져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나의 직속상사가 갑작스러운 건강상 문제로
몇 주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내가 쓸 우산이 없어진 걸 알자마자
'사람 좋은 웃음' 뒤에 숨겨져 있던
타인의 민낯이 장마처럼 쏟아졌다.

업무 핑퐁을 떠나서,
인간적인 충격을 받았다.

당신을 위해 내 인내를 고이 접고 접어
시간과 노력을 내어드렸는데,
돌아오는 건 비바람이라니.

그 이후로
물러터진, 레벨 1 내복 차림의 나는
한 겹 갑옷을 주워 입고 레벨업을 했다.

정확히 '좋은 사람'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과 같은 뜻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게도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나만 고생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후임자, 우리 팀... 대대로
짐을 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를 따라가다
일론 머스크가 했다는 말이 눈에 박혔다.

"It's a real weakness to want to be liked. I do not have that."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진짜 약점이다. 나는 그런 마음이 없다.)

남들에게 잘 숨겨온 뱃살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레벨 1이 2가 된 것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나는 여전히 물렁한 사람일 것이고,
누군가는 예전보다 차갑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조금 편해졌다.
나에게는 원칙이 생겼고,
그 선 안에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해줄 수 없는 것'을 골라내는
시선의 해상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용기를 조금 내어,
처음으로 정중한 거절을 건네보았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던 거다.

미움받기 싫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진짜 '내 사람'들에게 집중할 에너지가 생겼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괜찮은 사람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