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사실상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코드다
『킨』 kin은 ‘친척’, ‘동일 종족’이란 뜻이고 원제 kindred는 ‘혈족’이라는 뜻이다.
킨이라는 한국식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skin(피부)였다.
인종의 구별을 색으로 나누던 시대. 스킨의 색이 곧 인종이던 시대가 있었다. 백인이나 흑인, 홍인, 황인... 잘 구워진 빵 색깔처럼 사람을 피부색에 따라 구분하던 야만의 시대.
피부색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태양빛의 강도에 따라 멜라닌 색소 양이 다르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새하얀 피부로 산다면 아마도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100% 일 것이다. 피부는 각자 살아가는 환경에서 생존에 적합하게 진화된 것이다. 한때 크레파스에 ‘살색’이라는 색도 있었다. ‘살구색’으로 명칭이 바뀐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 태어날 때부터 나는 검은색 >
태어날 때부터 나는 검은색
자라서도 검은색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무서울 때도 검은색
아플 때도 검은색
죽을 때도 여전히 검은색이랍니다
그런데 백인들은요
태어날 때는 분홍색이잖아요
자라서는 흰색
태양 아래 있으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무서울 때는 노란색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죽을 때는 회색이죠
이래도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할래요?
- 어느 아프리카 어린이 - <원제는 검은 피부, 투명한 눈으로 되어있음>
이 시를 쓴 어린이의 견해대로 진짜 유색 인종은 ‘백인’들이다. 시시각각 피부색이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검은 피부 사람들은 어느 때나 피부색의 변화가 별로 없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검은색 /자라서도 검은색/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무서울 때도 검은색/ 아플 때도 검은색 /죽을 때도 여전히 검은색이다.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개인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 태생적인 것.... 피부 껍질의 색일 뿐..... 환경에 맞게 진화된 흔적일 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서 구두닦이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 난독증에 시달렸지만 책과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이야기 창작을 즐기던 버틀러는 열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대학과 워크숍을 거치며 작가의 길로 성큼 다가섰다. 흑인 여성 작가로서 인종과 젠더 문제를 작품에 완벽하게 녹여낸 그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SF계에서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었다.
수상 : 1985년 휴고상, 1984년 휴고상, 1984년 네뷸러상
SF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은 ‘그랜드 데임Grand Dame’ : 옥타비아 버틀러
옥타비아 버틀러는 SF의 프레임을 전복시킨 작가다. SF는 인간의 상상력을 아무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임에도, 마치 백인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되곤 하였다. 1976년에 첫 작품 《패턴마스터》를 발표한 이래,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며 자신만의 독보적 위치를 확립한 것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오히려 장점이되기도 했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2006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인종문제와 젠더 문제가 그의 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아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라 불린다.
1976년 6월 9일은 다나의 생일이었다. 약혼자 케빈과 동거를 시작한 다나는 짐 정리로 분주하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몸을 일으킨 곳은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속이었다. 그곳에서 호수에 빠진 한 소년을 발견해 구해낸 다나는 몇 분 뒤 다시 1970년대로 돌아온다. 당황하는 것도 우왕좌왕하는 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또 과거로 끌려간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일이 당연시되던 시대, 1815년.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나는 한 명의, 혹은 한 마리의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과거의 세상에서 만난 소년(루퍼스)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타임슬립과 노예. 인종 문제라는, 결 다른 모티프 간의 결합은 뜨거운 반응을 촉발하며 미국에서만 45만 권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SF로는 이례적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수십 년째 각종 북클럽에서 필독서이자 베스트 추천 소설로 꼽히고 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타임슬립(영어: time slip)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을 갖는다. 판타지 및 SF의 클리셰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 사고에 가까운 초상현상(초자연현상)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 여행과는 구분된다.
킨의 목차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하면 강, 불, 추락, 싸움, 폭풍, 밧줄과 같은 명사형으로 제시되어있다. 강렬하고 짧은 제목이디. 강과 불, 폭풍은 자연적 요소, 추락, 싸움, 밧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타임슬립. 다나와 함께 우리도 1800년대 미국 남부로 가서 그녀의 동선을 따라 끝없이 달린다. 채찍질당하고 위협을 당하고 “너의 생각을 묻지 않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검둥이”... 같은 종족들 사이에서도 백인 주인과 친한 그녀는 ‘하얀 검둥이’로 매도당한다. 그녀는 그녀의 조상 헤이거의 아버지 루퍼스를 위험으로부터 구한다. 조상들의 시대로 후손이 들어가 조상들의 역사에 개입하는 일. 시간 여행은 위험하다. 자칫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지면 수많은 경우의 수로 인해 자신이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시대를 경험한다는 것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책이나 자료, 역사적 사료를 통해 한 시대를 알아가는 것과 온전히 그 시대에 끼어들어 경험하는 것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노예제, 인종 차별, 신분제가 사라진 것은 인류 역사를 생각하면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다. 여전히 지금도 신분제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서적) 존재한다. 태생적인 신분제는 사라졌다 하더라도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예로 길들여진다면 누구나 노예처럼 될 것이다. 채찍을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고기 한 점을 더 움켜쥐기 위해, 노동 시간을 1분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노예 상인에게 팔려가지 않기 위해, 백인 주인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이유로든 노예다움을 선택할 것이다. 노예든 노예가 아니든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옥타비아 버틀러 『킨』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P. 15 고개를 들었지만 케빈에게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어.”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케빈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흐릿하게 회색 바지와 파란색 셔츠가 보였다. 그리고, 케빈은 나에게 손을 내밀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집도, 책도, 전부 다 사라졌다. 나는 난데없이 야외에서, 나무가 자란 흙바닥에 무릎을...
P. 38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둥이였으니까.(…)” 나는 침대에 앉아서 루퍼스를 건너다보았지만, 그 눈빛에서는 흥미와 되살아난 흥분밖에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날 두고 뭐라고 했다고?” 나는 물었다. “그냥 못 보던 검둥이였다고. 엄마 아빠 둘 다 당신을 본 적이 없었어.” “자기 아들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그런 표현을 쓰다니...
P. 202 와일린은 나를 조금 더 끌고 가더니 세게 밀쳤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채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고, 첫 번째 타격이 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채찍은 떨어졌고, 달군 쇠처럼 내 등을 내리쳤다. 그것은 얇은 셔츠를 뚫고 내 살갗을 지졌다……. 나는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P. 436 그는 조용히 말했다. ˝다나, 흑인이란 건 벗겨지지 않는 거래요. “
P. 507 아직 땀으로 미끄러운 손에 잡힌 칼 손잡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에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하다가 잔인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나의 조상으로, 나의 남동생으로, 나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P. 430 말을 탄 백인 남자가 사슬에 둘씩 묶인 흑인 남자 이십여 명을 끌고 가는 중이었다. 사슬에 묶인 사람들 모두 수갑과 강철 목걸이를 찼고 목걸이에 연결된 사슬은 두 줄로 선 사람들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중앙 사슬과 이어져 있었다. 남자들 뒤에서는 여자들 몇 명이 목에서 목으로 밧줄이 연결된 채 걷고 있었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 맞춤으로 제작되는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생명을 조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지만 피의 언어는 조작 불가능하다. 조상의 계보는 결국 피의 언어로 맺어진 관계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종, 젠더의 문제를 파고들었는데 나는 읽고 씀으로 인해 흑인들이 문맹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어서 책의 역할에 더 관심이 갔다. 20세기를 살고 있는 다나와 케빈의 관계는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현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의 결혼을 최대한 동등한 관계로 부각하려다 보니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옥타비아 버틀러식의 서술방식이거나 혹은 미국 문화와 미국 문학의 특성일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케빈이 적응하지 못하는 장면이라거나 케빈이 다나가 시간 여행 중 루퍼스 혹은 다른 백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는지 당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장면은 여성의 정조를 부각하는 것 같아 옥에 티였다. 다나에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피의 언어, 내 몸 어딘가에는 과거 어느 조상들이 남긴 유전자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유전자 gene과 문화적 유전자 meme. 생물학적 유전자 gene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문화유전자 meme은 내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 훗날 알지 못하는 후대의 누군가 내 유전자의 일부를 가지고 살아갈 때 그 혹은 그녀에게 내 유전자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 려원